[걷기 좋은 도시가 미래다]보행로 넓히고 주말 車없는 거리로… 신촌, 다시 낭만이 춤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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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행 친화로 뜬 동네들

《 ‘차가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는 산업화를 거친 세계의 모든 도시가 갖고 있는 고민이다. 차량의 원활한 흐름이 곧 도시의 경쟁력이라는 주장은 꽤 오랫동안 힘을 얻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이 같은 인식이 바뀌고 있다. 보행 편의성과 안전성을 중시하는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Walkable Urbanism)’가 글로벌 스탠더드로 떠오르고 있다. 》

 

‘차 없는 거리’ 조성 전과 후(위쪽과 아래쪽 사진)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의 모습. 차량 중심이던 길이 보행자 중심으로 바뀌면서 다양한 공연과 행사가 열리는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쇠락하던 신촌 상권도 차 없는 거리 조성 이후 다시 부활했다. 서대문구 제공
‘차 없는 거리’ 조성 전과 후(위쪽과 아래쪽 사진)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의 모습. 차량 중심이던 길이 보행자 중심으로 바뀌면서 다양한 공연과 행사가 열리는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쇠락하던 신촌 상권도 차 없는 거리 조성 이후 다시 부활했다. 서대문구 제공
 2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는 평일인데도 나들이를 나온 인파로 북적였다. 곳곳에 거리 예술가들이 자리를 잡고 피아노와 기타를 치며 ‘버스킹’을 선보였다. 그들 앞에는 어김없이 수십 명의 관객이 몰려 호응했다. 거리에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 보호자와 함께 휠체어를 타고 온 장애인의 모습도 쉽게 눈에 띄었다. 2012년 연세대를 졸업했다는 세 살배기 아기 엄마 유정애 씨(32)는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좁은 신촌 거리에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며 “보행로가 넓어진 덕분에 옛 추억을 떠올리며 아이와 거닐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신촌 부활의 비결 ‘차 없는 거리’

 신촌 오거리에서 연세대 정문 앞까지 이어지는 550m의 연세로는 지역 상권의 핵심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클럽문화’를 강점으로 내세운 인근 홍익대 앞 상권에 밀리며 쇠락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추억 팔이만 있는 곳’ ‘백화점 갈 때만 신촌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랬던 신촌이 부활하고 있다. 부활의 동력은 2014년 1월 시작된 ‘차 없는 거리’다. 신촌 일대의 재생을 고민하던 서울시와 서대문구는 2012년 연세로와 인접한 ‘명물거리’를 보행 중심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왕복 4차로였던 차도를 2차로로 줄이고, 그 대신 보도 폭을 두 배로 늘렸다. 버스와 16인승 이상 승합차, 긴급차량, 자전거만 통행이 가능하게 바꿨다. 또 주말(토요일 오후 2시∼일요일 오후 10시)에는 아예 보행자만 다닐 수 있는 보행전용거리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그렇잖아도 망해 가던 상권을 아예 죽이려 한다”는 상인들의 반발이 거셌다. 연세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진하 씨(45)는 “안 그래도 매출이 줄고 있던 차에 차량을 이용해 방문하던 손님마저 잃을 까봐 두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서울시에 따르면 차 없는 거리 조성 전인 2013년 4월 4200명이던 연세로의 시간당 보행자 수는 조성 후인 2015년 4월 5761명으로 2년 만에 37%가 늘어났다. ‘걷는 사람들’이 늘면서 상가들의 매출도 덩달아 증가했다. 서울시 ‘우리마을가게상권서비스’ 분석 결과 2013년 4102억 원이던 신촌 지역의 상권 매출은 2015년 4674억 원으로 14%, 같은 기간 결제 건수는 1953만 건에서 2561만 건으로 31% 상승했다. 액세서리 가게 운영자 강모 씨는 “차량은 통행이 아무리 많아 봐야 장사에 도움이 안 되지만 보행자들은 지나가다 가게에 눈길이라도 한 번 더 준다”고 말했다.

 차 없는 거리의 또 다른 성과는 도로가 주말마다 훌륭한 공연·행사장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조성 직후인 2014년 122건이었던 연세로의 공연·행사는 지난해 513건이나 열렸다. 서울시 관계자는 “차 없는 거리 조성 전에는 상권이 방학 등 대학 일정의 영향을 받았는데 문화 공연 등을 통해 이를 극복하면서 언제나 사람이 붐비는 곳이 됐다”고 설명했다.

○ 걷기로 뜬 서울의 ‘힙플레이스’


 연남동과 익선동 망원동 성수동 경리단길…. 요즘 뜨고 있는 서울의 ‘힙(hip)플레이스’다. ‘힙’은 ‘대중의 주목을 받아 새로이 떠오르는’의 의미를 담고 있는 신조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서 힙플레이스를 검색하면 어김없이 이런 동네에서 공들여 찍은 사진을 볼 수 있다.

 요즘 뜨는 힙플레이스는 전통적으로 젊은이들이 몰렸던 상권인 홍익대 앞이나 강남역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상점 대부분이 주차장은 고사하고 자동차를 타고는 접근할 수 없다. 걸어서 다닐 수밖에 없는 동네들이다. 힙플레이스를 찾은 이들은 걷기를 즐긴다. 대부분 느긋하게 걸으며 ‘맛집’을 고르고, 쇼윈도에 전시된 제품들을 살펴보고 사진을 찍는다.

 전문가들은 걷고 싶은 거리의 특성에 대해 “‘우연성’과 ‘이벤트’의 빈도가 높은 곳”이라고 분석한다. 마치 재미있는 텔레비전 채널을 계속 돌려가며 찾아보듯, 보행자가 특별한 목적 없이 거닐어도 곳곳에서 새로운 길목(우연성)과 다양한 상점(이벤트)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는 “이벤트의 빈도가 높을수록 보행자에게 주도권을 부여하고 새로운 변화의 체험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광화문이나 테헤란로처럼 넓은 대로가 아니어도 ‘걷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면 새로운 유력 상권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도 올해 차도를 줄이고 보도를 늘려 쾌적한 보행 환경을 조성하는 ‘도로 다이어트’를 20곳 이상에서 추진하고 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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