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벌집’ 건드린 정세균 의장… “중증 대권병” 여당이 보이콧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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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국회 첫날부터 파행]정세균 의장 개회사에 정국 급랭

1일 20대 첫 정기국회 개회일 풍경은 모든 게 낯설었다. 야당 출신 현직 국회의장이 개회사에서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한 것도, 이에 항의해 집권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집단 퇴장해 국회 로텐더홀에서 의장 사퇴촉구결의안을 낭독한 것도 역대 국회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국회 권력이 야권으로 넘어갔음을 확실히 보여준 셈이다.

4·13총선 민심은 여야 ‘협치’였지만 정치권은 정반대로 치닫고 있다. 야권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낱낱이 파헤치겠다며 벼르고 있다. 내년 대선을 겨냥한 것이다. 이대로 밀릴 수 없는 여권은 야권의 ‘의회 장악’에 맞서 강경 투쟁 일변도다. 여야의 극한 충돌로 정국이 얼어붙고 있다.

○ “중증 대권병 걸린 야권”


이날 새누리당 긴급 의원총회에서 이정현 대표는 “정세균 국회의장의 근본 목적은 내년 대선이다. 대선에 본인이 나가든, 자기가 속했던 정당(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하든 순전히 대권병 때문”이라며 “중증 대권병이 아니라면 의장이 헌정 사상 초유의 이런 도발을 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정 의장이 개회사에서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거취 논란이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같은 민감한 정치 현안을 언급하며 야권 편을 든 것을 ‘정치적 도발’로 규정한 것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의장의 사과가 없는 한 20대 국회의 모든 의사일정을 거부하겠다”며 “지금부터 투쟁에 돌입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무성 전 대표도 기자들을 만나 “(중립 의무가 있는) 의장이 굉장히 예민한 부분을 개회사에서 이야기한 건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강경 투쟁’을 선언했지만 뾰족한 방법은 없다. 사퇴촉구결의안을 낸다 해도 야당이 수적 우위인 상황에서 통과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날 심야 의총에는 전체 의원 129명 중 70여 명만 참석했다.

○ “사퇴촉구결의안? 하하하”

더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여당이 의장 발언을 문제 삼아 정기국회 일정을 보이콧하는 건 처음 본다. 참 별꼴을 다 본다”며 “(의장을) 찾아가 항의할 수 있는데 깽판을 놓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새누리당이 의장 사퇴촉구결의안을 내겠다고 한다’는 기자의 질문에 “하하하. 제가 웃었다고 전해 달라”고 했다. 20대 국회의 여야 분포는 43 대 57로 야당이 우위에 있다.

더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이날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을 만나 “우병우를 지키기 위해 국회를 보이콧하는 집권당이 말이 되느냐”고 했다. 더민주당은 논평에서 “새누리당이 여소야대 국회에서 몽니를 부리고 싶은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엑설런트(Excellent), 최고의 개회사를 했다”고 했다.


○ “의장 사과는 우병우에 면죄부”


정 의장은 이날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기계적인 중립보다 바른 길로 가자고 하는 게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정 의장 측은 새누리당의 사과 요구에 “(법안을) 날치기한 것도 아니고 여기서 사과하면 우 수석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고 했다.

정 의장이 개회사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은 추후에 논의하고 추가경정예산안 등 시급한 현안부터 처리하자고 하자 정 원내대표가 “(새누리당 소속인) 심재철 국회부의장에게 사회권을 넘기면 참석하겠다”고 했으나 정 의장은 거절했다. 정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정 의장은 ‘정치적 중립’은 있어도 ‘정책적 중립’은 없지 않느냐고 하는데 이런 궤변이 어디 있느냐”며 “정 의장은 독한 사람이다. 전열을 가다듬자”고 했다. 이후 새누리당 의원 50여 명은 의장실로 몰려가 농성을 벌이며 거칠게 항의했다.

이재명 egija@donga.com·신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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