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 찬물 끼얹은 크루즈… 공화全大 ‘분열의 민낯’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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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공화당 전당대회 셋째날/이승헌 특파원 현장 르포]
“본선에서 양심껏 투표하세요” 크루즈, 끝내 트럼프 지지 거부
트럼프 지지자들 “×자식” 욕설… 크루즈 부인, 신변위협에 대피
트럼프 “별거 아니다” 애써 태연

이승헌 특파원
이승헌 특파원
“11월 본선에서 양심껏 투표하세요. 우리의 자유를 옹호하고 헌법에 충실하기 위해 여러분이 신뢰하는 후보들에게 투표하십시오.”

20일(현지 시간) 오후 10시경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장인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퀴큰론스 아레나 메인 무대. 연사로 나온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트럼프가 당의 대선 후보가 된 것을 축하한다”고 인사를 한 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이렇게 외치자 전대장은 순식간에 “부∼” 하는 야유와 고성으로 가득 찼다.

전날 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트럼프 지지를 거부한 것은 물론이고 듣기에 따라서는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투표하라는 말로도 들렸다. 크루즈는 경선 막판까지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막말을 주고받으며 진흙탕 경쟁을 벌이다 경선 포기를 선언했다. 이날까지도 트럼프 지지 선언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날 그는 트럼프의 이름을 단 한 차례만 언급했다.

크루즈 바로 앞에 있던, 트럼프의 고향인 뉴욕 주 대의원들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며 크루즈를 비난했다. 이방카 등 트럼프 자녀들의 표정은 돌처럼 굳어졌다. 전날 연사로 나서 트럼프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던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는 입을 벌린 채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부 트럼프 지지자가 크루즈의 아내인 하이디 크루즈에게 다가가 험악한 표정을 짓자 백악관 비밀경호국(SS) 요원들이 급히 하이디를 전대장 밖으로 내보냈다. 트럼프의 오랜 측근인 로저 스톤은 전대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크루즈는 멍청한 ×자식”이라고 쏘아붙였다. 이날 연설 직전에도 해프닝이 있었다. 크루즈는 오후 2시경 클리블랜드 공항 인근에서 경선 기간 자신을 지지해 준 대의원과 자원봉사자들을 상대로 연설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상공에 등장한 대형 여객기의 소음으로 연설이 중단됐다. 뉴욕에서 막 날아든 트럼프 전용기였다. 크루즈는 “사전에 트럼프 측과 조율된 건가?”라며 뼈 있는 농담을 했다.

전대장이 아수라장이 되면서 정작 이날의 주인공인 마이크 펜스의 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은 빛이 바래졌다. 크루즈 연설이 끝나고 1시간 뒤 등장한 펜스는 수락 연설에서 “민주당은 지금 이 나라 전체가 신물이 난 모든 것을 대변하는 그런 사람(힐러리)을 후보로 지명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트럼프 외에 대안이 없다. 트럼프는 준비돼 있다. 이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크루즈의 연설이 끝나갈 무렵 가족들이 있는 VIP 지역으로 걸어 들어온 트럼프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특유의 제스처를 취했지만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다. 전대 후 트위터를 통해 “나는 크루즈가 그런 내용의 연설을 할 것을 2시간 전에 미리 알았다. 별거 아니다”라며 애써 무시했다. 트럼프는 후보 수락 연설 하루 전인 이날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갖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가들이 침공받아도 미국이 무조건 보호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나토 국가들의 방위비 증액을 거듭 요구했다.

이날 전대장 주변에선 반(反)트럼프 시위대가 성조기를 불태우다 17명이 경찰에 체포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편 공화당의 웨스트버지니아 주 하원 의원이자 유나이티드항공 조종사인 마이클 포크는 최근 클린턴의 e메일 스캔들과 관련해 “반역죄, 살인죄 등으로 워싱턴에서 목을 매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항공사 측으로부터 정직 처분을 받았다고 시카고트리뷴이 20일 전했다.

―클리블랜드에서 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미국#대선#공화당#전당대회#크루즈#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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