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끝나면 바로 영수학원… 놀 시간 있어도 게임-채팅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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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행복원정대/초등 고학년의 행복 찾는 길]<7·끝> 운동-예술과 담쌓은 아이들

유정이와 승훈이는 같은 6학년이지만 방과후 시간표는 완전히 다르다. 유정이는 오후 3시 학교 수업이 끝나면 5시까지 공부방에서 보낸다. 저녁을 먹은 뒤엔 1시간 동안 영어학원에 가고, 그 후로 주 3회 2시간씩 수학 과외를 한다. 학교 공부로 부족한 건 학원에서, 학원 수업으로 부족한 건 과외로 보충하는 것이다. 학교와 학원 숙제까지 마무리하면 밤 12시는 돼야 잠자리에 든다.

승훈이는 오후 3시 반에 학교가 끝나면 의무적으로 체육 활동을 한다. 봄엔 육상, 가을엔 미식축구다. 그 후엔 학교 밴드 클럽에서 드럼을 배운다. 6시 넘어 집에 돌아오면 저녁 먹고 1시간 정도 숙제를 한 뒤 놀다가 10시쯤 잔다.

동갑내기 유정이와 승훈이의 일상을 갈라놓는 건 교육 환경이다. 유정인 서울, 승훈이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산다. 한국의 초등 고학년 중 많은 아이가 유정이처럼 살아가고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가 보장하는 ‘놀 권리’를 빼앗긴 채.

○ “예체능은 저학년 때 끝내야죠”

아이들은 뛰고놀아야 할 시간에 다들 학원에 간다. 아동복지 전문기관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가 지난해 9∼11월 초등 4, 5학년과 중고교생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권장 시간(하루 30분∼2시간)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는 초등학생 비율이 63.5%로 중고교생(41.0∼48.4%)보다 높았다. 10명 중 6명 이상은 운동 시간이 하루 1시간도 안 됐다.

초등 4학년이 되면 예체능은 ‘사치’다.

“피아노랑 미술은 3학년 때까지 하고 그만뒀어요. 영어, 수학학원에 들렀다 집에 오면 오후 7시예요. 밥 먹고 나면 학원 숙제해야 해요.”(6학년 남학생)

“3학년 때까지 방송 댄스를 배웠어요. 대회에서 상도 타고 잘하는 편이었는데 4학년이 돼 수학학원에 다니면서 그만뒀어요.”(5학년 여학생)

6학년 아들을 둔 엄마 강모 씨는 “영어와 수학에 치중하다 보니 나머지 과목에 쏟을 시간이 없다”고 했다. “아이가 어렸을 땐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고 운동도 잘하면 평생 자산이 될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고학년이 되면 그런 생각은 사치라는 걸 깨닫게 돼요. 교육에 더 빠삭한 엄마들은 예체능을 초등학교 입학 전에 끝내야 한다고도 해요. 영어, 수학에 집중하려면.”

예체능 교육마저 순수한 즐거움보다는 입시를 위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예체능도 사실 수행평가 때문에 하죠. 피아노나 미술의 기술적인 부분을 저학년 때 뗀 뒤 수행평가 임박해서 바짝 개인 레슨을 붙이는 게 훨씬 효율적이에요.”(5학년 딸 엄마)

“아들 둔 부모들은 체육은 고학년까지 시키는 경우가 많아요. 키 크라고요. 우리 아들은 축구나 야구를 하고 싶어 하지만 농구를 시키고 있어요. 공부 시간 많이 안 잡아 먹고 키 크는 데 효율적인 종목을 찾은 거죠.”(6학년 아들 엄마)

4학년이 되면 책도 ‘끊는다’. 입시에 도움이 되는 역사나 학습만화 위주로 읽고 문학은 고전 요약본을 본다.(박지은 아동출판 비룡소 편집장)

“저학년 땐 하루에 10권 넘게 읽었는데 요즘엔 엄마가 도서관에서 골라주는 역사책이나 과학 책 위주로 읽어요. 난 탐정 소설이 좋은데….”(6학년 남학생)

“여가생활은 커서 생활이 안정되고 여유가 생길 때 하는 것 아닐까요. 어른들도 그렇잖아요. 돈 있는 사람이 골프 치고, 취미 생활을 하는 거죠. 나중에 그런 여유 만들어주고 싶어서 아이 학원 보내요.”(6학년 아들 엄마)

○ “놀 시간 있어도 놀 줄 몰라요”

여유 시간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여가의 질은 더 큰일이다. 아이들은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TV를 보거나 컴퓨터 혹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데 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의 조사에서 초등학교 4, 5학년의 TV 시청 시간은 평일엔 하루 1시간 24분, 주말엔 2시간 40분이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이용 시간을 합치면 평일은 2시간 48분, 주말엔 4시간 5분이나 된다. 이 중 학습이나 정보검색에 쓴 시간은 35∼37분(평일)이고, 나머지는 게임, 소셜미디어, 동영상 보느라 쓴 시간이다.

대개 남학생은 게임, 여학생은 채팅으로 나뉜다.

“모바일 게임 ‘클래시오브클랜’ 레벨 69등급까지 올리고 싫증나면 ‘무한도전’ ‘런닝맨’ 재방송 봐요. 친구들과 만나 1시간에 500원인 싼 PC방에 들어가 리그오브레전드, 서든어택 하죠. 저녁엔 유튜브 동영상 보는데, 턱형 양띵 라포 같은 유명 게임 BJ(개인 방송 진행자)들이 하는 영상을 좋아해요.”(6학년 장모 군의 휴일)

“TV로 오락 프로그램 재방송 봐요. 친구들이랑 만나면 대형마트 문구점 캔디숍 돌아다니죠. 노래방 갔다가 집에 와선 채팅하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스키니진 구경하고, 남자 친구랑 보이스톡 하고 그래요.”(6학년 김모 양의 휴일)

여가 활동은 아이들의 행복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조사에서 운동 시간이 늘수록 초등학생의 자아 존중감과 생활 만족도는 높아졌다. 반면 미디어 이용 시간이 길수록 자아 존중감과 학업 성적은 떨어지고 우울감, 공격성, 스트레스 정도는 높아졌다.

선진국들이 다양한 방과후 활동과 운동을 중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결국 아이들이 부모를 닮는 것 아닐까요. 어른들도 술 마시고 노래방 다니며 스트레스 풀고, 시간 나면 TV 보면서 뒹굴뒹굴하잖아요.”(회사원 이모 씨·45)

“베이징 주재원으로 근무할 땐 주말마다 아이들과 놀았어요. 아버지들이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불러 모아 축구나 야구를 하면서 놀아주죠. 한국에 와선 주말에도 거래처 사람들과 만나 등산하거나 골프장 가요. 아이들 여가의 질을 높이려면 부모들의 여가 생활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회사원 장모 씨·46)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구가인 기자·전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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