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만큼 못해서 죄송” 엄마 잔소리에 움츠린 아이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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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행복원정대/초등 고학년의 행복 찾는 길]<5> 양육방식 심층인터뷰-전문가 조언


“시험을 망쳐서 엄마가 우울해하세요. 2학년 때는 공부를 잘했는데….”(5학년 남학생)
“회장 선거에 떨어져서 엄마를 실망시켜 드려 죄송했죠.”(6학년 여학생)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아이들. 하지만 10대 초등학생들 중에는 스스로를 ‘저평가’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취재팀이 서울의 초등 4~6학년 64명을 심층인터뷰하며 ‘자녀로서 나의 점수’를 매겨달라고 했더니 3.98점을 주었다(5점 만점). 엄마들이 준 자녀 점수(4.36점)보다 훨씬 낮았다. 이유는 ‘엄마가 기대하신 만큼 내가 못해서’였다.

이순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자기 역량이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낄 때 열등감과 죄책감에 빠진다”며 “부모의 과도한 기대감 표현이 아이들의 자존감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엄마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아이 마음 편하게 아예 기대를 안 하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적당한 기대 수준을 제시해 줘야 동기부여가 되는 것 아닐까. 심층 인터뷰한 엄마들의 양육 방식은 △기대치를 표현하는지, 하지 않는지 △아이 자율에 맡기는지, 엄마가 관리하는지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 전문가들에게 4가지 유형의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평가를 의뢰했다. 이들은 B유형(부모의 기대치 표현+엄마가 관리)은 문제가 있으나 나머지 A, C, D유형은 장단점이 있어 아이의 기질에 따라 적용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A형: “100점 맞아야” “네 일은 스스로” (부모의 기대치 표현+아이 자율에 맡기기)

“제 일은 스스로 해요. 100점 받길 원하세요. 새 학년 될 때마다 ‘회장 해야지’ 하시고요. 연예인이 되고 싶어 연기학원에 보내달라고 했는데 허락해 주셨어요.”(6학년 a 양)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고 아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죠. 성적이 안 나오면 ‘상위권을 유지해라’라고 말해요.”(엄마 A 씨)

▽도현심 교수(이화여대 아동학과)=교육열이 높은 한국 부모들은 자녀에게 생활습관에 있어서는 자율성을 부여하면서도 교육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한다. 교육은 통제하고 생활 영역에선 관대한 방식은 일관성이 없어 아이들이 행복감을 느끼기 어렵다.

▽김희정 교수(한국교원대 교육학과)=기대치를 표현하지 않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아이에게는 인정의 욕구가 있고, 어린 나이에는 100% 자기 내부의 동기만으로 공부하지 않는다. 단, 아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먼저 물어야 한다.

▽이윤주 교수(영남대 교육학과)=부모들이 기대감을 드러내는 방식에는 ‘강요’와 ‘정보 제공’이 있다. ①소망을 말하고 ②소망이 이뤄졌을 때 아이에게 무엇이 좋은지 설명해 주고 ③이를 위해 필요한 정보들을 이야기해야 한다. “학급회장 해야지”가 아니라 “네가 한 번쯤 학급회장을 맡아봤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이러이러한 부분에서 좋거든.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해야 한다.

▽장형심 교수(한양대 교육학과)=소위 명문대대를 갔으면, 100점을 맞았으면 하는 기대의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부를 잘해야 된다”라는 당위적 설명이 아니라 그것이 왜 가치 있는 일인지 설명해 줘야 한다.

● B형: “SKY대 가야” “엄마가 스케줄 관리” (기대치 표현+엄마가 관리)

“아빠보다 돈 많이 벌어서 편하게 살라고 하세요. 그래서 외국어고를 가야 할 것 같아요. 엄마가 서울대 학비 싸다고 하셨어요. 학원 스케줄 다 짜주세요.”(5학년 b 군)

“엄마들이 챙겨주는 애들이 공부를 잘하더라고요. 아이가 나보다는 나은 삶을 살았으면 싶죠.”(엄마 B 씨)

▽이윤주=우리 사회에 가장 많은 유형이다. ‘타이거 맘’ ‘헬리콥터 맘’이 이에 해당한다. 아이를 엄마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해 진로를 설정해 두고, 그 목표에 도달하도록 강하게 압박하는 스타일이다. 이렇게 하면 일정 수준 이상은 나온다. 하지만 경쟁이 더 치열한 고학년이 되면 “계속 이렇게 사는 건 너무 힘들다” “엄마는 내가 잘할수록 더 많은 걸 기대할 뿐”이라는 부정적 생각을 하게 된다.

▽정현숙 교수(상명대 가족복지학과)=자녀가 부모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것이 부모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긍심 부족 때문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아이들은 자존감을 부모에게서 배운다. 부모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할 때 부모의 권위를 존중하고 부모의 의견에 귀 기울이게 된다.

▽장형심=아이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외국어고 가야 한다, 서울대 가야 한다고 일방적 목표를 제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아이가 원하는 것이 어른의 눈에 봤을 때 정말 아닌 경우엔 어떻게 하냐고? 아이들의 ‘재조정(refining) 능력’을 믿어 보자. 아이들은 경험과 정보를 토대로 수차례 꿈을 현실적으로 조정해 나간다. 무조건적인 통제보다는 아이들의 자기 조정 능력을 믿고 기다려 주자.

● C형: “평범하게 살아라” “네 일은 스스로” (기대치 표현 안 하기+아이 자율에 맡기기)

“시험 못 봐도 괜찮다고 하세요. ‘항상 너답게 행동해라’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라’ 하시죠. 언젠가 펀드매니저인 친구 아버지 회사에 갔는데 그때 저도 펀드매니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6학년 c 군)

“부모로서 기대치는 있지만 내색하진 않아요.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엄마 C 씨)

▽이윤주=요즘은 C형이 많아지고 있다. 공부한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치열한 경쟁 때문에 아이들이 힘들어하니까 그러는 것이다. 하지만 알파걸처럼 잘하고 싶은 욕심이 넘치는 아이들은 이런 엄마에게 불만을 느낄 수 있다.

▽김희정=공부 욕심이 많은 아이들에게 ‘공부는 못해도 좋다’ ‘평범하게 살아라’라는 말들은 상처가 될 수 있다.

▽장형심=성취 목표가 뚜렷한 아이에겐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동기부여 방식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접근동기, 아이가 자꾸 그것에 도전하도록 돕는 것이다. 둘째 회피동기, 실패가 두려운 나머지 그것을 자꾸 피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공부는 중간만 해도 돼’ ‘너무 튀게 살지 마’ 이런 발언들이 회피동기를 제시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신의 경험이 너무 혹독했다는 기억이 남아있을 때 회피동기를 택하는 경향이 있다.

▽권희경 교수(건국대 유아교육과)=조심스럽게 기대치를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요즘 무엇에 관심이 있니’ ‘네가 원하는 걸 위해 엄마가 무엇을 알아봐 주면 좋을까’ ‘엄마가 생각하는 게 있는데 그걸 네게 얘기해도 될까’ 식으로.

● D형: “네가 원하는 학교로” “엄마가 관리” (기대치 표현 안 하기+엄마가 관리)

“엄마가 다 챙겨 주세요. 성적이 나빠도 혼내지 않고요. 사촌 언니가 외국어고 다녀서 나는 어디 가야 하느냐고 여쭸더니 ‘너 가고 싶은 학교 가면 된다’고 하셨어요.”(4학년 d 양)

“입시공부 시작하기 전까진 하고 싶은 것 하도록 하죠. 의사가 됐으면 싶지만 말해 주기엔 아이가 너무 어려서….”(엄마 D 씨)

▽이윤주=이런 엄마를 교육학 하는 사람들끼리 은어로 ‘효모(孝母)’라고 부른다. 자식을 위해 많은 것을 해주지만, 절대 부담은 주지 않는 엄마를 뜻한다.

▽이완정 교수(인하대 소비자아동학전공)=아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기대치를 표현하는 대신 아이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지도함으로써 간접 효과를 노리고 있다. 이 또래에 적합한 양육 태도로 아이의 행복감과 자존감을 높여준다.

▽정현숙=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엄마의 경험은 제한적이다. 스스로 노력해 보고, 실패도 경험하고 판단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너 가고 싶은 학교 가면 된다’는 표현보다는 ‘너는 어디에 가고 싶니’ ‘그런 생각을 한 이유는 무엇이니’ 하며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

▽장형심=부모의 역할은 자녀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길러주는 것이다. 어떻게 아이의 관심사를 알 수 있을까. ‘결정적 장면’에 주목하라. 내 아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몰입하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던가, 이걸 떠올리면 답이 나온다.

김수연기자 sykim@donga.com
노지원기자 zone@donga.com
#양육방식#초등고학년#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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