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따뜻한 밥 한술 뜨고가렴… 눈물의 ‘원영이 49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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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엄마 모임, 직접 제사상 차려… “이런 비극 다시는 없어야” 울음바다

21일 경기 평택시 평택시립추모관에서 열린 신원영 군의 49재 추모식에서 신 군의 이모가 헌화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평택=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21일 경기 평택시 평택시립추모관에서 열린 신원영 군의 49재 추모식에서 신 군의 이모가 헌화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평택=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여느 제사상과는 달랐다. 상 한가운데에는 초콜릿케이크와 초코파이, 생크림 빵이 놓였다. 흰 우유와 오렌지 주스도 올랐다. 상 옆에는 과자 상자와 캔 음료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상이 다 차려진 뒤 고인의 사진이 놓였다. 천진난만하게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고 있는 아이. 친부와 계모의 학대에 못 이겨 추운 욕실에서 사망한 신원영 군이었다.

21일 경기 평택시립추모관에서 원영이의 49재가 열렸다. 평택 지역 어머니 커뮤니티 ‘평택 안포맘(평택시 안중읍 포승읍 엄마 모임)’이 원영이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준비한 자리였다. 류정화 안포맘 대표와 스태프 등 20여 명의 회원과 공재광 평택시장, 평택시의회 김기성 의원 등 총 40여 명이 원영이의 넋을 기렸다.

안포맘은 원영이의 넋을 위로하고 ‘제2의 원영이’를 막기 위해 49재를 마련했다. 하루 한 끼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학대에 사늘히 죽어간 원영이에게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주는 ‘식사’였다. 잡채와 불고기, 전, 미역국 등 회원들이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이 상에 가득했다. 류 대표는 밥그릇 크기의 두 배가 되는 양의 밥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동안 못 먹은 한을 달래는 의미였다.

“매서운 바람이 스며드는 캄캄한 화장실에 오도카니 있었을 널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먹먹해서 숨을 쉴 수가 없구나.”

류 대표가 원영이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자 추모관을 찾은 모두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원영이의 이모와 이모부도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느라 바빴다. 이모는 “저 영정 사진도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찍은 건데…. 저때만 해도 몸에 아무 흔적이 없어 그저 잘 지내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라며 울먹였다. 이모부는 “원영이 엄마가 어제 ‘혹시 오늘 49재면 원영이 혼자 쓸쓸히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며 추모관을 찾았다. 오늘 안포맘 회원분들이 와 주시니 어제 원영이를 보러 여기에 왔나 보다”라며 눈물을 다시 훔쳤다. 이날 100일을 갓 넘긴 아기를 품에 안고 과자를 한가득 사 온 봉혜진 씨(36·여)는 “딸이 있다 보니 원영이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났다. 살아 있을 때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지만 가는 길이라도 배웅하고 싶어 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국화꽃을 받기엔 아직 어린 나이. 꿈 한 번 펼쳐보지 못하고 떠난 원영이에게 사람들은 국화꽃 한 송이를 놓으며 넋을 기렸다. 친부와 계모의 학대로 생을 일찍 마감했지만 원영이의 하늘 길은 쓸쓸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속으로 외쳤다.

‘원영아 잘 가거라.’

평택=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원영이#49재#아동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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