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제재 의식해 몸사린 中은행… 대북무역 결제 직격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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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경지역 中은행, 북한계좌 동결]
[‘北-中교역 위기’ 단둥에 가다 <上>]

엄격해진 통관절차… 북한행 화물 ‘대기’



통관을 기다리는 북한행 중국 화물차량 30여 대가 19일 중국 단둥 해관 마당에 꽉 들어차 있다. 현지인들은 “올해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단둥 해관에서 북한으로 반입하는 물품의 검사가 전보다 엄격해졌다”고 전했다.

단둥=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엄격해진 통관절차… 북한행 화물 ‘대기’ 통관을 기다리는 북한행 중국 화물차량 30여 대가 19일 중국 단둥 해관 마당에 꽉 들어차 있다. 현지인들은 “올해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단둥 해관에서 북한으로 반입하는 물품의 검사가 전보다 엄격해졌다”고 전했다. 단둥=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단둥=구자룡 특파원
단둥=구자룡 특파원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논의하고 있는 ‘새롭고 강력한 대북 제재’에 동참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중 접경지역 일부 은행들이 북한인 관련 계좌의 거래를 전면 중단시킨 것으로 밝혀져 그 배경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국은 지난달 27일 베이징을 찾아간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을 문전박대하면서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 합의를 거부해 왔다. 이번 조치는 중국 은행들의 단독 의사결정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여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랴오닝(遼寧) 성 일대의 대북 관련 기업인들에게 이 같은 조치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으로 현지 취재 결과 드러났다.

선양(瀋陽)의 한 중국인 사업가는 거래하던 중국계 은행으로부터 최근 갑자기 북한인 계좌로는 입금 및 계좌 이체가 안 된다는 말을 듣고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벌써 수년째 북한 여러 곳의 광산에 투자해 광물을 들여온 뒤 한 번에 수억 원을 송금했지만 갑자기 관련 서비스가 안 된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그는 “언제까지 안 되느냐”고 질문했지만 은행 측은 “당분간은 안 된다”고만 회신했을 뿐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북한 신의주와 마주한 접경도시 단둥(丹東)의 공상(工商)은행 단둥분행(지점) 직원은 기자의 질의에 답변하며 이 같은 조치를 거듭 확인했다. 기자가 “사업을 하는 친구가 공상은행을 통해 북한의 사업 파트너에게 돈을 보낼 수 없다고 해서 확인하려 한다. 나도 급히 돈을 송금해야 하는데 다른 방법이 없겠느냐”고 묻자 이 은행 직원은 “당분간은 어렵다”며 똑같은 대답을 내놨다. 이 직원은 “거래를 중단하는 직접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본점에서 들은 바 없다”며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조-중(북-중) 관계가 긴장된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언제까지 이 같은 조치가 이어질지 우리도 잘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공상은행은 자산가치 3조5000억 달러(약 4305조 원)로 자산가치로만 보면 세계 1위 은행이다. 중국건설은행, 중국은행, 중국농업은행과 함께 중국의 4대 국영 상업은행(commercial bank)으로 꼽힌다.

한 대북 전문가는 “지난해 12월 12일 북한 모란봉악단이 베이징(北京)에서의 첫 해외 공연을 앞두고 공연 당일 북한으로 돌아간 뒤 양국 관계가 악화됐다”며 “올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7일) 등 도발 사태가 이어지면서 중국 정부가 제재 범위와 강도를 확대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단둥이나 선양 등에서는 북한과 교류하는 중국 무역업자들이 은행을 통하지 않고 현물이나 현금을 직접 가져가 주고받는 식으로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 금액이 크지 않거나 거래를 은밀히 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액이 꽤 크거나 서로 금전 수수를 증명하는 서류가 필요한 경우에는 은행을 통한 송금이 필요해 은행들의 송금 제한 조치는 북-중 교역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한 중국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은행업감독관리위원회의 지린(吉林) 성 관계자는 19일 이번 중국계 은행의 북한인 계좌 입금 동결에 대한 질문에 “매년 유엔을 통해 블랙리스트가 내려오면 어느 나라 누구의 계좌든 모든 은행에 관련 정보를 내려보내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동결 조치가 유엔의 블랙리스트 통보와 관련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는 21일 “중국의 큰 은행들은 북한과 연루되기 싫어서 스스로 일찌감치 거래를 중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중국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이 같은 조치를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의 대북제재법이 발효된 날인 19일(현지 시간 18일) 기자가 찾은 단둥은 겉으로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이날 오전 8시 단둥 해관 및 출입국사무소에서는 압록강 건너 신의주로 750위안(약 14만2500원)짜리 ‘1일 여행’을 떠나는 중국인 관광객 20여 명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출국 수속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사가 나눠준 주의사항에는 “휴대전화나 망원경,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나 한글로 된 책과 옷 등은 가져가면 안 된다”고 돼 있었다.

해관 마당에는 크고 작은 화물차와 컨테이너를 실은 중국 차량이 줄잡아 30여 대가 빼곡히 들어차 북한으로 나갈 통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과일과 잡화류 박스를 작은 리어카에 가득 싣고 와 포장하는 북한 주민들도 있었다. 압록강에는 추운 날씨로 승객은 많지 않지만 강 건너 신의주를 구경하는 유람선이 운행되고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방송이 강변에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잇단 북한의 도발로 미국과 한국이 제재 수위를 높이고 중국이 동참하는 유엔 제재를 앞두고 있어 ‘태풍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는 긴장감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단둥은 전통적으로 북한과 교류가 많은 지역으로 도강증(渡江證)이 있는 중국인은 신의주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 북한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국제사회의 제재 강화로 향후 중국 경제에 먹구름이 낄 것을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단둥에서 나고 자랐다는 30대 후반의 위안(元)모 씨는 “북한이 핵실험과 로켓 발사를 잇달아 하는 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단둥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택시 운전사는 “2월 7일 압록강변을 운전하다가 날아가는 로켓을 직접 봤다”며 “처음에는 북한이 로켓 발사를 성공시켜 제재를 강화하는 미국과 한국에 제대로 한 방 먹였다는 생각을 했지만 ‘후과(後果)’가 많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단둥=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은행#북한#계좌 동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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