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금융사들, 한국시장을 구조조정 1순위 꼽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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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더스 코리아’ 가속

‘동북아 금융허브’를 표방하고 2012년 11월 서울 여의도에 들어선 국제금융센터(IFC). 3년이 흐른 지금은 지하의 대형쇼핑몰만 점심시간에 직장인들로 반짝 붐빌 뿐 오피스건물 3동 중 1곳은 여전히 불이 꺼진 채 적막이 흐르고 있다. 입주 기업 80여 곳 가운데 금융회사는 30여 개에 불과하고 당초 정부가 목표로 했던 외국계 금융회사의 본사 이전은 1곳도 없다. ‘국제금융센터’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영국계 투자은행(IB) 바클레이스가 한국 사업을 접기로 하면서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엑소더스 코리아’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사들이 해외 사업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한국 시장을 구조조정 우선순위로 삼고 있어 한국을 ‘동북아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전략이 허상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 들어 바클레이스가 서울지점을 폐쇄해 글로벌 금융사들의 탈(脫)한국 움직임이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영국 국영은행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가 한국 철수를 결정했고, 호주 맥쿼리그룹도 국내 IB사업을 대폭 축소했다. 미국계 씨티은행과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은 국내 자회사인 저축은행, 캐피털 등을 매각한 데 이어 점포 축소, 인력 감축 등을 이어가고 있다. 2013년엔 영국계 HSBC은행이 국내 소매금융 사업을 접었다.

이는 세계 금융시장 불안이 지속되면서 본사 차원에서 비용 축소, 사업 재편 등의 구조조정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실적이 부진하고 사업 전망이 어두운 한국 등이 구조조정의 타깃이 되는 것이다. 김혜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사들이 아시아 지역에서 성장성이 높은 중국은 두고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는 한국 사업을 먼저 접고 있다”고 말했다.

예측 불가능하고 경직된 한국의 금융 규제 시스템도 글로벌 금융사 이탈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한국에서는 어떤 규제가 나오느냐에 따라 금융 영업환경이 바뀐다”며 “이런 정책 리스크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이어져 외국계 금융사들이 떠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10년 넘게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이 공염불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2003년 글로벌 금융사의 아시아태평양 본부를 유치해 한국을 아시아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는 로드맵을 내놓고 서울 여의도와 부산에 IFC를 세웠다. 하지만 현재 부산국제금융센터에 입주한 외국계 금융사는 1곳도 없고, 서울은 오피스건물 3곳 중 1개 동의 공실률이 70%를 넘고 있다.

윤 교수는 “금융당국이 지금 규제를 완화한다고 하지만 지금보다 강도 높은 ‘규제 빅뱅’을 해야 한국도 금융허브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며 “범정부 차원에서 관치금융, 낙하산 인사를 없애고 규제 시스템을 선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임수 imsoo@donga.com·박희창 기자
#금융#한국시장#구조조정#엑소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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