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비 올 때 우산 뺏지말라”던 금융당국이 좀비기업 키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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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어제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급증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동아일보가 올 5월 1536개 상장기업(금융사 제외)의 결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벌어서 대출이자도 못 갚는 ‘좀비기업’이 3곳 중 1곳이다. LG경제연구원 조사에서도 좀비기업 비중이 2010년 24.7%에서 올해 1분기 34.9%로 크게 늘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중국 경제가 침체하는 ‘G2 리스크’가 본격화하면 부실기업들의 연쇄도산이 금융권 부실 확대, 나아가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기업부채발(發) 위기로 번질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는 각종 정책자금이나 기술금융 등의 보증기관을 통해 좀비기업을 연명시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부실이 드러난 뒤 일부 은행들이 여신 축소 움직임을 보인 8월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비 올 때 우산 뺏기 식’으로 영업하지 말라고 경고했고,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6월 은행장 간담회에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우산을 뺏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고 성완종 회장의 경남기업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권의 압박과 부실기업 직원들의 반발도 구조조정 지연에 한몫을 했다. 그래 놓고 이번 국감에선 금감원이 ‘기업 구조조정 상시화’를 역설하며 은행들을 다그치니 ‘오락가락 금융 정책’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을 것이다.

좀비기업의 큰 문제는 국민의 세금을 낭비해 정상적인 기업의 투자와 고용까지 위축시킨다는 점이다. 1990년대 초반 일본 거품경제 붕괴 이후 좀비기업이 급증한 것이 ‘잃어버린 20년’의 한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은 이런 한계기업을 3분의 2로 줄이면 정상기업의 고용이 연간 11만 명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침내 채권은행들도 ‘좀비기업 솎아내기’를 위해 대출 회수 가능성이 낮은 부실기업에 대한 엄격한 여신 관리에 나선 모양이다. 이번에야말로 정부가 은행들의 자구(自救) 노력을 막는 일은 삼가야 한다.
#좀비 기업#부실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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