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구체안 협의 않고 시한만 압박… 다급한 與 ‘졸속 합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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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연금개혁/당정청 난맥 노출]靑 뒤늦게 “국민연금 개입 월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왼쪽에서 네 번째)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김 대표 오른쪽)가 2일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 및 국민연금 강화를 위한 합의문’에 서명한 뒤 미소짓고 있다. 왼쪽부터 새누리당 공무원연금개혁특별위원회 간사 조원진 의원, 주호영 공무원연금개혁특위 위원장, 유승민 원내대표, 김 대표, 문 대표,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 강기정 정책위원회 의장, 공적연금 태스크포스(TF) 간사 김성주 의원.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왼쪽에서 네 번째)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김 대표 오른쪽)가 2일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 및 국민연금 강화를 위한 합의문’에 서명한 뒤 미소짓고 있다. 왼쪽부터 새누리당 공무원연금개혁특별위원회 간사 조원진 의원, 주호영 공무원연금개혁특위 위원장, 유승민 원내대표, 김 대표, 문 대표,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 강기정 정책위원회 의장, 공적연금 태스크포스(TF) 간사 김성주 의원.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여야 대표 간 담판을 거쳐 합의안이 나왔다. 그러나 여야 협상 과정에서 당초 논의 대상도 아닌 공적연금 강화라는 혹까지 붙여 새로운 갈등의 불씨를 지폈다는 평가가 많다.

여야 지도부가 막판에 공적연금 강화 방안과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인상에 합의한 소식이 전해지자 청와대는 “분명한 월권”이라고 반발했다. 공무원연금 개혁 방향을 놓고 당청 갈등이 표면화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 정부 “2007년 국민연금 개혁과 반대 방향” 우려


2일 여야 대표 회동 당시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김무성 대표를 찾아 여야 합의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이 문제였다.

2007년 당시 열린우리당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진통 끝에 60%대였던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40%대로 낮추는 방향의 개혁을 주도했다. 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 때문에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바꾼 것. 그러나 2일 여야 협상에서 다시 소득대체율을 50%대로 올리는 ‘더 내고 더 받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자 정부가 놀란 것이다. 이에 대해 조윤선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도 여당 지도부에 우려를 표명했다.

다만 공무원연금 협상 자체가 결렬될 위기에 놓이자 새누리당 지도부는 고심 끝에 합의를 수용했다. 그 대신 애초 여야 합의문에 포함돼 있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라는 문구 자체를 빼고 공적 연금 강화를 위한 사회적 기구 구성에만 합의하는 선으로 수위를 조절했다.

김 대표도 여야 회동 직후 “당장 공무원연금 적자가 워낙 심각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에서 (합의)했다”며 “그 부분(국민연금)도 고민이 또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도 3일 통화에서 “국민연금은 야당과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 보자는 차원의 얘기일 뿐 결론 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 한계 드러낸 당정청 채널

역대 정부마다 굵직굵직한 현안은 당정청 고위 채널을 통해 처리되곤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에는 새누리당과 정부, 청와대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재직 시절 고위 당정청 채널은 무용지물이었다. 김무성 대표도 지난해 취임 이후 여러 차례 당청 간의 소통을 강조했지만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공무원연금 개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중반까지 청와대는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당과 긴밀하게 협의하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19일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에서 청와대가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연말 안에 반드시 당이 처리해야 한다”고 요구한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새누리당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결국 김 대표는 지난해 10월 28일 소속 의원 전원의 서명을 받아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를 하면서 드라이브를 걸었다. 당시 정치권에선 김 대표가 박 대통령과 충돌한 개헌 발언 논란을 수습하기 위해 ‘총대’를 멨다는 관측이 나왔다.

올해 들어 당정청 채널이 제대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2월 초 유승민 원내대표가 친박(친박근혜)계의 견제를 뚫고 원내대표 경선에서 당선됐고,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이 취임하면서 당청 채널이 복원될 조짐을 보인 것이다. 이완구 전 원내대표를 국무총리에 기용하면서 당정청 간 거리는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 고위 당정청과 당정청 정책조정협의회 등 투 트랙 채널이 가동됐다.

그러나 지난달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불거지면서 당청 간 핫라인은 주춤했다. 친박 핵심들이 줄줄이 연루된 상황에서 새누리당 지도부는 청와대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협상 파트너로서 야당을 몰아붙이기 어려운 점도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3일 “청와대는 무조건 처리해 달라고만 하니 정치적으로 공무원 노조와 야당을 설득해야 하는 여당으로선 갑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 청와대, 대야 핫라인 끊겨

공무원연금 개혁이 ‘미흡한 개혁’으로 남은 이유로 청와대가 박근혜 정부 출범 초반부터 ‘대야(對野) 소통’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013년 8월 외교통상부 본부대사를 지낸 박준우 정무수석을 기용하자 정치권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시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사건 등으로 야당이 장외 투쟁까지 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와 여야 사이를 오가며 가교 역할을 해야 할 정무수석을 비정치권 인사로 기용했기 때문이다. 결국 박 전 수석이 여의도 정치에 전혀 녹아들지 못하면서 불통 논란이 심화됐고 지난해 6월 조윤선 정무수석으로 교체됐다.

조 수석이 취임한 뒤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한 야당 관계자는 “공무원연금 개혁안 협상 과정에서도 조 수석이 여러 차례 전화는 했지만 우리 의견이 청와대에 제대로 전달됐는지는 의문”이라며 “정무수석보다는 야당과 긴밀히 소통할 수 있는 정무장관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강경석 coolup@donga.com·배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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