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년]선박 불법 증개축 여전… 선원 안전교육은 주먹구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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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약속 지켜졌나

1. 선박 안전

낡은 배에 무리한 증축까지

세월호 비극의 시작은 2012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달 청해진해운은 1994년 6월에 일본 하야시카네 조선소에서 건조된 ‘낡은 배’를 일본 선사로부터 사들였다. 이어 세월호로 이름을 바꾸고 증축했다. 4, 5층 객실을 고쳐 여객 정원을 804명에서 921명으로 늘렸다. 무리한 증축으로 세월호의 무게 중심은 11.27m에서 11.78m로 51cm가 높아졌고 총 톤수는 6586t에서 6825t으로 239t 늘었다.

▶복원성 떨어뜨리는 개조 금지

국회는 선박안전법을 개정해 여객선의 복원성을 떨어뜨리는 개조를 금지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여객실 등을 개조할 때 해양수산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그러나 해수부 위탁을 받아 선박 안전을 점검하는 선박안전기술공단은 세월호 사고 이후에도 민간 선박의 불법 증·개축을 현장 확인 없이 서류에 첨부된 사진만 보고 2건 허가했다.

2. 화물 과적

2배 이상 싣고 평형수 절반 미달


세월호가 실을 수 있는 최대 화물 적재량은 1077t. 사고 당일 세월호는 규정의 갑절 수준인 2142t을 실었다. 배의 복원성을 유지하려면 최소 1694t의 평형수를 실어야 했지만 당시 세월호에 담긴 평형수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761t이었다. 게다가 화물들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아 배가 기울면서 미끄러진 화물들이 세월호의 침몰을 재촉했다.

▶화물 한도 초과땐 발권 자동중단

해수부는 화물 과적을 막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화물 전산 발권을 의무화했다. 적재 한도가 초과되면 발권이 자동 중단돼 화물 과적이 차단된다. 화물 적재 및 고정을 끝내야 하는 시간은 ‘출항 10분 전’에서 ‘30분 전’으로 강화했다. 이달부터 대형 여객선(3000t급 이상)은 의무적으로 화물 계량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3. 신원 확인

477→459→462… 오락가락


477→459→462→475→476. 사고 발생 이후 사흘간 정부가 발표한 세월호의 탑승객 수다. 신원을 확인하는 승선 절차가 부실했던 탓에 배에 몇 명이 탔는지, 탄 사람은 누구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결국 해경은 폐쇄회로(CC)TV 화면을 보고 탑승객 수를 확인해야 했다. 선사들의 관행적인 검표 과정은 있었지만 법적 의무는 아니었다.

▶성별-생년월일등승객정보의무화

해수부는 지난해 5월부터 매표소에서 발권할 때 모든 선사들이 성별, 생년월일 등 승객의 정보를 기록하도록 했다. 정부는 연안 여객선 관리감독의 일원화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사고가 난 지 1년이 되도록 일원화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선박 검사 업무도 여전히 한국선급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 해피아

해운조합 이사장 12명중 10명 차지

해운조합은 1962년 출범한 해운회사들의 이익단체로 세월호 사건이 터진 지난해까지 이사장 12명 중 10명이 해수부 관료 출신이었다. ‘해피아(해수부+마피아)’의 근거지였던 셈이다. 세월호는 해운조합과 해수부가 이끈 선령 제한 연장의 혜택을 톡톡히 본 선박이었다. 2013년 1월 세월호의 증축이 문제없다는 검사 결과를 내놓은 한국선급 역시 대표적인 해피아 집단이다.

▶기관장 선임때 해수부 출신 배제

세월호 사고의 배경에 해수부 관료와 해운업계의 고질적 유착관계가 있다고 판단한 검찰은 지난해 8월 해운조합 전 이사장과 해수부 공무원 등 43명을 기소했다. 이후 해수부는 산하 공공기관 혹은 유관기관의 기관장 선임에 해수부 출신을 배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시적 현상일 뿐 시간이 지나면 해피아가 다시 등장할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5. 긴급 전화

1분1초가 아까운데 묻고 또 묻고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단원고 학생 고 최덕하 군(당시 17세)은 오전 8시 52분 휴대전화로 가장 먼저 신고했다. 해양사고 신고전화는 122이지만 최 군은 익숙한 119로 전화를 걸었고 전남소방본부 119 상황실로 연결됐다. 119는 2분 뒤 해경으로 연결했고 해경은 최 군을 선원으로 착각해 위·경도와 위성정보를 묻는 등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다.

▶119·112·110으로 통합


정부는 내년까지 20여 개에 달하는 각종 신고 전화를 119, 112, 110 등 3개 번호로 통합한다. 폭력·밀수 등 긴급한 범죄 신고는 112, 화재·해양사고 등 긴급한 재난이나 구조 신고는 119로 통합된다. 110은 긴급하지 않은 일반 민원을 받는다. 112와 119를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어느 쪽으로 전화를 해도 큰 상관이 없다.

6. 선원 교육

‘퇴선명령’ 안한 채 선장부터 탈출


배가 기울기 시작하자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선원 8명은 5층 조타실로 모였다. 배가 빠르게 물속으로 가라앉는 상황에서 그들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우왕좌왕하던 선장은 결단을 내렸다. ‘내가 먼저 살기로.’ 이들은 사고 발생 1시간 만인 오전 9시 45분에 조타실을 벗어났다. 기울어진 배에서 구조물을 간신히 붙잡으며 선원 전용통로를 통해 탈출했다.

▶35억 들여 선박비상훈련장 건설


해수부는 지난달부터 대형 여객선의 선장 자격을 2급 항해사에서 1급 항해사로 상향 조정했다. 선원이 당황하지 않고 사고에 대처할 수 있도록 35억 원을 투입해 부산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 ‘선박종합비상훈련장’도 짓고 있다. 이런 조치들이 무색하게 선원들의 안전교육 참여율이 여전히 낮고, 교육도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지금도 나오고 있다.

7. 초동 대처

해경 선내진입도 대피방송도 안해


세월호 사고 피해가 컸던 것은 해경의 초동 대처가 미흡했던 점도 이유다.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경비정 123정(100t급)은 지난해 4월 16일 오전 8시 58분 출동명령을 받고 오전 9시 30분경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하지만 32분 동안 바다를 내달렸을 뿐 상황을 파악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123정은 선내 진입은 물론이고 승객들에게 대피 방송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영상으로 현장상황 보면서 지휘

해경은 250t급 이상 함정 72척에만 있던 위성통신망을 지난해 하반기 123정과 같은 100t급 소형경비정 30척에도 설치했다. 중요 상황 발생 시 본부에서 현장 상황을 영상으로 보면서 함정에 지시를 내릴 수 있게 됐다. 올해 말까지 54억 원을 들여 저궤도 위성 조난시스템을 중궤도 위성 조난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해 조난 신고 접수의 정확도도 높인다.

8. 해상 관제

최초 신고 30분 뒤 탈출 지시


세월호 선원들은 지난해 4월 16일 오전 8시 55분 제주VTS(해상교통관제센터)에 맨 먼저 사고를 신고했다. 제주VTS는 진도VTS에 연락을 해줬고, 선원들은 오전 9시 7분에야 진도VTS와 교신했다. 진도VTS는 세월호가 항로를 이탈하고 속도를 크게 줄였어도 이런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세월호가 제주VTS에 신고를 한 뒤 30분이 지나서야 관제센터의 ‘탈출 지시’가 내려졌다.

▶관제센터 일원화… 인력 확충

세월호 사고 이후 VTS의 초기 대응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되자 정부는 해상교통관제센터를 국민안전처 산하로 일원화했다. 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에는 해상교통관제과가 신설됐으며 VTS 관제사 18명이 증원됐다. 관제사 교육도 기존 4주에서 10주로 연장됐고, VTS 간 위기 대응 훈련도 월 1회 이상 실시하고 있다.

9. 컨트롤 타워

구조자 엉터리 집계에 명단 바뀌어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난해 4월 16일 오후 1시 정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368명을 구조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중대본은 2시간 뒤 164명이 구조됐다고 정정했다. 사고 직후 구조자 명단이 뒤바뀌는 등 혼선이 이어졌다. 해경구조본부, 중대본, 해수부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대책본부까지 추가되면서 지휘기관만 4곳이 됐다.

▶대형재난 땐 총리가 지휘

지난해 말 재난 및 안전관리에 관한 기본법이 개정돼 앞으로 세월호 같은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국무총리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을 맡아 지휘하게 된다. 기존에는 장관이 맡게 돼 있었지만 ‘격’을 높인 것이다. 기존 해양경찰과 소방방재청, 안전행정부 안전관리 인력을 통합한 국민안전처가 지난해 11월 출범해 재난 예방 및 대응 업무를 총괄하게 됐다.

10. 구조 인력

무자격자에 성과 다툼 논란까지

사고 이후 잠수사들이 선내에 진입해 처음 시신을 수습한 것은 19일 오후 11시 50분경이었다. 사고 이후 3일이 지나서야 선내 진입에 성공한 것으로 생존자를 찾기에는 이미 너무 긴 시간이 흘렀다. 이후 이들 시신을 수습한 주체를 두고 민간잠수팀과 구난업체 언딘마린인더스트리가 각각 서로 자신의 공이 컸다고 주장해 논란이 됐다. 수색 과정에도 정부는 무능함을 드러냈다.

▶2017년까지 5개 특수구조단 운영

정부는 세월호 사고 이후 지난해 말 부산에 중앙해양특수구조단을 신설했다. 올해에는 동해와 서해에 각각 해양특수구조단을 신설하고, 2017년까지는 중부와 제주에도 추가해 총 5개의 특수구조단을 운영할 계획이다. 특수구조단에 헬기를 배치해 해양 사고 시 1시간 내 도달하는 구조 시스템도 마련한다.

김준일 jikim@donga.com·황인찬·권오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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