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vs 흉물, 폐교의 얄궂은 운명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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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3595곳 중 401곳 방치

지난해 강원 영월군 인도미술박물관을 찾은 충북 제천시 송학중 학생들이 인도의 전통 복장을 입는 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한국박물관협회 제공
지난해 강원 영월군 인도미술박물관을 찾은 충북 제천시 송학중 학생들이 인도의 전통 복장을 입는 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한국박물관협회 제공
강원 영월에 있는 인도미술박물관은 폐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2012년 문 열었다. 입학생이 없어 2007년에 문 닫은 금마초등학교 건물을 개인이 임차해 내부를 흰색으로 다시 페인트칠하고 토성(土城) 분위기가 나도록 황토색 마감재로 외벽을 꾸몄다. 폐교된 뒤 방치됐던 초등학교는 그렇게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금마초교는 한 층짜리 건물 한 동에 교실 5개로 이뤄져 있었다. 박물관으로 리모델링하면서 교실 1개를 미술품 수장고로 꾸몄고, 나머지 교실은 벽을 허물어 인도 전통 미술품 전시장과 인도문화 체험활동 학습장으로 만들었다. 인근 마을 초중고교 학생들은 학교 단위로 체험활동이나 인도문화 견학을 위해 박물관을 자주 찾는다. 전여송 인도미술박물관장(61)은 “학교 건물이라 크고 넓게 지어졌기 때문에 체험학습 활동 공간도 충분히 만들 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영월 지역에는 이 박물관 외에도 폐교를 활용해 만든 박물관이 10곳에 이른다. 문화체험 시설이 부족했던 강원 지역 학생들에게 ‘폐교 박물관’은 청소년 체험학습 공간이 됐다. 또 이 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은 작은 옛 학교 건물을 방문해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 늘어나는 폐교… 결과는 극과 극

버려진 폐교는 지자체와 지역교육청의 고민거리다. 하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고민거리에서 ‘명물’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인구가 줄어 침체된 지역사회가 폐교를 리모델링한 박물관 덕분에 관광명소로 바뀔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지자체와 교육청은 폐교 활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장 열심인 지역은 강원이다. 강원은 금마초교처럼 폐교를 박물관이나 야영장 또는 청소년 수련시설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아직도 이 지역에 폐교가 40곳이나 있어 활용에 애를 먹고 있다. 지난달 16일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서울, 경기, 인천시교육감을 평창 알펜시아로 초청해 “강원 지역 폐교를 수도권 학생들의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수련활동 공간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이달 4일에는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직접 서울시교육청을 방문해 “강원을 소규모 테마 수학여행지로 선택해 달라”고 부탁했다. 폐교 건물을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강원 지역의 고민이 담긴 행보다.

수도권에서 차로 한두 시간 거리에 위치한 덕에 강원은 그나마 폐교 활용도가 높은 편이다. 수도권에서 먼 지자체일수록 폐교 재활용을 둘러싼 고민이 깊어진다.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전국 폐교의 세부 활용 내역’을 살펴보면 소규모 학교 통폐합이 시작된 1982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전국에 발생한 폐교는 총 3595곳. 이 중 활용되지 못하고 방치된 폐교는 401곳이다. 지역별로 보면 전남에 139곳, 경북과 경남에 각각 49곳, 63곳이 있다.

전북 부안 청림천문대에 견학온 청소년이 천문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있다. 청림천문대 제공
전북 부안 청림천문대에 견학온 청소년이 천문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있다. 청림천문대 제공
○ 지역에 따라 활용 형태도 가지각색

폐교는 보통 임대하거나 매각한다. 교육청 입장에서는 건물을 팔면 더이상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매각을 선호하는 편이다. 매각대금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러나 옛 학교 건물이 지닌 의미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학교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졸업생들이 인근 지역에 여전히 거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보통 지역 여론은 매각보다는 임대를 선호한다. ‘학교는 지역사회의 재산’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어 학교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길 원하는 것이다. 학교라는 특성을 살린 폐교 활용 우수 사례에는 박물관 이외에도 위탁형 대안학교, 청소년 수련시설로 사용한 사례가 꼽힌다.

전북 부안에 위치한 청림천문대도 폐교를 활용한 청소년 수련시설이다. 부안군이 2011년 폐교를 매입한 뒤 천문관측용 망원경을 설치해 우주의 신비를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넓은 폐교시설을 활용해 최대 65명이 묵을 수 있는 숙박시설을 갖췄고 인근 지역 주민 외에 일반 관광객에게도 개방해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위탁형 대안학교 중에는 여성가족부가 전북 무주에 있는 폐교를 지난해 매입해 운영하는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도 있다. 주로 인터넷 중독에 빠진 청소년들이 신청해 짧게는 1주, 길게는 5주 과정 동안 상담 및 야외활동을 통해 중독 치료를 받는다. 위탁형 대안학교 형식으로 운영한다.

폐교는 이 외에도 지역주민 복지시설, 농업생산시설, 문화예술 또는 문화사업 공간, 사회복지시설 등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마을회관이나 농산물 가공시설로 활용하는 곳도 있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폐교#인도미술박물관#청림천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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