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 신통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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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 27년만에 결승행]
빠른 패스로 이라크 흔들기 적중… 측면 공격수 ‘한교원 카드’도 성공



울리 슈틸리케 감독(사진)은 축구 관계자들로부터 “인간적이고 속 깊은 감독”으로 불린다. 먼저 말을 걸거나 웃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속정이 깊다. 이는 첫아들의 죽음과도 연관이 깊다고 한다. 2006년 코트디부아르를 맡았지만 2년 만인 2008년 갑자기 물러났다. 폐 섬유종을 앓고 있는 아들의 병간호를 위해서였다. 아들은 그해 세상을 떠났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이후 슈틸리케 감독이 가족을 더욱 챙겼고 인생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 같다”고 전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쿠웨이트와의 조별리그 2차전을 졸전으로 마친 뒤 “한국은 더이상 우승후보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러 나온 선수들이 가라앉아 있자 “다들 무슨 문제가 있나? 이것이 인생이다. 맛있게 식사하라”며 다독였다. 냉·온탕을 오가는 화법으로 분위기를 휘어잡은 것이다. 26일 이라크와의 준결승은 이런 슈틸리케 감독의 전략이 제대로 들어맞은 경기였다.

첫 번째 ‘슈틸리케 마법’은 지피지기(적을 알고 나를 알라)였다. 한국보다 하루를 덜 쉬어 체력적인 부담이 큰 이라크를 상대로 볼 점유율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비가 오는 날씨까지 고려해 선수들에게 한 템포 빠른 패스를 주문했다. 이라크는 수비 숫자를 늘리며 체력을 아꼈지만, 한국이 측면과 중앙에서 활발하게 패스를 이어가자 따라 나올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마법은 ‘측면 힘 빼기’다. 이라크가 주 득점 루트로 내세운 왼쪽 측면 공격을 봉쇄하기 위해 한교원 카드를 빼 들었다. 한교원은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나서 차두리와 함께 이라크의 왼쪽 공격을 저지했다. 한교원이 적극적으로 공간에 침투하면서 상대 윙백의 오버래핑을 막는 반사이득도 누렸다. 전반 한교원이 힘을 빼놓은 이라크의 왼쪽 측면은 후반 이근호가 휘젓고 다닌 무대가 됐다.

세 번째 마법은 철저한 경고 관리다. 8강에서 경고가 모두 소멸된 점도 한국의 적극적인 공격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은 이번 대회에서 준결승에 오를 경우 경고 1장을 소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슈틸리케 감독은 경고를 받은 선수들을 경기에 내보내지 않는 등 경고 관리에 만전을 기했다. 한국이 준결승에 진출하면서 조별리그와 8강전에서 받은 8명의 경고는 AFC의 규정에 따라 소멸됐고, 이날 태극전사들이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을 발휘하게 한 토대가 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날 경기 후 “한국이 경기를 하면서 점차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규율도 잘 잡혀간다. 한국 문화이자 우리의 강점인 것 같다. 세트피스를 계속 연습했는데 이전과 달리 오늘 잘됐다”면서도 “한국이 27년 만에 결승에 진출했지만 우승을 하더라도 한국 축구는 더 노력해야 한다. 당장 보완할 점이 많다”며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시드니=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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