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본 재미동포들 눈물 펑펑, 힘들게 일군 대한민국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6일 10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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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한인유권자 풀뿌리운동의 대부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인터뷰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재미 동포들은 단지 영토가 아닌, 한국과 미국의 ‘관계’ 위에서 사는 사람들”
“시댁(미국)에서 ‘사돈댁(한국)의 귀한 딸(재미동포) 덕을 톡톡히 본다’는 소리 들어야”
“국제시장 본 재미동포들 눈물 펑펑…그렇게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 더욱 발전시켜야”

미국 내 대표적 한인유권자단체인 시민참여센터의 김동석 상임이사(57)는 한국의 ‘운동권 학생’ 출신이다. 박정희 정권 말기 시위 수배자로 강제 징집돼 1979년 10·26사태와 1980년 5월 광주민주항쟁을 군 복무 중에 맞았다. 1985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 그는 미국에서도 계속 ‘운동권’이다. 한국에서 반정부 운동을 했다면, 미국에선 한인사회의 권익신장을 위한 풀뿌리운동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뉴욕·뉴저지의 각종 공직선거에 출마한 한국계 인사의 단골 지지 연설자이다. 그의 지원 유세를 여러 차례 본 적이 있는데 그 논리는 늘 간단명료했다.

“우리(한국계 미국인)는 백인이 아니다. 소수민족(마이너러티)이다. 뭉치고 외치고 참여하지 않으면 그들(주류 백인)은 우리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다. 뭉치고 외치고, (정치에) 적극 참여하자.”

요즘 뉴욕 뉴저지의 한인 지도자급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한국판 AIPAC(공공정책협의회)’을 만들기 위한 정비 작업에 한창인 그를 25일 뉴욕 플러싱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AIPAC은 워싱턴 정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재미 유대인 로비단체다.

―우선 재미동포의 위상과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핏줄은 한민족이지만 국적은 미국인 상황이 동포 2,3세에겐 혼란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을 것 같다.

“국경이나 국적 개념으로만 접근하면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한인들은 한국과 미국의 ‘관계의 땅’에서 살고 있다. 우리에게 조국은 미국과 한국. 절반씩이다. 양 국가에 철저하게 준법하는 일이 모범시민의 길이다. 좀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미주한인들은 한국을 위해서 역할을 하라고 한국 정부가 파견한 스파이’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시집 간 딸이 매일 같이 친정만 바라다보면서 친정만을 위해서 살다가는 시댁에서 쫓겨날 것이다. 시댁에서 역할을 잘 해 서 인정받고 시부모가 친정 부모에게 ‘귀한 딸의 덕을 본다’고 하는, 그런 관계가 가장 바람직한 한미관계이고 그런 역할을 미주 한인들이 해야 한다.”

―그럼 한국 정부는 재미동포를 어떻게 대해야 한다고 보는가.

“한국과 미국의 국익을 일치시키는 논리로 미주 한인들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나는 한미관계를 난처하게 만든 일부 불법 로비스트들이 미주한인사회에 큰 오점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미주 한인들은 우선 미국의 국익에 충실한 미국의 시민이 돼야 한다. 이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미국 내 이민자들이 모두 다 자신의 모국이나 출신국을 위해서만 일한다면 미국이란 나라는 하루아침에 거덜이 날 것이다. 이런 점을 분명히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미주한인 사회가 미국 내 힘 있는 소수민족으로 자리잡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선 자기 지역의 정치인과 관계를 맺는 일이다. 이제부터 미국의 모든 정치활동은 2016년 대통령 선거에 맞춰진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전에서 당선된 제114 회기의 연방의원들이 각 당에서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대의원이기 때문에 자기 지역 연방의원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하다. 지난해 여름에 전국의 한인들 300여명이 워싱턴에 모여서 한인사회 이슈를 연방의원들에게 직접 전달했다. 지역구에서 유권자가 모이니까 당연히 지역구 연방의원이 달려올 수밖에 없다. 상하 의원 11명을 의사당 밖의 한인들 모임에서 동시에 만난 것은 이민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이 일을 2015년 여름에도 개최할 것이다. 1월부터 전국 대도시 한인사회를 돌아다니면서 워싱턴대회에 참가할 한인들을 대거 조직힐 예정이다.”

―워싱턴 정가가 한인사회의 이런 움직임에 얼마나 주목하고 있는가.

“한국계 미국인은 그동안 ‘미국 내 소수계 중에서 경제력은 1등이고 정치력은 꼴등’이란 얘기를 듣고 했다. 그러나 2007년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이 연방의회를 통과한 뒤 ‘워싱턴 선수들(의회 로비스트 등)’들 사이에서 ”유대인, 쿠바인, 대만인의 뒤를 이어서 한인들이 워싱턴으로 진격해 오고 있다“란 이야기가 나오기 시직했다. 한인들의 풀뿌리 정치력이 일본의 거액 로비를 이겨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2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낸 축하 전문에서 ”한국이 미국에 중요한 것은 지정학적으로 미국의 국익 때문이 아니고, 10만 이상의 한국 내 미국시민과 200만 이상의 한국계 미국시민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의 안보가 미국시민의 생명의 문제임을 선언한 것’으로 미주한인 사회는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인 사회가 극복해야 할 대표적 과제는 무엇인가.

“늘 아쉬운 것은 한인사회의 리더십이다. 우리는 예측불능의 급변시대에 살고 있다. 쿠바와 수교하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전격적 선언을 예측하긴 어렵다. 아직 유대계만큼은 안 되더라도 한인 사회도 최선을 다해 (세상 흐름에) 깨어 있어야 한다. 일부 한인사회 리더들이 미국 사회의 흐름이나 작동 방식엔 둔감하면서 온통 한국의 권력이나 한국 정치에 정신이 팔려 있는 모습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리더십이 미국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언어(영어)뿐만 아니라 미국의 작동방식을 이해해야 하고 늘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부한 사람이 리더가 되던지 리더가 공부를 하던지 그래야 한다. 한인사회의 정치력 신장은 결단 한인사회라는 집단을 제대로 이끌 리더십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대화가 다소 무겁게 흘러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화제의 영화 ‘국제시장’ 얘기를 마지막으로 꺼냈다.

―재미동포들 사이에서도 한국의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다룬 이 영화가 화제라고 들었다. 봤느냐.

“꾹꾹 참다가 결국 눈물이 터졌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동포들이 이 영화를 보며 많이 울었다. (영화에서 보듯이) 저렇게 힘들게 일군 대한민국을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먼 타국에 있으니 그런 생각이 더욱 절실하게 든다. 고국에 계신 분들도 더욱 노력해주시고 분발해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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