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톡톡]60대 “가욋일까지 하며 주 72시간 근무… 더 힘든건 인격 무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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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서비스업이란 자긍심 있지만… 처우 생각하면 미래 불안”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경비원이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하는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말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는 50대 경비원이 몸에 불을 붙여 숨졌습니다. 주민에게 받은 폭언과 모멸감이 자살의 원인으로 지목됐죠. 그제야 경비 노동자의 열악한 근로환경과 처우에 사회적 관심이 쏠렸습니다. 경비 노동자들은 그동안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채 일했습니다. 올해부터 최저임금의 100%를 받도록 법이 적용되지만 이 최저임금법이 오히려 경비원들의 목을 죄기도 합니다. 임금을 올리려면 관리비부터 올려야 하니 경비원 수를 줄이자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그뿐인가요. ‘생애 마지막 직장’이라고 불리던 경비직에 20, 30대도 지원하는 요즘입니다. 서울 시내를 돌며 이래저래 고달픈 경비원들의 속사정을 들어봤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노후, 이 일뿐”

―10년 전 동네에서 작은 빵집을 했다. 외환위기가 온 뒤로 가게를 정리하고 이 일을 시작했다. 그게 10년째다. 나처럼 오래 일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5년 정도 하면 오래 하는 거다. 몸이 상하거나 주민들, 관리소와의 마찰 때문에 그만둔다. 몸 쓰는 일이니 운동하면서 건강 지킨다고 생각하고 일했다. 나도 이제 정년이다.(70·행당동 아파트 10년 차)

―많이 배웠든, 못 배웠든 60세 이상이면 써주는 데가 없다. 그래도 우리 아파트는 정년이 만 67세다. 이후로도 일을 잘하면 주민투표로 1년씩 3번을 더 연장할 수 있다. 우리 세대는 노후 준비할 생각을 못했다. 이 일이 절실하다. 그런데 새로 짓는 아파트에선 젊은 사람들을 찾는다고 하더라.(65·신당동 아파트 4년 차)

―올해부터는 최저임금을 지켜주기로 돼 있지만 사실 지금도 100% 다 못 받는다고 봐야 한다. 봉급을 올려주는 대신에 휴식시간을 늘렸다. 편법이다. 그런데 문제는 휴식시간에 쉴 수가 없다는 거다. 자리를 비우면 안 되는 걸 회사도 알고 나도 알지만 계약서에 서명을 안 할 수가 없다. 나 말고도 일할 사람은 많다.(58·도곡동 아파트 3년 차)

―작년에 이미 절반이 잘렸다. 15층 동에서는 6명이 일했는데 4명으로 줄고, 4명이 일하던 10층 동에서는 2명이 일한다. 군데군데 있던 초소에는 아예 사람을 없앴다. 올해부터 임금이 오르니까 미리 자른 것 같다. 작년에는 최저임금의 90%만 줘서 세전 140만 원을 받았는데 올해부터는 100%를 준다고 하더라.(63·목동 아파트 3년 차)

―우리가 여기 있는 건 0.1%의 사고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다. 입주민 요구도 들어줘야 하지만 아파트 상가에 드나드는 외부인들의 출입관리도 해야 한다. 주변에 상가가 많아서 유동인구가 많다. 힘들어도 우리가 일해서 사고나 문제가 안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뿌듯하다. 주민들도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겠다.(62·대치동 아파트 5년 차)

“순찰, 안내, 청소, 분리배출, 택배까지 전담”

―계약서에는 순찰, 안내, 감시, 통제만 한다고 돼 있지만 사실은 분리배출부터 청소, 택배보관까지 다 한다. 주당 근무시간은 72시간이다. 일하는 시간만큼 다 받으면 월 200만 원 이상 받아야 한다. 근로기준법상으로 계약서가 잘못 됐다고 말 한 번 했다가 밉보였다. 주민 민원을 또 받으면 퇴사한다는 각서까지 썼다.(62·대치동 아파트 2년 차)

―관리비를 인상할 수 없으니 맞교대로 혼자 근무한다. 모든 일을 혼자 해야 한다. 특히 매일 분리배출을 해야 하는 게 힘들다. 주차장 바닥부터 놀이터까지 청소해야 하고. 조금 전에도 단지 청소를 한 뒤 분리배출을 하고 왔는데, 그새 누군가 길에 쓰레기를 버렸는지 “청소 안 하고 어딜 돌아다니냐”란 말을 들었다. 억울하고 힘 빠진다.(67·석관동 아파트 2년 차)

―휴식시간이 없다. 정해진 시간은 있는데 쉬지를 못한다. 수시로 차가 들고 난다. 주민 차량뿐만 아니라 방문 차량, 택배 차량도 많다. 늘 신경 쓰며 봐야 한다. 그렇게 봐도 “불법 주차가 돼 있다” “차가 긁혔다” 등의 항의가 들어온다.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밥을 먹을 때도 늘 급하게 먹는다. 항상 불안하다.(67·장안동 아파트 7년 차)

―자정이 넘으면 우리도 잔다. 그런데 잘 데가 없다. 초소 안에 종이 박스를 깔고 그 위에서 잠깐 눈을 붙인다.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쉬는지 모를 거다. 택배라도 많이 쌓이는 날에는 박스 깔고 누울 공간조차 없다. 그럴 땐 그냥 앉아서 눈을 붙인다.(67·공덕동 아파트 2년 차)

―주민들과 잘 지내는 편이었다. 더운 날 수박 잘라 갖다 주는 분도 있고, 전 부쳐 나눠 먹자는 분도 있었다. 나도 눈이라도 오면 주민들이 혹시 다칠까봐 더 빨리 출근해 치우고 마음을 썼다. 그런데 어느 날 관리소에서 다른 동으로 자리를 옮기라고 했다. 동대표가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더라. 인사를 제대로 안 했다나. 10명하고 다 잘 지내도 1명 눈 밖에 나면 내쳐지는 게 여기 일이다.(54·대치동 아파트 2년 차)

“욕설 들은 날은 밤잠도 설쳐”

―하루는 할아버지랑 손녀가 경비실 앞을 지나갔다. 초등학생인 손녀가 “아저씨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니 할아버지가 “경비한테 왜 인사를 해!”라고 타박하더라. 차라리 인사를 안 받는 게 낫다. 예전에 아이들에게 “아저씨한테 인사하고 다녀야지”라고 말했다가 주민들에게 한 소리 들었다. “당신이 뭔데 우리 애들한테 간섭을 해?”라는 거다. 우리를 막 대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68·이촌동 아파트 3년 차)

―요즘은 택배 때문에 애를 많이 끓인다. 받아놓은 택배가 있어서 연락을 여러 번 해도 안 찾아갈 때가 있다. 분실 사고 나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밤에도 연락하는데, 그러면 “지금 몇 시인데 연락하느냐”고 화를 낸다. 아들뻘 되는 사람한테도 인터폰으로 심한 욕설을 들었다. 그럴 때는 다음 날까지 잠을 못 이룬다.(67·목동 아파트 4년 차)

―분리배출을 할 때면 별의별 쓰레기가 다 나온다. 종량제 봉투 아낀다고 생활 쓰레기를 그냥 종이상자에 넣어 갖다 놓는 사람들이 있다. 상자를 정리하다 보면 심할 때는 볼일 보고 처리한 휴지도 잔뜩 들어 있다. 결국 우리보고 치우라는 건데. 보고 있자면 더럽지만 기분이 더 나쁘다.(68·신공덕동 아파트 3년 차)

―하루는 젊은 사람이 전기가 나갔다고 민원을 했다. 어떤 문제인지 알아보겠다고 말했더니 대뜸 “당신 그것도 모르면서 여기서 근무하냐”고 소리를 질렀다. 나도 화가 나서 “아니 어디 이런 놈이 다 있어?”라고 받아쳤다. 그랬더니 서른 살 조금 넘은 사람이 날 칠 기세였다. 언제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60·신당동 아파트 3년 차)

―주차 공간을 두 칸 차지하려는 얌체족들이 있다. 주로 외제차 타는 사람들이다. 한 번은 방문 차량이 두 칸 가운데에 차를 세우기에 옮겨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쌓아둔 택배 상자를 발로 차며 “정리 안 하고 뭐하냐!”고 시비를 걸었다. 내가 “신고하겠다”니까 “변상하면 된다”며 당당하더라. 화풀이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61·장안동 오피스텔 2년 차)

입주민들 “젊은 경비원들이 좋아”

―여긴 경비, 시설, 미화가 각각 나뉘어 있다. 경비원 혼자 다 맡아 하는 기존 아파트와는 차별화된 시스템이다. 체계적으로 일하니까 젊은 친구들도 많이 지원한다. 경비직원 대부분이 30대다. 경비일도 전문화할 서비스업이란 인식이다. 입주민들도 젊은 사람을 선호한다. 위기 상황 대처나 외부인 통제를 젊은 사람이 더 잘할 거라고 생각한다.(33·도곡동 주상복합 8년 차)

―젊은 사람이 해도 ‘경비아저씨’라는 인식에서 더 나아지지 않는다. 특별한 자격 없이 연봉 2000만 원 가까이 받고 일할 곳이 별로 없으니까 일을 하고 있지만, 친구가 한다면? 말리고 싶다. 월 260시간을 일해야 하고 밤낮이 바뀐 생활에 몸이 많이 상한다. 작은 말실수에도 바로 민원이 들어오니 말 한마디 편하게 할 수가 없다.(27·도곡동 주상복합 2년 차)

―도심 사업장 건물은 경비직에 20, 30대만 두기도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직원들 간 분위기가 군대 같다. 아무래도 보안을 담당하는 분야라 위계도 심하게 따지고 폭력도 존재한다. 일도 힘들지만 군대식 문화도 견디기 어렵다.(28·신문로 빌딩 1년 차)

―연봉은 1800만 원 정도다. 또래 친구들과 비교하면 적은 수입이다. 그래도 서비스업이라고 자긍심을 가지려 한다. 다만, 폐쇄회로(CC)TV가 늘 지켜보고 있어서 감시받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고민도 많다. 벌이도 적고 밤낮 바뀌어 일하는 처지에 결혼이나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민이다.(35·공평동 빌딩 2년 차)

―대학 졸업하고 무역회사에서 일했다. 사무직을 했는데 이 일이 더 적성에 맞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 적응하는 건 힘들었다. 또래 친구들 중 상당수가 얼마 못 버티고 그만둔다. 하지만 나는 목표가 있다. 사업을 해보고 싶다. 그 준비가 될 때까지는 이 일을 계속 할 것 같다.(26·신문로 빌딩 2년 차)

―20대 후반에 들어와서 4년째 일하고 있다. 이틀은 주간, 이틀은 야간에 일한다. 당장은 힘들지만 멀리 보려고 한다. 경비지도사 공부를 하고 있다. 자격증이 있으면 팀장으로 승진하는데 유리하다고 들었다.(32·세종로 빌딩 4년 차)

오피니언팀 종합·김기성 인턴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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