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체크]연봉 5500만원까지는 세금 안는다더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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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연말정산 분통’]상황 예측 못하고 말 바꾼 정부 - 정치권

‘13월의 분노’에 崔부총리 긴급회견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연말정산과 관련한 긴급 기자회견을 한 뒤 굳은 표정으로 연단에서 내려오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3월의 분노’에 崔부총리 긴급회견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연말정산과 관련한 긴급 기자회견을 한 뒤 굳은 표정으로 연단에서 내려오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연초부터 국민감정을 상하게 한 ‘연말정산 대란’은 정치권과 정부의 합작품이다. 사태가 커지면서 이들의 발언 또한 세제 개편 당시와 달라지고 있다.

‘세액공제 확대’를 두고 정부는 애초 “연봉 5500만 원 이하 근로자들의 부담은 줄어든다”고 했다가 뒤늦게 “개인 변수에 따라 일부는 늘어날 수 있다”고 해명했다. 근로소득 간이세액표를 고쳐 원천징수세액을 줄인 것에 대해서도 정부는 “조삼모사(朝三暮四)식 대책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다가 이제야 “덜 걷고 덜 돌려주는 구조에 따른 것”이라며 2년 전 해명을 뒤집는 언급을 내놨다.

○ 세금 정책 둘러싸고 달라지는 당국자 발언

이번 연말정산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세액공제 확대’ 정책을 둘러싸고 정부 당국자들과 여야 의원들은 그때그때 말을 바꿨다.

국회 속기록에 따르면 2013년 세법 개정 당시 정부는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해도 세금이 별로 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김낙회 당시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그해 12월 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세액공제로 일부 전환하면서 총급여 기준 7000만 원 정도부터는 세금이 좀 늘어나게 했다. (하지만) 5500만 원까지는 하나도 세금이 안 늘고, 5500만∼7000만 원까지는 3만∼4만 원 정도 늘어나게 했다”고 설명했다. 의료비, 교육비 등을 세액공제로 전환하면 중산층의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에 김 실장은 “(총급여) 8600만 원 정도까지는 안 늘어난다. 의료비, 교육비 (세액공제를) 해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연말정산에서 다자녀 가구나 미혼 가구를 중심으로 세 부담이 수십만 원 이상 늘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당시 정부의 개별 납세자에 대한 분석이 안이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자녀가 2명인 연봉 6000만 원 직장인의 신용카드 사용액 및 의료비, 보험료, 교육비 지출액이 2013년과 지난해에 같다고 가정할 경우 총 세금 부담이 26만 원 가량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번 연말정산의 근거가 되는 2013년 세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처리된 만큼 정치권도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다. 당시 조세소위(12월 24일) 속기록을 보면 조세소위 위원장인 새누리당 나성린 의원이 “소득공제는 부자에게 유리하다. 그래서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말하자 민주당 홍종학 의원도 “그렇다. 동의한다”라고 답했다. 현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인 최경환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공평 과세가 강화되는 실질적 개혁안을 국민에게 보여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논란이 불거지자 여야 모두 설익은 처방을 내세우며 당시와 상반된 발언을 하고 있다. 나 의원은 “다자녀와 독신 가구의 공제 축소액이 큰 듯한데, 중산층 이하 축소액이 크다면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언급했고, 홍 의원은 “당시 다자녀 중산층 세 부담 증가 문제를 지적했으나 정부 여당이 강하게 밀어붙였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거듭되는 논란에 정부가 내놓는 대책이 납세자들의 성난 민심을 달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문창용 기재부 세제실장이 19일 “평소에 많이 내더라도 연말정산 때 돌려받는 게 좋다는 정서가 있다면 그렇게 갈 수 있다”고 말한 게 대표적인 예다. 세금 정책이 정교하지 못해 발생한 문제의 대책으로 ‘많이 뗀 뒤 많이 돌려주겠다’는 식의 임기응변 대책을 내놓은 것은 납세자들을 존중하는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 간이세액표 개정, 결과적으로 ‘조삼모사’

2012년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정부가 간이세액표에 손을 댄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간이세액표란 국세청이 매달 급여에서 소득세를 원천징수할 때 적용하는 세액표로, 월급명세서에 찍히는 ‘소득세 납부액’의 기준이다. 일단 간이세액표에 근거해서 미리 세금을 거두고 이듬해 1월 연말정산을 거쳐 환급하거나 추가로 징수하기 때문에 실제 확정 세수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런데도 정부는 간이세액표가 ‘체감 세 부담’을 좌우한다는 이유로 정치적 목적 혹은 엉성한 세수(稅收) 추계에 따라 조정해 납세자들의 반발을 키웠다는 것이다.

2012년 9월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반짝 호황’이 끝나 다시 경기가 침체되자 정부가 ‘근로자의 소비 여력을 높이겠다’는 목적으로 간이세액표를 조정해 매월 걷는 세금을 평균 10%가량 낮췄다. 당장은 세 부담이 줄지만 나중에 돌려받는 것도 줄어드는 전형적인 ‘조삼모사’식 대책이었다.

당시에 이 같은 비판이 제기되자 기재부는 “올해 정부 세수가 감소하는 만큼 재정이 풀리는 효과가 있다”고 밝히면서 이듬해 환급액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간이세액표 조정은 시행령만 고치면 가능하기 때문에 국회 토론 과정도 없었다. 최근 연말정산이 논란이 되자 정부는 뒤늦게 “원천징수액이 적어 환급액도 적은 것”이라며 국민의 이해력 부족 탓을 했다.

이상훈 january@donga.com·한상준 / 세종=홍수용 기자
#연말정산#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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