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하르트 슐링크, 이야기 들려주고 변화 이끌고 더나은 세상을 꿈꾸게 하는 것… 작가의 임무는 바로 그거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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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박경리문학상에 베른하르트 슐링크]
■ 수상자 독일 작가 슐링크 인터뷰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법대 교수, 주 헌법재판소 판사 출신답게 작품 등장인물 대부분이 법과 관련된 일을 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작품에 녹였느냐는 질문에 “얼마나 많은 인생 스토리가 담겨 있는지 숫자로 말할 순 없다. 내가 상상하고, 두려워하고, 희망을 품곤
 했던 것이 담겨 있다”고 답했다. ⓒ2014 Philipp Keel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법대 교수, 주 헌법재판소 판사 출신답게 작품 등장인물 대부분이 법과 관련된 일을 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작품에 녹였느냐는 질문에 “얼마나 많은 인생 스토리가 담겨 있는지 숫자로 말할 순 없다. 내가 상상하고, 두려워하고, 희망을 품곤 했던 것이 담겨 있다”고 답했다. ⓒ2014 Philipp Keel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제4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인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70)가 본보와 인터뷰를 하며 보내온 e메일에는 수상의 반가움과 첫 한국행의 설렘이 묻어났다. 독일 현대 문단을 대표하는 그는 ‘책 읽어주는 남자’, ‘귀향’ 등을 썼다. 대표작인 ‘책 읽어주는 남자’는 할리우드 영화로 제작돼 2009년 국내에도 개봉됐다. 그해 국내에서 15만 부나 팔려 대중적인 인기도 확보했다.

슐링크는 나치 독일의 범죄에 대한 독일인의 과거사 반성을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삼았다.

―나치 독일에 대한 반성이 당신의 화두다. ‘귀향’에선 아들이 열렬한 나치 추종자인 아버지의 죄상을 고발하는데 그럴 필요까지 있었을까.

“독일의 역사는 곧 나의 역사다. 내 국가를 논하지 않고서는 나 자신을 논할 수 없다. ‘귀향’에서 주인공은 ‘진실’을 추구한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깨달은 것은 매우 충격적이고 불합리했다. 그의 대응은 가혹할 수밖에 없었다.”

―독자들에게 어떤 세계관을 보여주고 싶나.

“독자들에게 관점을 제시하고 싶진 않다.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고, 내 세계관을 의식적으로 거기에 밀어 넣는 대신 그 이야기들 안에서 자유롭게 길을 찾아가도록 하고 싶다. 나는 우리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일을 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귀향’, ‘책 읽어주는 남자’ 속에서 오디세이 귀향이 중요한 장치로 계속 등장한다.

“오디세이의 주제는 우리는 결코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으며, 오직 다시 떠나기 위해서만 고향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고 생각했던 진실을 담고 있다.”

―판사, 법대 교수로 지내다가 작가가 된 계기가 있나.

“글쓰기란 모든 이에게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다.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시와 이야기, 희곡들을 즐겨 썼다. 법률학자로서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제일 처음 든 생각이 ‘이제 학문적인 글쓰기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학문적 글쓰기를 즐기고 있긴 하지만, 내가 다른 종류의 글쓰기를 그리워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리로 돌아가야만 했다.”

―추리소설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추리소설 작법이 다른 작품을 쓸 때도 도움이 되나.

“나에게 ‘추리소설을 쓰는 것’과 다른 소설을 쓰는 것의 차이는 없다. 글쓰기는 글쓰기일 뿐이다.”

―독일 통일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언을 준다면….

“나는 언제나 독일이 통일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막상 정말로 그 일이 닥쳤을 때는 갑작스러웠다. 우리는 역사를 계측할 수 없으므로 한국의 통일 또한 갑자기 실현될지 모를 일이다. 독일의 경험과 실수들을 되돌아봤을 때, 통일이 다가왔을 때 반대 측을 ‘굴복’시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양측이 평등하게, 서로 존경심을 가지고 만나야 한다. 처음에 그들이 당신들에게 낯설고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말이다.”

―박경리 선생의 작품은 읽어 보았나.

“‘시장과 전장’을 읽었고, 최근엔 ‘토지’ 1권을 읽기 시작했다. ‘시장과 전장’을 읽은 뒤에 호기심이 생겨 박경리의 일생에 대해, 그의 인내와 성취에 대해 찾아봤다. 얼마나 대단한 삶인지!”  

▼ 법조인 출신… 간결한 문체로 ‘죄와 책임’ 고민▼

■ 슐링크의 작품세계


1944년 독일 빌레펠트 태생의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하이델베르크대와 베를린자유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본 대학과 프랑크푸르트대를 거쳐 1992년부터 베를린 훔볼트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8년 정년 퇴임했다. 1988년부터 2006년까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헌법재판소 판사를 겸임하기도 했다.

추리소설을 즐겨 읽었던 슐링크는 법학 교수 시절인 1987년 추리소설 ‘젤프의 법’을 발표했다. 이후 ‘고르디우스의 매듭’(1988년)과 ‘젤프의 살인’(2001년)으로 추리문학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법학 교수, 판사 경험은 작품에도 영향을 끼쳤다. 작품 속 등장인물은 대부분 법과 관련된 일을 하고 죄와 책임의 문제에 대해 고민한다. 그의 작품을 번역한 김재혁 고려대 독어독문과 교수는 “법률적 사고에 근간을 두다 보니 그의 문체는 자연스럽게 정확하고 간결한 쪽을 지향한다”며 “짧은 문장의 사용과 적은 수의 등장인물, 그리고 물 흐르는 듯한 이야기 진행이 특징이다”고 평했다.

슐링크가 1995년 발표한 ‘책 읽어주는 남자’는 출간 즉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독일 문학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독일은 물론이고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문학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선 ‘책 읽어주는 남자’를 비롯해 장편 ‘귀향’ ‘주말’, 단편소설집 ‘사랑의 도피’ ‘여름 거짓말’이 시공사에서 출간됐다. 시공사는 올해 말 슐링크가 독일 과거사 문제를 다룬 에세이 ‘과거의 죄’(가제)를 출간할 계획이다. 슐링크는 현재 독일과 미국을 오가며 차기 소설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박경리#베른하르트 슐링크#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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