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 고삐 죄는데 술에는 관대 ‘금주 구역’ 지정 번번이 좌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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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공원 금주’ 법제화 실패… 경포대도 1년만에 금주령 철회
과음 사회적 비용 年20조 추산… 공공장소 음주 제재 목소리 커져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0일, 가족끼리 서울 용산구 용산가족공원을 찾았던 남모 씨(37)는 낭패를 봤다. 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고 쉬고 싶었지만 20대 남녀가 치킨을 시켜 술을 마시다 취한 채로 크게 싸우는 바람에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남 씨는 “금연구역은 있는데 금주구역은 없다. 술이나 담배나 똑같이 건강에 좋지 않고 남에게 피해도 주는데 유독 (우리 사회가) 술에 관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11일 국민 건강 보호 차원에서 담뱃값 2000원 인상을 추진한다는 ‘금연대책’을 발표했지만, 건강에 해롭기는 마찬가지인 술에 대한 규제는 담배에 비해 느슨하다. 최근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음주정책통합지표와 OECD 국가 간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음주정책 평가 지표는 7점(21점 만점)으로 조사 대상 30개 나라 가운데 22위였다.

먼저 금연구역에는 공공건물 병원 학교 음식점뿐 아니라 대부분의 건물(연면적 1000m² 이상 규모)이 포함된다. 버스정류장 공원 길거리 등은 조례 제정을 통해 금연구역으로 정해지기도 한다. 이처럼 금연구역이 광범위하게 지정된 반면 금주구역은 따로 없다.

TV 광고도 술에는 더 관대하다. 담배는 광고뿐 아니라 흡연 장면도 노출할 수 없지만 술은 오전 7시∼오후 10시만 피하면 부분적으로 광고를 할 수 있다. 담배 판매 여부도 가게 외부에서 알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술 광고판은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차이는 음주에 관대한 문화에서 비롯된다. 정영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담배는 백해무익하지만 술은 과음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문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2012년 서울시내 공원에서 아예 음주를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무산됐고, 공원을 금주구역으로 지정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도 좌절되면서 공원 내 음주를 단속하지 못하고 있다. 2012년 강릉시는 경포대해수욕장에 음주 금지 규제를 했지만 결국 이듬해 음주를 허용했다. 관광객 감소를 우려한 현지 상인들이 거세게 반대했을 뿐 아니라 해수욕장을 찾은 관광객들이 “해변에 왔는데 맥주 한두 잔으로 기분도 못 내냐”는 불만이 컸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뉴욕 주와 캐나다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술을 개봉한 채 들고 다니기만 해도 처벌한다. 영국은 공공장소에서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는 사람을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

선진국의 예를 따르지 않더라도 연세대 보건대학원 이선미 박사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과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20조990억 원(2007년)에 이르는 만큼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 조사에서는 음주로 인한 생산성 저하가 7조8050억 원으로 가장 비중이 컸고 술값 자체에 들어가는 비용이 4조4702억 원으로 추산됐다. 이 밖에 음주 관련 질병의 의료비용, 숙취 해소용 음료 구입비, 음주 관련 사고의 재산 피해액까지 음주에 따른 비용은 막대했다.

이에 정부는 병원, 청소년수련시설, 초중고교, 대학교 등 공공시설에서 음주와 주류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주류에 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우경임 woohaha@donga.com·황인찬 기자
#흡연#술#금주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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