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엔 안 알리고… 선장-선원 자기들끼리만 연락해 탈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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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
기관장 전화로 “탈출하라”… 선원 29명중 20명 살아
승객 돕다 실종된 9명은 女승무원-조리원-알바생
선원들 모럴해저드에 분노 폭발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선원들이 선실에 갇혀 있는 승객을 구조하지 않은 채 선장을 먼저 탈출시킨 것으로 드러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난이 일고 있다. 선장은 사고가 난 지 30여 분 만인 오전 9시 반경 가장 먼저 배를 빠져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선장은 승객이 탈 때부터 모두 내릴 때까지 선박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선원법 10조 규정마저 지키지 않은 것이다.

17일 목포해양경찰서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기관사 손모 씨(59)는 “오전 8시 반경 ‘드르륵’ 하는 소리가 난 후 배가 급격히 기울었다”며 “기관실에 있던 승무원들과 함께 사다리를 타고 탈출한 후 해경 구명보트로 선장을 구출했다”고 말했다. 배에서 탈출을 지시한 선원은 기관장 박모 씨(48)였다. 조기수(기관사 보조역할)인 박모 씨(60)는 “배에서 ‘쿵’ 하는 소리를 듣고 10분 후에 기관장이 탈출하라는 전화를 해서 3명과 함께 배에서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세월호 선원 29명 가운데 구조된 선원은 모두 20명. 당초에는 17명이 구조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11명의 선원이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3명이 더 구조된 사실이 확인됐다. 3명의 선원은 구조된 뒤 병원에 가지 않고 목포에서 머물다 이날 밤 늦게 경찰에 출두했다. 선원 가운데 사망하거나 실종된 9명은 선원 조리원이나 사무장, 여승무원,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선장과 기관사 등이 탈출하는 동안 승객들은 기울어가는 여객선에서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구조된 생존자들은 “배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한 순간에도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는 안내방송만 10차례 넘게 반복됐다”고 전했다. 이는 선사 측에서 승무원들에게 ‘긴급 상황 시 모두 제자리를 지키도록 하라’는 원칙 이외에 별도의 대응수칙을 교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여객선 침몰 당시 조타실을 맡았던 항해사는 경력 1년이 조금 넘은 초급(3급) 항해사 박모 씨(26)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세월호에 투입된 지 5개월여밖에 안 된 상태였다. 항해사는 조타실에서 배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다. 세월호 같은 대형 여객선은 1급 베테랑 항해사가 맡아야 하는데 수백 명의 승객을 초보에게 맡긴 셈이다.

세월호 선장 이준석 씨(69)는 17일 오전 목포해양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쓰고 나타났다. 그는 현재 심정과 왜 먼저 탈출했는지, 사고 원인을 묻는 질문에 “정말 죄송하고 면목이 없다.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이 씨가 2004년 제주지역의 한 신문과 했던 인터뷰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는 당시 “20대 중반 우연히 배를 탄 뒤 20년간 외항선을 탔는데 첫 원목선이 일본 오키나와(沖繩) 인근 해역에서 뒤집혀 일본 해상 자위대가 헬기로 구출해줬다. 그러지 않았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누리꾼들은 “그때 그러지 않았으면 이번 사고도 없었을 것”이라는 등의 비난 댓글을 올렸다.

여객선이 침몰하기 직전까지 학생들을 탈출시키다 숨진 박지영 씨(22·여)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승객과 여객선을 두고 먼저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에 대한 승객 가족과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진도 체육관에 모인 실종자 가족들은 “어떻게 애들을 놓고 선장이 제일 먼저 배를 뜰 수 있나” “승무원들이 제일 먼저 도망쳤대, 우리 애들 놓고…”라며 가슴을 쳤다.

목포=조동주 djc@donga.com·곽도영·조건희 기자

#진도#여객선 침몰#세월호 선장#모럴해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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