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잠깐만요… 국민이 모르는 정책은 없는 정책”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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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개혁 끝장토론]
7시간 끝장토론서 쏟아진 말말말

“사회자님, 감사원 사무총장입니다”

김영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20일 규제개혁 점검회의 2세션 때 상기된 표정으로 사회자에게 발언 기회를 요청했다.

서동록 맥킨지 파트너가 “100개를 잘해도 1개를 잘못했을 때 지적하면 공무원이 복지부동이 된다”며 “감사원에 대한 공무원들의 공포가 어마어마한데 민간 진단을 한 번 받아보라”고 제안한 직후였다. 이날 회의에서는 감사원의 경직된 감사에 대한 참석자들의 지적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회의 전 과정이 생중계로 공개되다 보니 각 부처는 참가자들의 발언 한마디 한마디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김 사무총장은 그동안 규제완화 조치를 취한 각종 감사 사례를 나열하며 적극 해명했다. 하지만 곧바로 “감사원이 노력을 해도 체감이 안 된다는 게 문제다. 감사 방향을 모두가 알게 해달라”는 박 대통령의 질타를 들어야 했다.

박 대통령은 “언제 성과를 현장에서 알 수 있겠느냐”며 끊임없이 장관들을 몰아세웠다.

박 대통령은 전기안전용품 중복 인증에 대해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기업들이 인증제도에 대해 알 수 있도록 1381이란 번호로 애로사항을 받고 있다”고 설명하자 “잠깐만요”라고 중간에 발언을 끊었다.

박 대통령은 “그런데 국민이 1381을 많이 아시나요? 국민이 모르면 없는 정책이나 마찬가지예요”라고 지적했다. 윤 장관은 26일 개통 예정인 1381콜센터를 이미 개통된 것으로 잘못 보고하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규제 장벽을 허무는 공무원에게 ‘국민망치상’을 수여하자”(임성일 지방행정연구원 부원장)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규제지우개다”(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라고 하는 등 강하게 규제개혁을 요청했다.

인천항만 물류단지 개발과 관련해 “경제자유구역법과 항만공사법에 따라 이중으로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심충식 선광 부회장의 지적에 윤 장관은 “법을 개정해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승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제갈창균 한국외식업중앙회장이 뷔페가 관할구청 반경 5km 내에 있는 제과점에서만 당일 구운 빵을 구입하도록 한 규제를 지적하자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을 개정하겠다”고 말했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학교보건법 때문에 관광호텔 설립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 대해 “저희도 정말 미치겠다. 우리 사회가 너무 근엄해서 저희 부가 관장하는 관광, 게임 분야가 다 척결 대상이 되고 있다. 대통령이 콱콱 압력을 넣어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호소해 눈길을 끌었다.

오후 2시에 시작한 회의는 1세션과 2세션 사이 20분 휴식을 제외하고 오후 9시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진 ‘끝장토론’이었다. 참석자는 160여 명에 달했고 답변한 장관을 제외하고 민간 분야 발언자만 35명이었다. 규제개혁 선진국인 영국 사례를 이야기할 스콧 와이트먼 주한 영국대사도 참석했다.

오후 7시 38분경 사회자가 “남은 발언자 수를 감안하면 1시간 정도 더 해야 할 것 같다”며 10분 휴식을 제안했지만 박 대통령은 “그냥 계속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오신 분들은 다 말씀하셔야 한다”며 회의를 이어갔다.

박 대통령은 회의 마지막에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그렇게 못 해서 경우가 빠지는 일이 아닌가 마음이 불편하다”며 미안해했다. 이어 “전부 인사를 드렸으면 하는데 그러면 정말 시장하실 것 같아 그냥 인사를 드리겠다”며 참석자들과 악수하지 않고 회의장을 떠났다.

동정민 ditto@donga.com / 세종=송충현 기자
#규제개혁#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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