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바이어로… 해외직구로 뜨는 ‘바이슈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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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發 유통혁명]<상>무너지는 ‘가격 국경’

바이어+소비자 '바이슈머' 시대
작년 겨울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패딩 점퍼인 캐나다구스. 한 벌 가격이 120만 원을 훌쩍 넘는다. 1년 차 직장인 한현주 씨(27)는 비싼 가격 탓에 구매를 망설였다. 그러다가 인터넷 게시판에서 보게 된 글. 미국과 캐나다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똑같은 제품을 70만 원대에 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비싼 국내 판매가에 화가 났던 한 씨는 이내 싸게 살 방법을 궁리했다. 우선 해당 쇼핑몰을 찾아냈다. 그러고 다른 누리꾼들과 ‘캐나다구스 사는 법’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 고르는 법, 배송비 줄이는 방법 등을 논의했다. 결국 30% 이상 저렴하게 제품을 샀다. 소비자들 스스로가 일군 성과였다.

이전 소비자들이 수입 제품을 사는 방법은 단순했다. 국내 수입업자가 사온 제품을 백화점에 납품하면 소비자는 정해진 가격에 구입했다.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불러도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사는 것’ 또는 ‘안 사는 것’뿐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해 제품이 전 세계에서 얼마에 팔리는지 알 수 있게 됐다. 이제 소비자들은 국내 수입업자가 아닌 해외의 유통업체로부터 직접 물건을 사들인다. 소비자가 단순한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바이어의 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바이슈머(Buysumer·Buyer+Consumer)의 증가는 유통 시장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 늘어나는 해외 직구…급성장하는 신(新)유통

바이슈머의 대표적 행태는 해외 직구다. 해외 직구는 이미 낯설지 않다. 한국온라인쇼핑협회와 관세청 등에 따르면 2012년 5410억 원이었던 해외직구 규모는 지난해 1조950억 원으로 늘었다. 100% 넘게 성장하며 ‘1조 원 시대’를 연 것.

이러한 추세는 올해 한층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나대투증권 리서치센터는 2014년 해외직구 규모는 1조6430억 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측했다. 또 병행수입 규모는 2000억 원에서 3000억 원으로 증가한다. 이를 포함하는 신유통 채널(소셜커머스+오픈마켓+해외직구+병행수입) 규모는 올해 27조430억 원에 이른다. 이는 전체 소비시장의 10%에 육박하는 규모다. 2010년(13조9090억 원)보다 규모가 2배 가까이로 늘었다. 소비시장 내 비중은 1.5배로 커졌다. 박종대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2년간 소비심리가 개선됐음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같은 기존 유통업체의 성장이 부진한 것은 신유통 채널이 성장한 게 원인일 수 있다”고 말했다.

○ 해외보다 비싼 국내 가격…용납 못하는 소비자


신유통 채널의 빠른 성장이 가능한 것은 소비자들이 ‘국내 판매가’에 불만을 갖고 있기 때문. 본보는 11일과 12일 리서치전문회사 마크로밀엠브레인과 함께 20∼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국 유통시장과 해외 직접구매 및 병행수입에 관한 인식을 조사했다. 가장 두드러진 결과는 ‘국내 판매가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과 이를 해소하려는 움직임’이었다.
▼ 해외직구 1년새 2배 지난해 1조원 돌파 ▼

응답자들은 ‘동일한 제품이라면 국내 판매가와 해외 판매가 중 어느 쪽이 더 저렴할 것이라 생각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58.5%가 해외 판매가가 저렴할 것이라고 답했다. 여준상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에 더해, 제품 가격이 국내에서 워낙 높게 책정됐다는 말을 듣다 보니 ‘모든 제품이 해외보다 비싸다’는 인식이 형성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유통시장에 대해 불신이 팽배하다는 의미다. 응답자들이 국내 판매가가 높은 이유로 ‘수입 대행사의 과도한 마진’(59.3%)을 첫째로 꼽은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태도는 점차 실천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응답자 중 절반(49.8%)은 동일 제품의 국내외 판매가가 다르다면 해외직구를 이용하겠다고 답했다. 아직 해외직구 경험이 없는 응답자들도 절반이 넘는 50.6%가 앞으로 해외직구를 해볼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 일본에서도 신유통 성장…혜택은 소비자에게

신규 유통채널의 성장은 ‘유통 단계의 축소’를 가져온다. 일본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병행수입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병행수입업자들이 외국 수출 도매상과 직거래를 통해 상품을 들여오면서 유통 단계가 축소됐다. 일본의 도소매 비율(도매상부터 최종 소매상에 이르기까지 판매액 합/최종 소비자 판매가)은 1991년 4.1배였던 것이 1999년 3.4배로 줄었다. 이는 2007년 3.1배로 다시 축소됐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엔화 환율 변동에도 불구하고 수입 제품의 가격에 변화가 없자 소비자들이 불만을 표출하면서 병행수입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해외여행 등을 통해 사람들이 ‘제품이 해외에서 얼마에 팔리는지’ 알아버렸는데, 복잡한 유통 구조 탓에 국내 가격은 너무 비쌌던 것이다. 소비자들이 온라인으로 제품의 실제 가격을 알게 된 후 해외직구를 늘리고 이에 따라 병행수입이 늘고 있는 현재 한국의 상황과 비슷하다.

병행수입 증가로 유통 구조가 간소화되면 자연스레 소비자가격은 떨어진다. 이에 맞춰 기존 유통업체들도 가격을 내리기 시작하면 물가 하락은 가속화된다. 일본에서 2000년대 이전 수입 화장품의 국내외 가격차는 2배 이상이었지만 2007년 1.3배 정도로 감소했다.

해외직구와 병행수입의 증가가 물가 하락이라는 긍정적 효과가 있기 때문에 정부도 적극 지원할 태세다. 관세청은 20일 해외직구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목록통관 품목을 현재 6개에서 10개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목록통관은 국내 반입 시 미화 기준 200달러까지 관세를 면제해주는 품목을 가리킨다. 또 정부는 이달 말 경제부처 장관회의를 통해 병행수입 활성화 대책을 발표한다. 정부도 해외직구와 병행수입이라는 양 축이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국민에게 돌아가는 이득도 크다는 판단을 한 셈이다.

:: 바이슈머(Buysumer) ::

바이어(Buyer)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 인터넷 등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과거엔 수입상, 도매상 등 바이어가 하던 해외 구매, 신제품 수입을 소비자가 직접 담당하면서 생겨난 신조어.

:: 해외직구 ::

인터넷을 통해 해외에서 제품을 직접 구입하는 것. 해외 쇼핑몰에서 직접 거래하거나 구매대행 사이트를 이용한다.

:: 병행수입 ::

국내 독점 판매권을 가진 공식 수업업체가 아닌 다른 유통업체가 외국 수출 도매상 등과 계약해 상품을 들여오는 것으로 기존 제품보다 가격이 싸다.

한우신 hanwshin@donga.com·권기범 기자
#해외직구#바이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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