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상록수에서 한빛까지 한국 PKO 21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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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활약 자부심에 수당도 두둑… 경쟁률 최고 10대 1

“어디를 가든 유엔과 태극마크를 단 한국군을 보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주민들이 많습니다.” 아프리카 남수단에 파병된 한빛부대의 고동준 부대장(육군 대령)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현지인들 사이에 뿌리내린 한국군의 인기를 실감한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오랜 식민지 생활과 내전 탓에 외부인을 경계하고 적대시하는 현지인들도 한국군의 인도주의적 지원 활동을 보며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는 것이다.

올해로 활동 22년째를 맞은 우리 군의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은 국격(國格) 향상과 국익 창출에 혁혁한 기여를 했다. PKO 파병은 한국이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 부흥에 성공해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상징이기도 하다.
‘신이 내린 선물’ ‘레오간의 축복’…

2007년부터 유엔기를 들고 레바논에서 정전 감시 임무를 수행 중인 동명부대는 현지에서 ‘신이 내린 선물’로 불린다. 주민들을 진료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의 소중한 재산인 소, 양 등 가축까지 정성껏 돌봐주는 유엔 평화유지군은 한국군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해일 동명부대장(육군 대령)은 “한국군의 친절한 진료에 감동한 한 주민은 매일 집 앞에 태극기를 내걸기도 했다”면서 “현지 주민과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한국군의 노력이 결실을 거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대는 7년간 현지 주민과 시리아 난민 등 6만6000여 명을 진료하고 한국어와 태권도, 컴퓨터 교실을 열어 한류 확산에도 앞장서고 있다. 2만여 건의 감시정찰과 2500여 차례의 급조폭발물(IED) 수색작전을 완수해 현지 유엔사령부로부터 ‘최고등급(outstanding)’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3월부터 남수단에서 재건 지원에 나선 한빛부대에 대한 호응도 대단하다. 부대 관계자는 “강 범람이나 재래시장 화재 같은 긴급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해결사’로 나서는 한국군을 향해 ‘코리아 넘버 원’이라고 외치는 주민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 부대는 지난해 말 현지 내전이 악화되자 유엔을 통해 일본 자위대로부터 실탄 1만 발을 지원받았다가 최근 이를 반환했다. 당시 일각에서 조기 철군론이 거론되자 군 당국이 이를 부인하기도 했다. 합참 관계자는 “현재 부대원들은 안전을 위해 부득이 영외활동을 중단한 상태”라며 “현지 정세가 안정되면 활동을 재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2010년 아이티에 파병돼 지진 피해 복구와 주민 진료 활동을 펼친 단비부대도 현지에서 ‘레오간(주둔지 명칭)의 축복’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한국군의 PKO 파병 역사는 유엔 가입 2년 뒤인 1993년 7월 31일 250여 명의 상록수부대(공병)가 아프리카 소말리아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부대원들은 내전으로 폐허가 된 도로를 보수하고 관개수로를 건설하는 등 재건 활동에 구슬땀을 흘렸다. 학교와 기술센터 운영 같은 지원 활동에도 적극 나서 현지 주민들의 마음을 얻었다. 합참 관계자는 “다른 나라 PKO 부대원들은 ‘한국군이 주민들까지 같은 편으로 만드는 기술을 가졌다’고 감탄했다”고 말했다.

이후 국제사회에서 한국군의 PKO 참여 요청이 쇄도했다. 1994년 서부 사하라에 국군의료지원단, 1995년 앙골라에 공병대대가 각각 파병됐다. 1999년엔 상록수부대가 동티모르에 첫발을 디뎠다. 베트남전 참전 이래 34년 만의 전투부대 파병이었다. 치안 회복과 대민 지원에 열과 성을 다한 한국군은 ‘다국적군의 왕’으로 불렸다. 다국적군으로 파병된 이 부대는 2000년 유엔평화유지군으로 전환돼 3년간 PKO 임무를 수행했다.
“PKO 파병은 인생 최고의 경험”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해외 파병은 군 장병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더욱이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PKO 파병의 의미는 더 남다르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업무능력과 근무경력, 품성, 어학수준 등 종합평가를 거쳐 6∼10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통역병 등 특기병의 경쟁률은 수십 대 1에 달한다. PKO 파병 경험이 군내 진급은 물론이고 전역 후 취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재수는 물론 삼수, 사수까지 도전하는 경우도 많다.

파병 장병들은 임무 유형과 위험도에 따라 10등급으로 나눠 해외 파병수당을 받는다. 병사의 경우 한빛부대(5등급)는 월 1541달러(약 166만 원), 동명부대(6등급)는 월 1675달러(약 180만 원)가 지급된다. 군 관계자는 “6개월간 파병수당을 모아 전역 후 대학등록금이나 해외여행 경비로 활용하는 장병들이 많다”고 말했다. 파병 요원으로 선발되면 약 5주간 직책과 주특기별 기본 교육을 비롯해 현지 문화와 국제법 등 PKO 소양 교육을 받게 된다.

동명부대 13진에서 통역병으로 근무 중인 정윤석 상병(26)은 “한국군을 향해 손 흔드는 주민들을 볼 때마다 가슴 뿌듯하다”면서 “국위를 선양하고 세계 속에 평화와 희망을 심는 PKO 파병은 인생 최고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다국적군과 군사협력 차원의 파병도 활발

우리 군은 유엔 PKO 이외에도 다국적군의 일원으로서 다양한 파병 활동을 벌여왔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아프가니스탄에 해·공군 및 의료·공병부대를 번갈아 보내 다국적군의 재건 활동을 지원해 왔다.

2003∼2008년에는 서희부대(공병), 제마부대(의료), 자이툰부대가 이라크에 파병돼 다국적군으로 활약했다. 2009년 창설돼 아덴 만 해역에서 선박 호송 임무를 수행 중인 청해부대도 다국적군 파병 사례다.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을 구조한 ‘아덴 만 여명작전’은 파병사의 개가로 평가된다. 2011년부터 아랍에미리트에서 활동 중인 아크부대는 분쟁 지역이 아닌 곳에서 벌이는 군사협력 차원의 파병 사례다.

대한민국의 국력과 위상이 커질수록 우리 군의 해외 파병 활동은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공병과 의무 등 비전투 분야 외에 ‘고강도 평화유지활동’을 위한 전투병력 파병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파병 기간 연장이 정쟁(政爭)의 대상이 되거나, 이로 인해 파병 활동이 발목을 잡히는 일이 반복돼선 곤란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해외 파병은 실전 경험을 통한 전투력 향상과 국가 위상 제고의 좋은 기회라는 점에서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바탕으로 대승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파병부대 이름에 담긴 뜻 ▼
어둠 뒤 태양 뜻하는 ‘아라우’… 태풍피해 복구 지원
사상의학 대가 이름 따 ‘제마’… 이라크서 의료 지원

단비부대 동아일보DB
단비부대 동아일보DB


해외 파병 부대의 명칭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1993년 첫 PKO 파병 부대인 상록수부대는 ‘황량한 소말리아 땅을 옥토(沃土)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아이티 대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파병됐던 단비부대는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 같은 역할을 하라는 뜻이다.

레바논의 동명부대는 ‘동방의 밝은 빛’이란 의미로 밝은 미래와 평화를 갖고 동쪽 나라에서 왔다는 의미다. 남수단 한빛부대는 ‘세상을 이끄는 환한 큰 빛’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을 사용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의료지원을 펼친 동의부대와 다산부대는 각각 조선시대 명의(名醫)인 허준의 ‘동의보감’과 수원 화성 축조를 주도한 다산 정약용의 호를 따 이름을 지었다.

이라크에 파병됐던 서희부대(공병),
제마부대 동아일보DB
제마부대 동아일보DB
제마부대(의료)는 각각 탁월한 외교술로 거란 침략을 저지한 고려시대 위인과 사상의학의 토대를 닦은 조선 말기 명의의 이름을 땄다. 또 아덴 만에서 해적 퇴치 임무를 수행 중인 청해부대는 통일신라 후기 동북아시아의 해상권을 장악했던 장보고가 완도에 설치한 해상무역기지(청해진)에서 따온 명칭이다.

친근한 의미가 담긴 현지어를 활용한 경우도 있다. 이라크에 파병됐던 자이툰부대의 ‘자이툰’은 아랍어로 ‘올리브’라는 뜻으로 올리브는 이라크 주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열매다. 아프가니스탄의 오쉬노부대는 현지어로 ‘친구’ ‘동료’라는 뜻이고, 아랍에미리트 아크부대의 ‘아크’는 ‘형제’라는 뜻의 아랍어에서 따왔다. 최근 필리핀에 파병돼 태풍 피해 복구 활동 중인 아라우부대 명칭은 현지어로 ‘어둠 뒤에 태양이 온다’는 뜻으로 축복과 희망을 의미한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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