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 괴담의 진실은]수서발 KTX 민영화 논란 본질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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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체제 도입이 철도개혁의 검증된 해법

철도파업 사태를 촉발한 수서발(發) 고속철도(KTX) 운영 자회사 설립 논란의 본질은 ‘철도 부문에 경쟁체제를 도입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만성적 적자로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철도 부문을 개혁하려면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독점하고 있는 철도 운송 시장에 새로운 사업자를 진입시켜 경쟁을 부추겨야 한다는 논리다.

경쟁체제 도입이 공공부문 개혁의 근본 해법이라는 데에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큰 이견이 없다. 특히 ‘사실상 민영화’라는 낙인찍기와 소모적 노정(勞政) 충돌로 20년 가까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철도 구조개혁이 이번에도 뒷걸음질을 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 번번이 실패한 역대 정부의 철도 구조개혁

한국 철도는 1899년 이후 114년 동안 독점으로 운영됐다. 경쟁이 없는 시장인 탓에 폐해도 적지 않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코레일이 공사로 전환된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영업적자는 5500억 원이 넘는다.

여기에 코레일이 정부에서 받은 지원금을 합치면 영업적자는 연평균 1조1000억 원에 이른다. 영업실적이 악화되면서 부채는 갈수록 늘었다. 코레일의 부채 규모는 2005년 5조8000억 원에서 올해 6월 현재 17조6000억 원으로 급증했다.

국민 혈세로 갚아야 할 빚이 늘고 있는데도 인건비와 유지비는 선진국에 비해 훨씬 높다. 코레일은 매출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48%로 독일(27.6%), 스웨덴(27.5%)은 물론이고 강성노조로 유명한 프랑스 국철 SNCF(39.1%)보다도 높다. 철도연구원에 따르면 유지 보수비 역시 운임수입의 20% 수준으로 유럽 평균의 2.2∼3.5배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역대 정부에서 철도 구조개혁은 공공부문 혁신의 최대 과제 중 하나였다. 정부가 가장 강도 높은 개혁 방안을 들고나왔던 것은 김대중 정부 때였던 1999년. 앞서 철도청 독점의 국유철도 체제를 유지하면서 1조5000억 원의 부채를 탕감해 주는 등 경영 개선을 추진했던 김영삼 정부의 철도 개혁이 실패로 돌아가자 김대중 정부는 철도 시설 관리와 운영을 분리하고, 운영 회사를 ‘민영화’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시행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철도 운영을 사기업 대신 공기업인 코레일을 설립해 맡기기로 하면서 기존 민영화 방침에서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신규 노선을 민간에 개방해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로드맵을 세웠다.

국토부 관계자는 “수서발 KTX는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철도 구조개혁 방향에 따라 이명박 정부가 민간 운영자 선정을 추진하다가 노조, 코레일의 반발에 부닥쳐 지연됐다”며 “이때에 시작된 민영화 논란이 계속 철도 구조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세계 각국의 공공부문, 경쟁 통해 경쟁력 회복

정부와 전문가들은 현재의 코레일 체계로는 더이상 경영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경쟁체제 도입이 꼭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현재 코레일은 여객 물류 등 다양한 사업부문이 뒤섞여 도대체 어떤 부문에 문제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구조”라며 “조직을 자회사로 세분화해 경영책임을 지도록 해야 경영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적으로 철도 운영에 경쟁체제를 도입해 경쟁력을 높이고 운임을 낮추는 등 성공한 사례는 많다. 독일은 철도 지주회사인 DB(독일철도주식회사) 내의 자회사끼리 경쟁시키는 방식을 도입해 1994년에 29억9800만 유로 적자를 봤던 철도사업을 2010년에 18억8600만 유로 흑자로 돌려놨다.

일본은 1987년 국유철도 구조개혁을 통해 철도부문을 7개 회사로 ‘분할 민영화’했다. 민영화 전 하루 평균 50여억 엔의 적자를 보던 철도부문은 현재 7개 회사가 하루 평균 총 15억 엔의 흑자를 내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수서발 KTX처럼 국영기업이 독점하던 고속철도 노선 중 한국의 경부선에 해당하는 빈∼잘츠부르크 구간을 민간철도회사 베스트반에 매각했다. 이후 베스트반은 철도 요금을 절반으로 낮추고 무선 인터넷을 무료로 제공해 철도 이용자들이 큰 혜택을 봤다.

국내에서도 공공부문 경쟁 도입으로 인한 성공 사례가 적지 않다. 김포공항 등을 운영하던 한국공항공사는 2002년까지만 해도 3433억 원의 적자에 시달리며 방만 경영으로 악명 높았다. 이 공사는 경쟁 공기업인 인천공항공사가 생기면서 수익성이 높은 국제선을 인천공항에 떼 줬지만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고 새로운 노선을 유치해 지난해 1382억 원의 흑자를 내며 경영 개선에 성공했다. 서울지하철 역시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의 경우 1995년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와의 경쟁이 시작되면서 1994년 노선 1km당 81.5명의 직원이 투입됐던 비효율적인 인력구조가 지난해에 1km당 65.1명으로 크게 개선됐다.

○ 전문가들 “치밀하게 준비해야 경쟁 효과 커져”

정부는 철도 분야에 경쟁체제가 도입되는 것만으로도 연간 6000억∼7000억 원의 경제효과와 1000여 개의 일자리 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경쟁구조 도입을 통해 경영 개선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소모적인 논쟁을 마무리하고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철도 부문을 민영화하거나 공기업 체제에서 일부 노선에 경쟁체제를 도입한 해외 사례를 보면 선로 관리와 운전, 관제 등이 유기적으로 관리되는 체계가 마련되지 않아 일부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영국은 철도 분야의 시설관리와 운영을 모두 민영화했다가 시설 노후화로 일시적으로 사고가 늘어나자 시설은 다시 국가가 관리하는 체제로 바꾸기도 했다. 또 인천국제공항공사 사례처럼 비핵심 업무를 외부에 위탁해 군살을 빼려는 노력이 있어야 철도 분야의 재무구조 개선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임삼진 전 한국철도협회 부회장은 “코레일 개혁에는 여전히 민간이 철도 운영을 맡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현재 상황에서는 자회사 설립을 통해 경쟁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도 코레일이 받는 개혁 압박은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문병기 weappon@donga.com / 세종=박재명 기자
#수서발 KTX#철도 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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