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스토리텔링 in 서울]봉제공장 쪽방촌이 IT산업 메카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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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가산디지털단지

정보기술(IT) 기업과 패션아웃렛 중심지로 변한 서울 구로구 구로디지털단지의 모습. 이곳은 1960∼80년대 수출을 주도했던 구로공단이 자리 잡았던 곳으로 당시 노동자들의 고된 삶과 공단 전경은 여러 영화와 소설의 소재로 사용됐다. 동아일보DB
정보기술(IT) 기업과 패션아웃렛 중심지로 변한 서울 구로구 구로디지털단지의 모습. 이곳은 1960∼80년대 수출을 주도했던 구로공단이 자리 잡았던 곳으로 당시 노동자들의 고된 삶과 공단 전경은 여러 영화와 소설의 소재로 사용됐다. 동아일보DB
시커먼 굴뚝이 늘어섰던 전자 부품 공장 자리에는 유리 외벽으로 꾸민 높은 현대식 빌딩이 들어섰고 봉제공장은 젊은이들이 모이는 패션의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과 1·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 사이에 놓인 구로·가산디지털단지는 한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요람이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본떠 세련된 ‘G밸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빌딩 숲 사이사이 여전히 과거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이곳의 50년 전 옛 이름은 ‘한국수출산업공단 구로동 공업단지(구로공단)’이다. 구로공단은 1964년 첫 삽을 뜬 이후 약 10년이 지난 1973년 총 3개의 단지로 규모가 커졌다. 흰 쌀밥 한 그릇을 배불리 먹기도 어렵던 시절 구로공단에 들어선 섬유, 봉제, 가발 공장으로 전국 각지의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상경한 소녀들은 이름 대신 ‘공순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들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밤낮으로 허리가 끊어져라 일하며 초기 수출 산업을 이끌었다.

‘서른일곱 개의 방 중의 하나, 우리들의 외딴방… 왜 내게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 방을 생각하면 한없이 외졌다는 생각, 외로운 곳에, 우리들, 거기서 외따로이 살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인지’(신경숙의 ‘외딴방’)

공단의 여공들은 ‘쪽방’이라는 작은 방에 살면서 차곡차곡 돈을 모으고 꿈을 키웠다. 작은 부엌 하나가 붙어 있는 집 한 채에는 방이 30∼50개나 있었다. 사람들은 공동 우물과 화장실을 사용했다. 한때 국가 수출의 10%를 책임지던 구로공단은 이후 경제 정책이 중화학공업 위주로 바뀌며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 정부가 구로공단의 용도를 첨단IT 서비스 단지로 바꾸며 높은 빌딩과 아파트형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산업 변화에 따라 화려한 빌딩이 들어섰지만 빌딩 구석구석에는 옛 구로공단의 흔적을 간직한 장소들이 곳곳에 남아 당시 고단한 노동자들의 생활상을 지금도 느낄 수 있다.

소설 ‘외딴방’의 열여섯 살 주인공이 다니던 공단 직업훈련원은 지금의 한국산업단지공단 서울지역본부 자리다. 송경동 시인의 시 ‘오거리 뼈해장국’에서처럼 ‘맵고 짠 기억들 울울이 가슴에 안고/열 갈래 스무 갈래/떠나간 친구들’을 생각나게 하는 곳이 바로 가리봉시장으로 진입하는 감자탕 골목이다. 구로공단 시절 여공들이 떡볶이, 순대, 튀김을 먹는 식당골목이었던 이곳은 지금은 중국동포들이 더 많이 찾고 있다.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패션 아웃렛 단지는 과거 봉제공장이 있던 곳. 마리오아울렛이 자리한 사거리에는 과거 대우어패럴, 효성물산, 구로봉제협동조합 같은 봉제공장들이 있었다. 지난해 문을 연 마리오아울렛 3관에는 구로공단을 기념하는 굴뚝 조형물이 들어서 있다.

구로공단을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기 위해 서울시와 구로구는 과거 공단에서 일하거나 거주했던 사람들을 ‘동네 해설사’로 발굴해 과거의 흔적을 찾는 투어프로그램 ‘추억과 희망의 구로공단 여행’을 열기도 했다.

구로구는 이달 중 모바일 웹을 통해 △산업화와 노동자의 길 △구로공단 장터길 △작가들이 사랑한 구로공단길 등 여행 경로를 공개할 예정이다. 금천구 가산동 가산디지털단지역 1번 출구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02-830-8426)은 공단 여공들의 삶과 노동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개관한 곳이다. 당시 공단 노동자들의 생활 모습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도록 전시장을 꾸몄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구로가산디지털단지#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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