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 스님 “숭례문 석굴암 안 무너져요… 눈에 쌍심지 켤 상황 아닙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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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위원 김천 직지사 주지 흥선 스님

11월 29일 오후 2시경 서울 덕수궁에서 만난 흥선 스님. 칼바람이 부는데도 “요즘엔 속이 답답해 추운지도 모르겠다”며 최근 숭례문과 석굴암 관련 논란에 대해 속내를 털어놓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1월 29일 오후 2시경 서울 덕수궁에서 만난 흥선 스님. 칼바람이 부는데도 “요즘엔 속이 답답해 추운지도 모르겠다”며 최근 숭례문과 석굴암 관련 논란에 대해 속내를 털어놓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숭례문? 그 정도로 눈에 쌍심지 켤 상황 아닙니다. 석굴암도 안 무너져요. 팔만대장경 상태도 비교적 나쁘지 않아요. 제발 국민들 가슴 그만 덜컹거리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무슨 얘긴가. 최근 문화재계 여기저기서 파열음이 끊이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조차 ‘원전(原電) 비리’와 동급에 놓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덕수궁에서 만난 경북 김천시 직지사 주지 흥선 스님(57·문화재청 동산분과 문화재위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흥선 스님은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래선 어떤 문제도 해결 안 된다”며 작심한 듯 말을 쏟아냈다. 그는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미술사를 전공했고 불교중앙박물관장, 문화재위원을 여러 차례 지낸 대표적인 불교계 문화재 전문가다. 특히 최근 논란이 인 석굴암과 팔만대장경 긴급안전점검단에도 참여했다. 》

―점검단으로 직접 갔으니 석굴암, 팔만대장경 얘기부터 들려 달라.

“(지난달) 15일 전문가 10명이 석굴암을 찾았다. 결론부터 말하자. 맞다, 균열 있다. 하지만 10년 내에 생긴 게 아니다. 그간 심각해진 것도 없다. 심지어 창건 당시 생긴 균열도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했다. 전문가들도 꼼꼼히 살폈지만 숨긴 것 없더라. 팔만대장경도 마찬가지다. 일부 경판에 문제가 있지만 최근에 악화됐다고 보는 점검단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장경각 뒤쪽 배수로는 좀 손봐야겠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숭례문은 복원 5개월 만에 단청이 떨어져 나갔다.

“앞서 얘기했지만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다. 과장하지 말라는 거지. 숭례문도 마찬가지다. 책임질 사람이 책임지고 대책을 마련하면 된다. 문화재 관계자들을 몽땅 비리집단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 그 사람들, 박봉에도 자긍심 하나로 일한다. 그런 식으로 논란만 일으켜서는 진짜 본질적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본질이라니? 숭례문 논란에 다른 측면이 있다는 얘긴가.

“단청부터 보자. 일단 단청장을 포함해 관련자들 다 잘못했다. 전통기법은 실전(失傳)됐는데 경험도 없으면서 서둘렀다. 단청이 떨어진 것은 나무가 문제였을 수 있는데 그건 아무도 안 짚는다. 제대로 안 말린 나무를 써서 수축현상이 일어나 단청에도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 기둥도 쪼개지지 않았나. (문화재)청이 서두르고 지원을 제대로 안 했다고? 그것도 차차 따져봐야겠지만 그럼 대목장쯤 되는 사람이 왜 그때는 침묵했나. 시스템이 엉망이니까 서로 책임만 떠넘긴다.”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일단 현장 목소리가 반영이 안 된다. 숭례문도 완공 시기나 방식에 대해 수십 년간 이 일에 종사한 ‘쟁이’들의 얘기를 들어야지. 먹물이랑 정치권이 왜 감 놔라 배 놔라 하나. 정부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안 하는 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이번 논란으로 문화재청장이 경질된 것 봐라. 명색이 한 기구의 수장인데 상의도 없이 위에서 뚝딱…. 처음에 임명할 때도 문화재계 의견은 전혀 수렴되지 않았다. 정부는 이제라도 생색내기 관두고 솔직히 까놓고 일처리를 해야 한다. 괜히 국민 눈높이만 올려놓지 말고.”

―어떤 점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았다는 얘긴가.

“냉정하게 말하자. 숭례문 복원 부실? 그게 우리 현실이다. 현재 한국 수준이 딱 그 정도다. 문화재가 시대를 앞서갈 거라는 기대는 접어야 한다. 사회가 발전해야 문화재도 바뀐다. 그렇다고 비관적이 될 필요는 없다. 반대로 보면 개선하고 나아질 여지도 있다는 뜻이다. 숭례문도 하나씩 고쳐 나가면 된다.”

―이번 논란들이 문화재계 자성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이제 그런 추상적인 얘기는 관두자. 관련법을 손보면 된다. 위에서 탁상공론을 접고 관련 전문가들과 심도 있게 논의해 법부터 바꾸자. 적절하게 처우 개선하고 일벌백계하면 잡음도 없어진다. 지적도 신중해야 한다. 문제 제기야 언제든 환영이지만 사실만 갖고 얘기하자. 아니면 말고 식의 태도는 결국 스스로를 겨누는 칼이 된다.”

흥선 스님은 2시간을 넘기며 열변을 토하더니 “하도 답답해 인터뷰를 자청했다. 국민도 알 건 알아야지”라며 그제야 찻잔을 들었다. 무엇이 평정심을 지향하는 불제자의 마음을 이리도 흔들었을까. 매서운 겨울바람이 코끝을 아렸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숭례문#석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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