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음주 뺑소니에 무참히 깨진 ‘코리안드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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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 마친 30대 미얀마 청년 오토바이 타고 숙소가다 날벼락

미얀마 근로자 A 씨(33)는 16일 밤 광주 광산구 하남공단 내 미얀마쉼터에서 열린 법회가 끝나자 사촌동생 B 씨와 함께 자신의 50cc 오토바이에 올랐다. 기숙사를 불과 500여 m 앞뒀을까. 뒤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구형 에쿠스 승용차가 A 씨의 오토바이를 들이받은 뒤 도주했다.

사고 현장 주변에 있던 외국인 근로자들의 신고로 A 씨는 조선대병원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머리를 크게 다친 그는 사경을 헤맨 끝에 18일 오후 8시 결국 숨을 거뒀다. 2011년 7월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 땅을 밟은 지 2년 4개월 만이었다.

A 씨를 치고 달아난 운전자는 만취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21일 경찰에 붙잡힌 회사원 김모 씨(43)는 “동창회에서 소주 2병과 맥주 3병을 마신 뒤 음주운전을 했다”며 “무언가와 부딪쳤지만 무서운 마음이 들어 달아났다”고 말했다. 김 씨는 사고 차량을 전남의 한 공사 현장에 감춰놓기도 했다.

음주운전의 피해자가 된 A 씨의 장례를 도운 것은 A 씨가 일하던 공장의 사장 김모 씨(60)였다.

“A는 정말 성실했어요. 우리 공장에 캄보디아에서 온 후배 근로자 2명이 있는데 적응을 잘 못하니까 A가 숙소에서 밥을 해주면서 얼마나 열심히 돌봐줬는데요.”

김 사장은 A 씨가 숨지자 주한 미얀마대사관을 통해 그의 가족을 찾아 나섰다. 알고 보니 A 씨의 아버지는 오래전에, 어머니는 올해 5월 이미 사망했다. 여동생은 미얀마 수도에서 차로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가난한 마을에 살고 있었다. 김 사장은 A 씨의 장례식을 위해 그나마 수도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A 씨의 삼촌에게 항공료 190만 원을 보냈다. 그리고 동료 외국인 근로자들이 조문할 수 있도록 한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릴 준비를 마쳤다.

김 사장 등은 간소한 장례식을 거쳐 A 씨의 시신을 화장해 유해를 고국으로 보내줄 생각이다. 그러나 A 씨의 시신은 4일째 차가운 냉동고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화장을 하기 위해 미얀마대사관에서 A 씨의 신분을 입증할 서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 이르면 22일 A 씨의 빈소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병원비와 장례식 비용 등은 김 사장과 회사 동료들이 내기로 했다. 21일 오후 A 씨가 일하던 공장은 여전히 쉴 새 없이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직원 20여 명이 부지런히 부품을 만들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침울했다. A 씨의 삼촌이 이날 늦게 한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음주운전#뺑소니#미얀마#코리안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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