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식당 착한 이야기]서울 서초동 수제버거집 ‘데일리라운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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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발효 빵에 살코기 패티… 질리지 않는 ‘집밥’같은 버거

착한 버거를 만드는 데일리라운드의 이지애 사장.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메뉴인 치즈 블루스 버거(왼쪽)와 필리치즈 스테이크 버거를 선보이고 있다. 데일리라운드의 버거는 폭신한 느낌이 아니라 현미밥을 먹듯 오래 꼭꼭 씹어야 한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착한 버거를 만드는 데일리라운드의 이지애 사장.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메뉴인 치즈 블루스 버거(왼쪽)와 필리치즈 스테이크 버거를 선보이고 있다. 데일리라운드의 버거는 폭신한 느낌이 아니라 현미밥을 먹듯 오래 꼭꼭 씹어야 한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버거 100여 개가 다 팔린 시간은 오후 2시 반. 낮 12시에 문을 연 가게는 2시간 반 만에 문을 닫았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착한 수제버거집 ‘데일리라운드’다.

하루에 두서너 시간 반짝 장사를 하니 다른 사람들 눈에는 참 팔자 편하게 보이겠지만, 데일리라운드 이지애 사장(35)의 친구들은 “아, 나도 카페나 하면서 여유롭게 지내고 싶다”는 말을 결코 하지 않는다. 가게 구석에서 쪽잠을 겨우 자고 날마다 재료 구매, 레시피 연구에 직접 음식을 만드느라 눈코 뜰 새 없는 이 사장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10년 전 이 사장은 평범한 사무직 회사원이었다. 회사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근처에 있었다는 점이 어쩌면 그의 인생에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른다.

“당시 가로수길이 막 뜨기 시작할 때였어요. 외국 생활을 경험하고 귀국해 창업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와플이 인기를 끌었고, 유기농 재료를 쓴다는 점을 강조하는 가게도 속속 등장했지요. 맛집을 즐겨 다니면서 두루 맛보고 많이 접하다 보니 그쪽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리게 됐어요.”

결혼을 한 뒤 직장생활 말고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와 빵에 눈길이 갔다. 문화센터와 개인 클래스를 찾아다니면서 커피를 배웠고, 제과·제빵 학원에서 기본과정을 익혔다. 그리고 2008년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카페 플랫’을 차렸다. 좋은 재료로 만든 정직한 음식을 제공하는 카페를 하겠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렸다. “그쪽 동네는 어린 친구들이 많아서 참살이(웰빙)나 건강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 자극적인 맛을 내세워야 장사가 될 거야. 네가 하려는 콘셉트로는 많이 팔지 못할걸.”

그래도 그는 시판하는 퓌레나 주스를 섞어서 만드는 가짜 과일주스를 손님에게 내놓을 수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진짜 과일, 진짜 우유로만 만드는 생과일주스를 메뉴에 올렸다. 주변의 걱정과 달리 반응이 좋았다. “맛이 민숭민숭하다” “더 달았으면 좋겠다”는 손님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중장년층부터 젊은이들까지 두루 카페를 찾았다. 간단한 샌드위치도 직접 만들어서 내놨다.

봄에 벚꽃이 흩날리는 한적한 동네가 좋아서 카페를 냈지만, 창업 이후 2∼3년 새에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근처에 속속 들어섰다. 홍대 상권의 특성상 하루도 편히 쉴 수가 없었고 긴 영업시간에도 지쳐갔다. 마침 남편의 사업 때문에 해외에 나가야 해서 겸사겸사 카페를 정리했다. 미국과 일본을 돌아다니면서 커피 샌드위치 디저트를 많이 접하고 많이 먹었다. 식자재에 대한 공부도 틈틈이 했다.

귀국해서 다시 카페를 열까 생각했지만 어디에나 있는 ‘보통의 카페’는 하고 싶지가 않았다. 임대료가 저렴한 서초동 뒷골목에 작은 작업실을 열었다. 지금의 데일리라운드 자리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때 그걸 하자는 생각이었다. 카페를 창업해 성공한 경험이 있다 보니 알음알음으로 카페 컨설팅을 받고 싶어 하는 이들이 찾아왔고, 원두를 로스팅해서 카페에 공급하기도 했다. 간혹 푸드 스타일링도 했다.

그러다 보니 그가 만든 정직한 음식을 다시 먹고 싶어 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여러 메뉴 가운데서도 버거를 메뉴로 선택한 것은 근처에 사는 어린이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아토피나 특이체질인 아이들이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버거를 좀처럼 찾을 수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버거는 잘 아는 분야가 아니어서 공부를 시작했지요. 알면 알수록 복잡한 것이 버거였어요. 외국에서 살다 오신 분들이 많다 보니 어디 식이다, 빵 길이는 몇 cm여야 한다 등등 여러 기준이 있더라고요.”

그의 해결 방법은 간명했다. 좋은 재료를 쓴 깔끔하고 담백한 버거. 첨가제와 인위적인 맛은 배제하고, 소스 범벅인 정체불명의 버거는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2011년 12월 수제버거 가게 문을 열었다. 일상에서 부담 없이 매일매일 즐길 수 있는 음식을 선보인다는 뜻에서 가게 이름을 데일리라운드라고 지었다.

메뉴를 개발해서 선보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손님들은 맛이 밋밋하다면서 케첩이나 머스터드를 달라고 했다. 이 사장 스스로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잘 팔릴 버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씩 변화가 생겨났다. 한 손님은 “이 집 버거를 먹다 보니 다른 가게 버거의 자극적인 맛이 거슬린다”고도 했다. 출근하듯 매일 가게를 찾는 사람도 있다.

요즘 데일리라운드의 최고 인기 메뉴는 불고기 느낌이 물씬 나는 ‘필리치즈 스테이크 버거’(9500원), 생 모차렐라 치즈와 블루베리 소스가 들어가는 ‘치즈 블루스 버거’(1만500원)다. 접시 위에 올라가는 모든 음식은 전부 이 사장의 손을 거친 것이다. 버거 빵도 직접 굽고, 고기 패티도 직접 만든다. 블루베리 소스, 피클까지 손수 만들어서 내놓는다.

오후 서너 시에 그날의 영업이 끝나면, 내일을 위한 준비가 시작된다. 자연발효로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녁 시간에 빵을 반죽해서 발효시키면 훌쩍 새벽이 된다. 대량 생산에 거부감을 가진 이 사장은 고되더라도 조금씩, 자주 만드는 쪽을 선택했다. 반죽기도 가정용밖에 없다. 버거용 빵은 오전 8시에서 10시 사이에 오븐에서 나온다. 낮 12시쯤 가게 문을 열기 전 그 사이에 고기를 다져서 반죽하고, 다른 부재료를 다듬느라 손이 분주하다.

버거용 빵은 손님들이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네 종류를 준비한다. 오트밀, 밀크, 참깨, 먹물. 리코타 치즈를 만들고 남은 유청이나 우유를 빵 반죽에 쓴다. 인위적으로 발효를 시키지 않기 때문에 100∼120개 중에 30개는 모양이 망가지고 만다. 보기에는 일반 버거의 빵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한 조각을 떼서 입에 넣어 보니 확연한 차이가 느껴졌다. 거친 느낌이었지만 꼭꼭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피어났다. 소금과 후추만 넣은 살코기 패티와 이뤄내는 앙상블이 훌륭했다.

보통 버거는 고기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그는 각각의 재료를 모두 주인공으로 대접한다. 채소와 달걀은 시장 상황이 허락하는 한 친환경, 무항생제를 쓰려고 하고, 버터나 우유도 성분을 꼼꼼히 보고 고른다. 이 사장은 “아이들과 아이들의 엄마, 주로 여성 고객이 많아서 원재료를 중요하게 여긴다. 빵도 일반 밀가루만 쓰지 않고 통밀을 넣은 건강빵 개념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고민이 많다. 주문을 받으면 그때부터 조리에 들어가는 현재의 시스템은 한국 정서에 잘 맞지 않는 방식이라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채널A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을 통해 착한 식당에 선정된 이후 그 고민은 더 깊어졌다. 가게 앞에 줄지어 선 손님들이 “직원을 더 쓰고 빨리빨리 일하라”고 채근하지만 그만의 고집이 있다. 서비스를 신속히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데일리라운드를 시작할 때의 다짐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테이블 다섯 개가 놓인 작은 가게에 들어서면 곧바로 이런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매장에서 직접 만든 모든 빵과 소스는 인위적인 식품첨가물은 사용하지 않은 홈메이드 방식으로서 자극적인 요소를 지양합니다.’ ‘매장 특성상 많은 양의 재료를 준비할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주문이 불가한 메뉴가 있을 수 있으며 당일 준비된 빵이 모두 소진되면 영업을 종료합니다.’

“데일리라운드는 ‘맛있는 버거 먹으러 가야지’ 하고 찾아오는 그런 매장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아요. 부담 없이 지속적으로 오래 드실 수 있는 음식, 아플 때 갑자기 생각나는 음식, 그런 힐링푸드이고 싶어요. 아주 소란스럽고 번잡하기보다는 치유를 제공하는 공간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제 마음이 변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수제버거#데일리라운드#서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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