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연구단지 40년]<下>박근혜정부 경제성장 축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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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실리콘밸리… 40년 ‘창조’ 노하우로 창조경제 선도

KAIST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센터(센터장 오준호 대외부총장) 연구원(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6월 미국 드렉셀대 공동 연구팀과 함께 새로 개발한 신형 휴보(DRC휴보)를 살펴보고 있다. DRC휴보는 재난 구조 로봇으로 고장 난 원자력발전소 등에서 복구 작업을 벌일 수 있다. DRC휴보는 올해 말 미 국방부가 주최하는 로봇경진대회에 참가한다. 과학동아 제공
KAIST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센터(센터장 오준호 대외부총장) 연구원(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6월 미국 드렉셀대 공동 연구팀과 함께 새로 개발한 신형 휴보(DRC휴보)를 살펴보고 있다. DRC휴보는 재난 구조 로봇으로 고장 난 원자력발전소 등에서 복구 작업을 벌일 수 있다. DRC휴보는 올해 말 미 국방부가 주최하는 로봇경진대회에 참가한다. 과학동아 제공
한국화학연구원 손종찬 박사(61)가 개발해 임상 시험 중인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치료제는 현재까지 개발된 치료제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이즈 치료제 개발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정부 방침 때문에 직접적인 연구비 지원이 없음에도 고집스럽게 10년간의 장기 연구를 한 결과다.

박근혜 정부가 “대덕연구개발특구를 ‘창조 경제의 전진기지로 삼겠다”며 기대감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창조경제 미션을 받은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최근 대덕특구를 자주 방문해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해 달라”는 것. 연구원들은 “아직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도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욕을 갖고 있다. 창조경제가 추구하는 ‘대박’ 연구 개발과 중소기업 성공을 위한 지원은 전통적 가치인 ‘근성’과 ‘관심’에서 나올 수 있음을 대덕특구가 보여 주고 있다.

○ ‘근성’이 가져온 대박 성과들

한국화학연구원은 2009년 9월 미국계 다국적 제약사인 길리아드와 손 박사의 에이즈 치료제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에이즈 치료제 시장점유율 1위인 이 회사는 손 박사 치료제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 박사급 30명을 붙여 후속 연구를 지속했다. 내부 사정으로 지난해 개발권이 다른 신약 개발 전문회사인 카이노스메드에 넘어갔지만 임상 실험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성공은 손 박사의 끈질긴 근성 때문에 가능했다.

손 박사가 1998년 에이즈 치료제 개발에 나섰을 때 정부는 국내에 에이즈 환자가 많지 않다며 지원하지 않았다. 손 박사는 유사한 바이러스 연구 과제를 내 그 예산으로 치료제 연구를 계속했다. 단기간의 성과를 요구하기 때문에 5년 이상 한 과제에 매달리기 어려운 정부출연연구소 상황에서 손 박사는 해고를 각오하고 오전 7시부터 밤늦게까지 연구실을 지켰다. 세계적인 에이즈 치료제는 이렇게 태어났다.

인간형 로봇 휴보(Hubo)는 올해 말 미 국방부가 주최하는 로봇경진대회에 참가해 가상 원전사고 현장에 들어가 밸브를 잠그고 나오는 시연을 할 예정이다. 국제적인 명성이 높아지면서 지난해 12월에는 2대가 대당 40만 달러(약 4억4600만 원)씩에 구글에 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2002년 개발 초기만 해도 정부는 물론 어떤 단체도 휴보 개발을 지원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개발에 나선 KAIST의 오준호 교수(현 대외부총장)는 사비 4000만 원가량을 털어야 했다. 점차 휴보가 모양을 갖춰 가자 학교가 지원에 나섰다. 2004년부터 정부 관련 부처들은 서로 지원하겠다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정부는 인간형 로봇 개발 방침을 정하고 일본에 사람을 보냈다가 국내의 휴보 존재 사실을 이때 처음 알았다고 한다.

○ 향토기업 한화그룹, 청년창업 돕고 벤처 이끌어

대구의 엔유씨전자는 국내 녹즙기 시장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주방가전업계의 압도적인 선두 주자다. 원액기 매출은 2010년 19억 원에서 2012년 509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한국정보과학기술연구원에 의뢰해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원액기의 착즙률을 높이는 기술을 확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는 ‘슈퍼컴퓨터가 열어 가는 제조업 혁명’의 한 사례다. 이 연구원의 홍보 담당 이종성 씨는 “슈퍼컴은 국방, 우주항공, 기상, 에너지 등 거대 과학에 주로 쓰였지만 중소기업 지원에도 눈을 돌려 보자며 생각을 바꾼 게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대덕 이노폴리스벤처협회 소속 최고경영자(CEO)들은 수년째 자비를 들여 청년들에게 창업 멘토링을 벌이고 있다. 이를 위해 청년진로창업벤처포럼 멘토단을 구성해 3년 이상씩 꾸준히 창업을 돕는다. 이승완 벤처협회 회장은 “회사 운영에 바쁜 벤처기업 대표들이 청년들의 창업을 위해 시간과 돈을 할애하는 것은 ‘상생의 정신’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향토기업인 한화그룹은 벤처기업에 투자 유치 전략과 기업공개, 마케팅 등에 대한 전문가 특강을 주선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협력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한화투자증권 충청호남지역사업부 최덕호 상무는 2006년 대덕이노폴리스벤처협회의 전문위원을 맡아 청년 창업 멘토링도 돕고 있다. 대전의 상장기업협회와 상생 포럼을 열기도 했다.

○ 선도형 경제 시대 대덕의 역할 관심


과학기술로 추격형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대덕특구는 21세기 선도형 경제 시대를 맞아 어떤 새로운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KAIST는 실리콘밸리같이 과학자와 기업가 등이 자유롭게 만나 상상력을 발휘할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도서관과 KI빌딩 등이 있는 교내 공간을 ‘창의 동산’(가칭)으로 만들어 연구개발과 비즈니스가 만나도록 할 계획이다.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은 “선도 기술에 대해서는 기업이 투자를 좀 더 강화하고 있고 긴박감도 더 느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다”며 “정부출연연구소들은 지금과는 다른 역할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정부가 대학에 기초연구 투자를 늘려 가는 추세여서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은 앞으로 국가적인 대형 프로젝트나 공공복지 등의 연구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박근혜정부#창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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