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숭이 北산림 녹화로 그린 데탕트” 국제협력기구 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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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해야 하나 된다]
기후변화센터 연변대서 워크숍 ‘亞산림녹화협의기구’ 출범키로

재단법인 기후변화센터의 명예이사장인 고건 전 국무총리가 9일 중국 옌지 시 연변대에서 열린 ‘동북아시아지역 산림생태계 보호 및 복원’ 워크숍(동아일보 후원)에서 북한 산림 복원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 워크숍에서는 ‘아시아산림녹화협의기구’(가칭) 출범 방안이 채택됐다. 옌지=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재단법인 기후변화센터의 명예이사장인 고건 전 국무총리가 9일 중국 옌지 시 연변대에서 열린 ‘동북아시아지역 산림생태계 보호 및 복원’ 워크숍(동아일보 후원)에서 북한 산림 복원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 워크숍에서는 ‘아시아산림녹화협의기구’(가칭) 출범 방안이 채택됐다. 옌지=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북한 몽골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의 산림녹화 추진을 위한 민간협력기구가 발족된다.

9일 중국 옌지(延吉) 시 연변대에서 열린 ‘동북아시아 지역 산림생태계 보호 및 복원 워크숍’(동아일보 후원)에서 가칭 ‘아시아산림녹화협의기구(GAO·Green Asia Organization)’의 출범 방안이 채택됐다. 이 기구는 북한의 산림녹화를 위한 국제적 협의의 토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GAO는 이번 워크숍을 주관한 재단법인 기후변화센터와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연변대 지리학과가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여기에 해당 국가의 정부, 국제기구, 시민사회단체, 기업 등을 포함시켜 구성원을 다양화할 계획이다. 이날 한중 양측은 비공개 회의를 갖고 한중, 북-중 협력을 강화해 남북중 3국 협력으로 확대하기로 뜻을 모았다.

기후변화센터 명예이사장을 맡고 있는 고건 전 국무총리는 “북한의 산림 복원은 백두대간으로 연결된 남북한 생태계 모두에 혜택을 주는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 북한의 산림 황폐화는 최악 수준

2012년 발표된 영국 위험관리 컨설팅회사 메이플크로프트의 ‘산림황폐화지수’에 따르면 북한은 나이지리아 인도네시아에 이어 세계 3위의 최고위험 국가에 속해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북한 산림의 약 32%(284만 ha)가 헐벗은 산지라고 추산한다. 이우균 고려대 교수(환경생태공학부)는 “1999∼2008년 북한의 황폐지 면적은 74%나 늘어났다”고 말했다. 남영 연변대 교수(지리학과)도 “1976년 이후 두만강 국경지역 중국 러시아 북한의 토지이용 상태를 항공영상으로 비교한 결과 북한의 임야 훼손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최근 발표한 ‘2013 인간개발지수(HDI)’ 보고서에서도 2010년 기준 북한의 육지에서 산림이 차지하는 총면적의 비중은 47.1%에 불과했다. 남한은 63%다. 이 보고서는 “1990∼2010년 남한의 산림 면적은 2.3%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북한은 30.9%나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는 무분별한 산림벌채와 다락밭(산비탈에 만든 계단식 밭) 개간을 위해 산림을 파괴한 데 따른 것이다. 산림이 사라지면서 홍수피해가 빈발하고 이로 인해 농경지가 황폐화되면서 식량 사정은 더욱 나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정치적 명분도 있고 실리도 큰 만큼 박근혜 정부만 의지를 보이면 산림녹화 사업에는 북한도 곧바로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행복한 통일시대의 기반 구축’을 국정 목표로 설정한 박근혜 정부는 남북 환경공동체 건설을 위한 ‘그린 데탕트’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 최고의 산림녹화 롤모델은 한국


북한의 산림녹화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면 한국의 조림 경험이 적극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치산녹화계획’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성공 모델로 꼽힌다.

1972년 고건 당시 내무부 새마을사업담당 국장이 입안한 ‘국토 조림녹화 10개년 계획’은 3대 기본방향을 설정하고 집행됐다. △모든 국민이 나무를 심고 가꾸는 ‘국민조림’으로 추진하고 △홍수와 산사태가 반복되고 있으니 이를 막기 위한 ‘속성조림’을 만들되 △장기적으로는 실질적인 이득이 되는 ‘경제조림’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속성으로 키울 수 있는 아까시나무, 낙엽송 등 10대 수종(樹種)이 전략적으로 선택됐다. 농림부에 속해 있던 산림청도 새마을운동의 주무부처인 내무부로 옮겼다. 경찰이 입산을 통제했고, 낙엽 채취조차 금지했다. 범정부 차원의 행정력 총집중이었다.

또 ‘연료-식량-소득’을 연결시킨 종합 접근법을 썼다. 연료(땔감) 대책을 세우지 않고 산림녹화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난방과 취사를 위해 있던 나무도 베어내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또 식량 부족으로 임야를 개간해 밭을 만드는 화전민 문제도 해결해야만 했다. 지금의 북한 사정이 1970년대 한국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 북한도 환경 문제에는 호응할 개연성 높아

북한도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김일성종합대를 중심으로 대책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펄프공장과 생활오수, 북한 무산철광에 의해 두만강 오염이 심각해지자 중국과 환경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 대표적인 움직임이다. 이에 따라 산림녹화도 계기만 마련되면 북한이 적극 호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는 이미 학술 차원에서 공동 연구가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은 2007년 12월 ‘보건의료·환경보호협력분과 위원회’에서 황해북도 사리원에 양묘장을 조성하고 산림병해충 방제 협력을 해 가기로 합의했으나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당국 차원의 협력은 전면 중단됐다. ‘겨레의 숲’ 등 민간단체의 양묘장 조성과 방제 지원도 2010년 5·24조치(대북지원, 경협 금지) 이후 금지됐다.

하지만 남북한 모두 산림협력에 의지가 있고 준비가 된 만큼 정치적 결단만 이뤄지면 북한 산림녹화는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전망이 많다. 남북 관계가 냉랭했던 이명박 정부에서도 북한은 한국에 산림 복원 협력 의사를 문의하며 협력에 의욕을 보인 바 있다. 산림청은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북한에서 조림이 필요한 대상 지역 분석을 끝내 놓은 상태다.

옌지=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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