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뒷談]獨-러 박물관서 찾아낸 ‘佛畵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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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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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조선초 佛畵의 원형은 위구르 왕국에 있었다
조성금 박사 10년 추적해 밝혀내

고려불화 ‘천수천안관세음보살도’의 배경이 불교의 밀교(密敎) 경전 ‘대일경(大日經)’이다?

국내 한 여성 학자가 10년 넘게 ‘실크로드’ 중앙아시아 불교회화 연구에 매진한 끝에 고려·조선 불화 가운데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작품들의 기원을 최초로 밝혀냈다. 또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동쪽 투루판에 있는 ‘베제클리크 석굴의 서원화(誓願畵)’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재가 명칭이나 해석이 잘못됐다는 사례도 다수 찾아내 세계 고고미술사학계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고려·조선 불화의 기원을 위구르에서 찾다

화제의 주인공은 조성금 동국대 미술사학과 박사(41). 그는 최근 동국대 박사논문 ‘천산 위구르 왕국의 불교회화 연구’를 통해 전 세계에 산재한 위구르 불교 회화를 총체적으로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위구르 불교가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불교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회화를 통해 짚어 냈다.

천산(天山) 위구르 왕국은 9∼13세기 국내에 흔히 ‘서역’의 중심지로 알려진 투루판 지역을 지배했던 국가다. 흉노의 후예인 튀르크계 위구르 족은 원래 744년 몽골 지역 셀렝가 강 유역에서 위구르 제국을 건설해 맹위를 떨치다 840년 같은 튀르크계인 키르기스족의 침입으로 멸망했다. 이후 위구르인들은 서쪽으로 거점을 옮겨 각기 3개의 나라를 세웠는데, 그중 하나가 천산 위구르 왕국이다.

천산 위구르는 특히 불교를 국교로 숭상해 수준 높은 불교문화를 향유했다. 이 때문에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로 전파되는 핵심 경유지였다. 동북아 3국의 불교회화가 위구르의 영향을 받는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한국과 관련해 조 박사가 이룬 가장 큰 성과는 조선불화인 ‘지장육광보살도(地藏六光菩薩圖)’의 정확한 기원을 찾은 것이다. 지장육광보살도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6명의 보살이 양 옆에 포진하고, 아래 지장보살을 모시는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그려진 불화. 국내외에 10여 점이 전해지고 있는데, 일본 요다(與田)사가 소장한 15세기 작품(그림 ①)과 동국대박물관의 18세기 불화(그림 ②)가 대표작이다.

그동안 지장육광보살도는 그림을 해석할 수 있는 출처를 찾을 길 없었다. 사실 불화는 많은 종교화가 그렇듯 절대적으로 도상학(圖像學)에 충실하다. 다시 말해, 그림의 배경이 되는 경전이 꼭 존재한다. 인물 배치나 구도를 상상에 의존해 그리는 법이 없다. 하지만 지장육광보살도는 배경 경전을 찾지 못해 애를 태웠다.

조 박사는 이 미스터리를 풀어냈다. 독일 베를린 아시안아트뮤지엄에 있는 천산 위구르 불화인 ‘극락 장면, 지장보살과 지옥의 시왕’(그림 ③)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이 불화의 하단이 지장육광보살도와 똑같은 배치와 구도로 그려져 있는 것. 위구르 불화가 중국을 거쳐 조선에 들어오면서 전체는 생략되고 일부만 전해졌음을 짐작게 한다.

흥미로운 건 독일에 있는 불화 제목이 엉터리였단 점이다. 서양인이 경전을 무시한 채 맘대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조 박사에 따르면 이 그림은 석가모니가 열반(涅槃)에 들기 전 염라대왕에게 설법을 전하고, 그 아래 보살들이 모여 공경을 올리는 장면으로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이란 경전을 토대로 했다. 그림에 극락은 나오지도 않는다. 즉, 불화 ‘극락 장면…’은 ‘불설예수시왕생칠경 변상도(變相圖·불경을 시각화한 그림)’라 불러야 마땅하며, 지장육광보살도는 이 변상도의 일부였던 것이다.

해외 위구르 불화의 오류도 잡아내… 세계적 성과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한 고려 후기 불화 ‘천수천안관세음보살도(千手千眼觀世音菩薩圖’(그림 ④).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지닌 관세음보살을 그린 이 그림도 그 배경이 되는 경전이 불분명했다. 중국 간쑤(甘肅) 성에 있는 둔황 막고굴(敦煌 莫高窟) 3굴에 비슷한 형태의 천수관음도(그림 ⑤)가 있어 관련이 있을 거란 짐작만 가능했다.

하지만 이 역시 원형이 된 그림의 일부였음을 조 박사가 밝혀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에르미타주박물관이 소장한 10세기 위구르 불화(그림 ⑥)가 난제를 푸는 열쇠였다. 그림 아래에 천수천안을 가진 관세음보살이 분명하게 등장한다. 전체를 보면 보살 위로 석가여래를 비롯한 오불(五佛)이 위치하고, 관음 주위에는 보살과 속인, 명왕이 등장한다. 이는 불교 밀교의 경전으로 팔만대장경에도 포함된 ‘대일경’(비로자나불과 대일여래가 체험한 성불의 경지를 적은 경전)의 내용과 일치한다.

위구르 불화의 대표작인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20호의 서원화는 그 명칭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여기서 서원(誓願)이란 부처나 보살이 중생 구원을 서약하고 기원한다는 뜻이다. 1900년대 위구르를 조사한 ‘독일 투루판 탐험대’의 알베르트 폰 르코크가 지은 제목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한국 국립중앙박물관도 일부를 갖고 있는데, 당연히 서원화라 불러 왔다.

하지만 석굴에 있던 13개 그림을 보면, 딱히 뭔가를 기원하는 자세나 표정이 아니다. 당당하게 서서 설법을 전하는 부처만 보인다. 조 박사는 그림마다 한 줄씩 새겨진 산스크리트어에 주목했다. 전문가에게 의뢰해 이를 해석한 결과 ‘비나야약사(毘奈耶藥事)’라는 경전의 경구와 동일했다. 그림 역시 경전을 형상화했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서원화라 불렀던 작품의 실제 이름은 비나야약사 변상도가 타당했던 것이다.

조 박사의 논문은 해외 학계에서 먼저 알아봤다. 2008년 현지에서 열린 투루판 국제학회와 201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중간 결과를 발표해 찬사를 받았다. 논문의 영어판 단행본 출간도 추진되고 있다. 장진성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조 박사의 연구는 동아시아 및 중앙아시아 전체를 통관하는 비교사적 불교회화사 연구에서 큰 성취를 이뤄 냈다”며 “위구르 불교회화를 연구한 최초의 국내 박사논문이란 의의도 함께 지닌다”고 평가했다.

에르미타주박물관에서 연구 중인 조성금 박사(왼쪽).
에르미타주박물관에서 연구 중인 조성금 박사(왼쪽).
실크로드를 향한 꿈

논문 자체의 성과도 훌륭하지만, 조 박사가 들인 노력과 정성은 더욱 놀랍다. 2000년 대학원 석사 때부터 이번 박사논문 완성까지 장장 13년 동안 중앙아시아 미술 연구에만 천착해 왔다.

조 박사는 그저 시간만 들인 게 아니었다. 위구르 불교회화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주목받은 분야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기초부터 스스로 해결해야 할 난관이 산더미였다.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를 1년에 서너 번씩 방문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불화가 있는 곳이라면 미국과 독일 일본 프랑스 인도를 마다하지 않고 직접 찾았다. 이번 논문은 세계에 현존하는 위구르 불화는 모두 직접 보고 연구한 산물이다. 사료도 더 확실한 분석을 위해 영어 중국어 독일어는 물론이고 위구르어까지 사전을 구해다 직접 읽고 해석했다. 위구르 석굴불화는 현장 답사를 하도 갔더니, 관리인들이 그를 믿고 열쇠를 맡긴 채 휴가를 떠난 적도 있다. 홀로 3주 동안 동굴을 드나들며 실컷 연구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중앙아시아 연구에 빠져들게 만들었을까. 조 박사는 일곱 살 때 우연히 TV에서 본 다큐멘터리 ‘실크로드’를 떠올렸다. 일본 NHK에서 제작한 그 영상을 마주한 순간 ‘평생의 꿈’을 품었다고 한다. 언젠가 꼭 저기 가서 내 손으로 탐험하리라.

“우습죠? 어린애가 뭘 안다고. 근데 그게 낙인처럼 내내 따라다니는 거예요. 결혼하고 아기 낳은 뒤에도 지워지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부모님과 남편이 하고픈 건 하고 살아야 한다며 적극 밀어주셨어요. 그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부족하지만 그 오랜 꿈이 담긴 연구랍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토요기획#러시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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