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뺑소니 사망사건, ‘친구 고백’ 덕분에 해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9일 20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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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승한 친구 제보로 재수사…사망사고 낸 40대에 징역 5년 선고

미제로 남을 뻔했던 뺑소니 사망사건의 피의자가 10년 만에 유죄를 선고받고 구속됐다. 사고 당시 동승한 친구의 제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3년 8월 8일 오후 9시 20분께 울산시 울주군의 한 마을 인근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인근 기업체 소속 근로자였던 피해자 현모(33)씨가 온몸의 골절상과 출혈 과다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결과 현씨는 마을 내 이면도로에서 차에 치여 사고 지점까지 무려 53m를 끌려 다닌 것으로 확인됐다. 만취상태로 도로 위에서 잠을 자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현장에는 아무런 단서가 없었다. 경찰은 타이어 흔적을 토대로 소형차량을 용의차량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검찰은 정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뺑소니범을 기소중지 처분했다.

미제로 남아있던 이 사건 수사는 8년이 지난 2011년 5월 제보자가 나타나면서 재개됐다.

제보자 A씨는 "사고 당시 뺑소니범이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고 경찰에 알려왔다.

제보 내용은 8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구체적이었다. A씨는 머릿속에 있는 사고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풀어냈다. 어떠한 자료도 참고하지 않고 구술에 의존했지만, 그의 진술은 마치 어제 상황을 말하는 듯 생생했다.

A씨는 자신의 친구인 이모(45)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사고 당시 A씨는 이씨 부인과 함께 이씨가 모는 승용차에 타고 있었다. 사고 지점을 지나면서 무엇인가 바퀴에 걸리는 느낌을 받았지만, 설마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이씨는 50여m를 더 진행했다. 이씨는 교차로에서 정차해서야 차 문을 열고 차바퀴에 걸린 현씨를 확인했다.

당황한 이씨는 "아내를 먼저 집에 데려다 주고 사고를 처리하겠다"고 했다. A씨도 동의했다.

그러나 집에 도착한 이씨는 마음을 바꿔 사고를 신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앞에서 목격자인 양 행세했다. 이후 A씨가 수차례 자수를 권했지만, 이씨는 듣지 않았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던 A씨는 6개월이 지난 2004년 2월 경찰에 신고했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기는 곤란했다. 친구를 곧장 경찰에 넘기기가 부담스러운 데다 자신까지 곤란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사고 차종과 색깔 등을 지목해 경찰이 범인을 찾도록 했다.

경찰은 범인을 검거하지 못했고, 시간은 2011년까지 흘렀다. 오히려 A씨를 두고 '친구를 음해한다'는 등의 소문이 동네에 돌았다. A씨는 스트레스로 건강이 악화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울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8년 만에 A씨의 제보로 사연을 듣게 됐다. 경찰은 A씨의 진술서와 8년 전 작성된 경찰의 사고조사 기록을 비교했다. 모든 부분이 일치했다. 당시 경찰이 촬영한 현장 사진은 A씨의 진술 그대로였다. 물증은 없었지만, 심증은 확실했다.

경찰은 이씨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도 경찰의 의견을 수용했다.

2011년 11월 시작된 재판은 2년간 진행됐고, 지난 18일 1심 선고가 내려졌다.

울산지법 형사6단독은 이씨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죄를 적용해 검찰이 구형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사고 현장을 목격했다고 주장하지만, 제보자 A씨의 진술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거시증거들에 의해 공소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사망한 결과가 발생했고 오랜 기간 유족이 심대한 고통을 겪었을 것인데도, 피고인은 여전히 범행을 부인하는 점을 고려했다"며 양형이유를 밝혔다.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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