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고 있는 기업들 “동반성장 등급 꼴찌땐 치명타… 사표 써 놓고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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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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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반위, 내일 56개 대기업 지수 첫 발표

10대 기업 중 한 곳의 동반성장 담당 A 부장은 사직서를 갖고 다닌다. 10일 제16회 동반성장위원회에서 56개 대기업의 동반성장지수가 발표되고 만에 하나 그의 회사가 꼴찌 등급을 받는다면 미련 없이 제출할 생각이다.

‘대기업이 얼마나 중소 협력업체를 배려하는지 점수를 매기겠다’는 동반성장지수의 첫 공표를 앞두고 대기업들이 떨고 있다.

○ “개선 등급은 악덕 기업?”


동반성장지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작성하는 ‘동반성장 및 공정거래협약 실적평가’와 동반성장위가 자체 조사하는 ‘체감도 조사’를 통합해 산정한다. 공정거래협약 실적평가는 과거에는 협약을 맺은 기업에 한해 실시했지만 이번에는 56개 대기업 모두를 평가했다. 체감도 조사는 각 대기업 협력업체들을 대상으로 벌인 일종의 설문조사로 이번이 처음이다. 이 두 평가를 합산한 점수에 따라 56개 대기업은 △우수 △양호 △보통 △개선 등급 중 하나를 받게 된다. 개선 등급을 받으면 ‘협력업체를 후려치는 기업’으로 인식돼 이미지에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된다.

대기업의 동반성장 담당자들로서는 ‘목숨’이 걸린 사안이다. 한 30대 기업의 담당 간부는 과거 공정거래협약 실적평가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로 지난해 쫓겨났다. 경쟁사보다 등급이 낮게 나온 것이 결정타였다는 후문이다.

대기업의 담당 간부들은 “어느 경영자가 ‘우리 회사는 동반성장 점수가 나쁠 것’이라고 여기겠느냐”며 “점수가 높으면 당연한 것이고 낮으면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우리 회사의 점수가 높은지, 낮은지만 귀띔해 달라”고 동반성장위에 매달리고 있다. 변명이라도 미리 준비하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동반성장위는 실무위원회 위원들에게도 개별기업 점수는 비밀로 할 정도로 보안에 신경 쓰고 있다.

동반성장지수 발표 뒤 낮은 점수를 받은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조사 방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움직임도 있다. 이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56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체감도 조사의 적정성에 관한 설문조사를 해 지수 발표 직후 공개할 예정이다.

○ “망신 주려는 게 목적이냐”


56개 대기업 중 특히 유통·통신업종은 좌불안석이다. 자동차나 전자 같은 제조업은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상호 의존적인 관계여서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거나 자금을 지원해 주는 일이 많지만 유통·통신업은 단기계약이 일반적이어서 불리하다는 것이다.

체감도 조사에 대한 불만도 크다. 응답자의 주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데다 중소기업이 사실과 다르게 답해도 검증할 수단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거래비중도 따지지 않고 조사대상 협력업체를 무작위로 선정해 대표성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동반성장지수는 세부항목별 점수가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대기업으로서는 낮은 점수를 받아도 뭘 개선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며 “개선점을 찾자는 게 아니라 망신을 주자는 게 목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동반성장위 측은 “오히려 상당수 대기업이 세부 점수가 공개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고 반박했다. 업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동반성장위는 ‘같은 기준으로 평가해야 기업별 비교가 가능하며 일부 특수성은 배려했다’고 밝혔다.

동반성장위 관계자는 “거래비중이 높은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대기업이 관여하기 쉽다”며 “거래비중이나 기간과 관계없이 대·중소기업 거래가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대기업#기업#동반성장위원회#동반성장 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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