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민주주의 대공황을 넘자]<2>2040의 아우성 - “내 얘길 들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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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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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낮추니 월급 적고, 전세금 어쩌나 막막… 행복하지 않다”

“우리는 행복하지 않아요.”

동아일보가 ‘2012 민주주의 대공황을 넘자’ 시리즈를 준비하며 2040세대 15명을 그룹 및 개별 인터뷰 방식으로 직접 만나 보니 이들은 한결같이 팍팍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정치권은 이 어려움을 해소해 주기는커녕 별 관심도 없어 보이니 점점 화가 치솟는 듯했다.

○ 20대 일자리, 30대는 결혼과 보육, 40대는 벌써부터 노후 걱정


20대는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인 취업과 결혼을 준비 중인 ‘꿈을 꾸는 세대’다. 그러나 이번에 만나본 20대에게 인생의 전환점은 꿈이 아닌 부담이었다. 취업에 대한 압박은 20대의 낭만과 사색을 앗아갔다. “편히 잘 커서 그래. 옛날엔 더했어”라는 말은 상처만 키울 뿐이다.

조성현 씨(27·여·고려대 언론대학원)는 “직장을 선택하는 눈을 낮춰봤더니 임금의 문제가 컸다. 월 100만 원 남짓 되는 돈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인가. 집값, 물가 보면 눈을 낮출 수 없다”고 말했다. 힘들게 취업을 하더라도 직장에서 가치와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3년 내에 그만두는 친구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 32세, 여자 29세로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30대 들어서도 전세금을 모으느라 결혼은 계속 늦춰지고, 결혼 후 새로운 식구를 늘리기에는 보육비가 또 마음에 걸려 출산도 계속 늦어진다.

직장인 안재민 씨(33)는 “서울에서 전셋집을 구하는 데 2억 원 정도 필요하다. 월급 300만 원을 받는 청년이 절반을 저금해도 10년을 모아야 가능한 돈”이라고 말했다. 광고업계에서 근무하는 최병렬 씨(34)도 “전세를 얻은 친구들은 전세 기간 만료 때마다 전세금 올려줄 생각에 막막해하고 대출을 얻어 집을 마련한 친구들은 집값은 그대로인데 대출이자 내느라 버거워한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20, 30대에 치이는 40대들은 직장을 그만둔 이후 노후 생활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호텔에서 근무하는 조모 씨(41)는 “요즘 웬만한 직장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면 잘린다. 일찍 퇴근하면 회사에 밉보일까 봐 어린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것은 정말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공기업에 다니는 원모 씨(43)는 “40대는 사교육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소득은 줄고 미래는 보장되지 않는, 이중삼중의 샌드위치에 포박당한 세대”라고 말했다.

○ ‘안철수 현상’이 아니라 ‘소녀시대 현상’이라도 환영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개인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렸지만 ‘안철수 현상’ 자체에 대해서는 20∼40대 모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기존 정당들에 대한 강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이유다.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과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은 역설적으로 20, 30대층의 투표율을 높이고 있었다.

대학생 김승주 씨(22·연세대 정치외교학과)는 “국민은 국회의원을 체육대회에서 청팀 백팀 경기하듯이 싸워서 이기라고 뽑은 게 아닌데 싸우기만 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안재민 씨는 “여야가 바뀌어도 하는 행태는 늘 똑같다. 직접민주주의를 하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내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기존 정치를 심판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성치훈 씨(29·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생)는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반값등록금 정책이 나왔는데 20대 투표율이 오르니까 이제야 20대 공약이 제대로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병렬 씨도 “한 번도 투표해 본 적이 없었는데 잘못된 정치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깨달아 지난해 6·2 지방선거 때부터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기존 정치세력을 자극하고 긴장시킬 수만 있다면 안철수 현상이 아니라 ‘소녀시대 현상’이라도 좋다”고 말했다.

안 원장 개인에 대한 의견은 엇갈렸다. 회사원 양중부 씨(34)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후보를 양보하고 거액의 재산을 흔쾌히 내놓은 쿨한 이미지와 젊은층과 꾸준히 소통해온 따뜻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엘리트 티도 내지 않아 똑똑하고 신뢰가 간다”라고 말했다.

반면 하모 씨(41)는 “2030 후배들이 이렇게 열광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다. 명예에 돈까지 가진 그 사람이 권력까지 가져도 되는 건가”라고 했고, 공기업 차장 원 씨는 “아직 실체가 없고 거품이 있다. 고건 전 총리나 박찬종 전 의원도 한때 잘나가는 대선후보였다”고 말했다.

○ “50대 이상에 대해 존경과 거부감 공존”


50대 이상의 기성세대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끌었다는 존경의 마음과 동시에 보수적인 이념 성향에 대한 거리감도 갖고 있었다. 부모가 어느 특정 정당을 지지하라고 자식에게 말하는 광경은 이제는 옛말이 됐다.

양중부 씨는 “삶의 측면에서는 존경하지만 정치적 측면에서는 특정 정당에 대한 맹목적 지지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벤처기업 부장 전모 씨(45)는 “열심히 노력한 세대이지만 고정관념이 강한 세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늘 애틋한 세대다”고 말했다. 대학생 최재민 씨(28)는 “50대 이상은 대한민국의 기틀과 성장동력을 만드신 분들로, 보수정당과 함께 살아오신 분들로 이해한다. 그분들도 젊은 세대의 생각을 세대 간 분열이 아닌 또 다른 정치문화의 시작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2040세대는 대체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형성된 여론이 편향된 것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동시에 편향된 여론이나 괴담이 유통되는 것은 자정기능에 맡겨 풀어야지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강했다.

양 씨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등록은 했지만 거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정도로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SNS를 통해 괴담이 유통되지만 그건 자정기능에 맡기면 된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근하 씨(22·여)는 “제 소신과 다수 의견이 다를 경우 내 의견을 펼치기가 어렵다. 거기서 다른 글을 쓰면 매장당하는 것 같아서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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