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정은 얼굴 드러낸 첫날의 핵 공갈

북한이 베일에 가렸던 김정은의 얼굴을 어제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했다. 아버지 김정일이 1974년 후계자로 공식 지명된 뒤 6년 동안 외부에 모습을 감추고 숨어 지낸 것과 비교하면 파격이다. 이제 김정은이 군부대나 공장 시찰 같은 공개 행보에 나서면서 북한 주민과 국제사회를 향해 후계자로서의 지위를 굳히는 선전전에 돌입하겠다는 신호탄으로 보인다. 후계체제 전환이 그만큼 다급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김정은이 후계자로서 얼굴을 드러낸 첫날 북은 핵 공갈을 들고 나왔다. 박길연 북한 외무성 부상은 9월 29일(현지 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미국 핵 항공모함이 우리 바다 주변을 항해하는 한 우리의 핵 억지력은 결코 포기될 수 없으며 오히려 강화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북이 ‘김정일 시대’에서 ‘김정은 시대’로 전환되더라도 핵을 포기하거나 변화를 꾀하리라는 기대가 무망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 부상은 “선군(先軍)정치에 의한 강력한 전쟁 억지력이 없었다면 한반도는 이미 수십 차례 전쟁터로 변했을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북이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했다. 북이 천안함 사태 이후 다소간 유화 제스처를 보이고 한반도 비핵화 논의를 위한 6자회담 재개를 거론했지만 이 모든 것이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위장전술에 불과함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어제 북의 요구로 2년 만에 열린 남북 군사실무회담에서도 북은 예전 그대로였다. 북은 천안함 폭침(爆沈)에 계속 오리발을 내밀며 검열단 파견 수용과 대북 전단 살포 중단 같은 주장만 늘어놓아 회담은 소득 없이 끝났다.

김정은이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고 위인설관(爲人設官)의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선임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중앙군사위는 북의 군사정책을 총괄하는 곳이다. 김정은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영호 군총참모장도 부위원장에 함께 올랐다. 천안함 폭침을 주도한 것으로 지목된 김영철 인민무력부 총정찰국장은 중앙군사위 위원으로 급부상했다. 북이 당과 군 권력을 함께 틀어쥘 김정은과 그 측근들을 앞세워 선군정치와 대남 도발을 가속화하겠다는 의도 아니겠는가.

북은 이번에 노동당 규약을 개정하면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약속을 어기고 적화통일을 표방한 대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선군정치라는 표현을 새로 집어넣었다. 김정일이든 김정은이든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북을 상대하려면 무엇보다 그들의 실체와 진정한 속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