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존을 향해/2부]<5>예우받지 못하는 ‘공적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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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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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과 선망은커녕 비아냥과 홀대 ‘공익 파수꾼’ 자존심에 그늘이 진다

“남자들은 항상 자기가 군대 갔다 왔다며 뭘 해달라고 떼를 쓴다. 여자들이 그렇게 힘들게 낳아 놓으면, 남자들은 군대 가서 죽이는 것 배워 온다.”(EBS 수능 언어영역 강사)

“누군가 ‘당신의 인생을 의미 있게 하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할 수 있다. ‘나는 미 해군에서 복무했다’라고.”(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같은 군대지만 두 사람의 시각은 이처럼 다르다. 타고난 약골이었던 케네디 전 대통령은 군 장교 시험에서 잇달아 떨어지자 주영 대사를 지냈던 아버지의 힘을 빌려 입대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렇지만 한국에선 군, 경찰 등 제복의 명예가 희미해지고 있다. ‘공익에의 헌신’에 대한 존경이 희석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07년 발표한 한국인의 직업평가 조사 결과는 이 같은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70여 개 직업 만족도 평가 순위에서 군인 70위, 경찰관 104위, 소방관은 132위에 그쳤다. 반면 미국은 2009년 조사에서 명예로운 직업 1위가 소방관이었다. 군인은 5위, 경찰관은 7위였다.

○ 여전히 불평등한 군대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46명의 장병이 숨졌다. 희생자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서민 집안 출신’이라는 것. 북한과의 충돌 가능성이 높은 서해의 해군 병사, 그리고 최전방 철책을 지키는 병사들 가운데서도 사회지도층 인사의 자녀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방 감시초소(GP)에 근무하는 병사 중에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출신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한다. 군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투명해졌지만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별이 아직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물론 사회지도층 자녀 중에도 힘든 곳에서 근무하는 경우도 있다. 정장선 민주당 의원의 장남 정한범 이병과 차범근 축구감독의 둘째 아들 차세찌 이병은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각각 진해기지사령부와 해병대사령부에서 복무 중이다. 한나라당 김선동 의원의 아들은 육군 17사단 기관총 부사수로 복무 중이다. 전병성 기상청장의 아들은 25사단 포병대대에서 작전병으로 근무 중이다. 문제는 이 같은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취재를 위해 만난 대학생들의 머릿속에도 군대를 “힘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장모 씨(24·여)는 “여대생들에게는 군이 면제되는 재외국민특례입학자들이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홍익대 예술학부 안모 씨(20·여)는 “만약 남자친구에게 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있다면 군대에 가지 말라고 하겠다”고 말했다.

○ 군복무 안 해도 지도자 될 수 있는 사회

선진국에서는 군 복무 경력, 특히 목숨을 거는 참전 경력은 선거에서 내세울 수 있는 차별화 요소다.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최대 무기 중 하나가 베트남전 참전이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프린스턴대, 예일대 등 미국 엘리트 양성소로 꼽히는 아이비리그에는 전쟁에 참전했다가 희생당한 동문들을 기리는 장소가 있다. 그만큼 ‘미래 지도자’들의 희생이 많았다는 얘기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1, 2차 세계대전 당시 귀족 출신 또는 옥스퍼드대나 케임브리지대 출신 젊은이들의 전사자 비율은 서민 출신 자녀보다도 훨씬 높았다.

‘가진 자일수록 더 무거운 공적 의무를 진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과 맞닿아 있는 현상이다.

그렇지만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의무복무제를 택하고 있음에도 사회지도자 상당수가 다양한 이유로 군복무를 면제받았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이런저런 이유로 10년 넘게 군 소집을 연기해 결국 병역이 면제됐다. 민주당 소속의 한 광역단체장은 손가락을 잘라 입대를 기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번 6·2지방선거 당선자 중 437명(광역단체장 중 7명, 기초단체장 35명, 광역의원 87명, 기초의원 294명, 교육감 1명, 교육의원 13명)이 군 미필자다. 전체 당선자의 10.7%에 이르는 비율이다. 이 정도도 그나마 많이 나아진 것이다.

○ 소방관, 그리고 경찰은…

지난해 5월 제주에서는 손님과 술집 주인 사이에 술값 시비가 붙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손님에게 ‘짭새’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다. 경찰이 “짭새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자 그는 순찰차 바퀴에 발을 집어넣는 등 행패를 부렸다. 경찰은 한국 사회에서 존경이 아닌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경찰청에 따르면 범법자 공격에 의한 경찰관 부상자 수는 2004년 231명, 2005년 266명, 2006년 354명, 2007년 382명에서 2008년에는 465명으로 증가했다. 4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공무상 부상을 입은 소방관은 모두 2861명. 한 해에 평균 286명이 공상을 입는 셈이다. 한 해 순직자는 6∼9명쯤 된다. 그러나 이 같은 희생에 대한 보상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5월에는 화재신고를 받고 출동한 뒤 소방서로 복귀하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소방관에게 순직보상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소방공무원의 경우 화재진압이나 인명구조 같은 직무 자체를 수행하다 입은 재해만 포함하기 때문에 직무를 위한 출동·복귀 중 입은 재해는 순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 경찰이나 소방관이 출동 중 교통사고로 사망해도 ‘우리의 영웅이 쓰러졌다’며 신문이 대서특필하고, 시장이 참여한 가운데 성대한 장례식이 열리는 선진국과는 많이 다르다. 최근 소방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자식이 소방공무원을 하겠다고 지원하면 허락하겠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20%에 불과했다.

우리는 군인, 경찰, 소방관에게 내 생명과 재산, 그리고 공동체를 지켜달라며 그들의 헌신과 희생을 요구한다. 때로는 목숨까지도. 그렇지만 한국 사회는 그들을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가. 진심으로 존경하고 존중하는가. 자문해볼 때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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