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개발 두뇌 빼가기’ 법정다툼 잇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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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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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화학 연구원 이직금지’ 결정으로 본 실태

《LG화학 배터리연구소 팀장이었던 조모 씨는 2008년 3월 8년여간 근무했던 회사를 떠나 미국의 2차전지 업체 A123시스템스로 자리를 옮겼다. 비슷한 시기 같은 연구소에서 일하던 연구원 2명도 A123시스템스의 자회사인 에너랜드로 옮겼고 입사 4∼5년차 연구원이었던 주모 씨 등 3명에게도 헤드헌팅 업체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6명의 직원이 한꺼번에 경쟁사로 옮기자 LG화학은 올해 1월 서울중앙지법에 전직금지 및 영업비밀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10년 넘게 거액을 투자해 개발한 리튬이온폴리머전지의 핵심 기술이 이들 연구원과 함께 경쟁사로 넘어갈 것을 우려했기 때문.》

재판 과정에서 A123시스템스 측은 이들이 LG화학에서 맡았던 업무가 휴대전화나 노트북컴퓨터용 소형 전지 분야였던 반면 A123시스템스에서 맡는 업무는 전기자동차용 중대형 전지 분야라는 점을 들어 ‘기술 빼내기’가 아님을 강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LG화학 직원들의 전직은 LG화학의 영업비밀이 침해될 우려가 있는 동종업체로의 전직에 해당한다”며 LG화학의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다. 노트북·휴대전화용 소형전지나 전기자동차용 중대형 전지는 큰 틀에서 모두 충전이 가능한 2차전지, 리튬이온전지 분야이며 소형 전지에서 기술을 축적해 중대형 전지 분야로 진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판단한 것.

○ 법정으로 간 핵심 기술 유출

최근 신기술을 둘러싼 산업 현장의 핵심 인력 쟁탈전이 치열해지면서 대기업 간, 대기업과 외국 경쟁사 간 인력 이동을 둘러싼 가처분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신성장 사업 분야는 기술 개발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데다 연구에 필요한 우수 인력도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인력이 곧 기술력, 경쟁력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는 스마트폰의 핵심 부품인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디스플레이 핵심 인력의 이직을 둘러싸고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고, 물류회사 범한판토스도 미국 내 물류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직원이 경쟁 대기업의 계열사로 옮기자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다.

법원은 이 같은 분쟁에서 이직 전 회사와 맺은 전직금지 약정이 헌법에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합당한 것인지를 우선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옮기기 전 회사에서 보호해야 할 이익이 명백한지, 이직 전 회사에서의 지위와 처우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전직금지 기간을 적당한 범위로 제한하고 있다.

서울반도체가 파워 발광다이오드(LED) 개발팀장으로 일하다 전직금지 기간에 LG이노텍으로 이직한 직원 서모 씨와 LG이노텍을 상대로 낸 경업금지 및 영업비밀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서울중앙지법은 27일 서울반도체의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다. “서 씨가 2011년 3월 8일까지 LG이노텍으로 이직해서는 안 되고 영업비밀도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결정을 내린 것. 재판부는 △서 씨가 전 직장에서 얻은 정보를 옮긴 직장에서 이용할 가능성 △전 회사가 보안수당과 퇴직생활 보조금을 지급한 사실 등 서 씨의 직위와 업무 내용, 퇴직 경위 등을 고려해 2년이라는 기간이 합당하다고 판단했다.

○ “전직 막기 전에 처우 개선을”

기업들은 핵심 기술 인력이 경쟁사로 옮기는 것을 막기 위해 입사, 퇴사 때 “일정 기간 경쟁 기업으로 이직을 하지 않고 회사 기밀을 유출하지 않겠다”는 보안각서를 받고 있다. 전직금지나 영업비밀침해금지 가처분을 내는 근거가 되는 것도 바로 이 계약서다. 일부 기업은 매달 일정액을 ‘보안수당’으로 지급하고 회사를 떠난 뒤에도 매달 기본급의 일정 비율만큼 퇴직생활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직을 원하는 직원들은 “회사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매듭짓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서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회사가 과도한 계약 의무를 부과해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국내 한 보안장비 업체 연구원으로 일하다 지난해 다른 업종으로 이직한 장모 씨(34)는 “기업에서 핵심 기술 인력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거나 처우 개선에 힘쓴다면 왜 이직을 생각하겠느냐”며 “회사에서 계약이나 소송으로만 대응할 것이 아니라 핵심 인력을 유지하기 위한 근본적인 유인책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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