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이 존경받는 사회]2002년 당시 2함대사령관 정병칠 제독, 지난해 암으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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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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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연평해전 6인의 용사도 잊지 않겠습니다

“정부-유족 사이에서 한숨만 쉬시더니…”
■ 아들이 전한 ‘고통의 나날’

“사령관님…. 저 좀… 살려… 주세요….”

희미하게 눈이 깜박였다. “걱정 말거라. 꼭 낫게 해 주마.” 정병칠 제독(提督·당시 50세·소장 전역·사진)은 박동혁 병장(당시 21세)의 손을 꼭 잡았다. 제2연평해전에서 다쳐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한 박 병장이 간신히 의식을 회복했던 2002년 8월 말의 일이었다.

정 제독은 제2연평해전 당시 해군 2함대사령관이었다. 박 병장은 그해 9월 20일 결국 숨을 거뒀다. “6월만 되면 가슴이 답답해….” 이때부터 정 제독은 버릇처럼 되뇌었다.

○ 7년간의 괴로움

고 정병칠 제독의 큰아들 정치현 씨가 19일 자택에서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있다. 제2연평해전 하루 전 해군2함대 사령관 집무실에서 3부자가 같이 찍은 사진이다. 박영대 기자
고 정병칠 제독의 큰아들 정치현 씨가 19일 자택에서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있다. 제2연평해전 하루 전 해군2함대 사령관 집무실에서 3부자가 같이 찍은 사진이다. 박영대 기자
“아버지. 뉴스에서 또 나오네요.”

지난해 6월 정 제독은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7년 전 박 병장처럼 죽음과 사투를 벌였다. 정 제독의 옆은 큰아들 정치현 씨(32)가 지켰다. 제2연평해전 당시 전투 장면이 TV에서 나왔다. 병상에 누운 정 제독은 몸을 돌렸다.

‘그날’ 이후 정 제독은 이런 뉴스만 보면 고개를 돌렸다. 사랑하는 부하 6명과 참수리 357호를 잃은 죄책감 탓이었다. 지난해 5월 3일 정 제독은 기침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 5일 뒤 폐암 말기 진단이 나왔다. 담배를 가끔 한 대씩 피우긴 했지만 운동장 10바퀴를 돌아도 끄떡없던 그였다. 의사는 “비흡연자나 여성들에게 주로 발병하는 ‘선암(腺癌)’”이라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급속히 악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암 선고 한 달여 만인 6월 19일. 정 제독은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의리를 지키며 살아라”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19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자택에서 만난 치현 씨는 연방 눈물을 흘렸다. 치현 씨는 해병대(877기), 동생 치윤 씨(29)는 해군병(462기)으로 복무했다. 정 제독은 아버지이자 상관이었다. 제2연평해전 이후 두 달을 부대에서 지내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한숨을 내쉬거나 자꾸 혼잣말을 했다. 전사자 가족들을 만나면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한철용 전 대북감청부대장 등 당시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2002년 7월 10일 국방부는 정 사령관의 보직을 해임했다가 군 내부의 반발로 하루 만에 철회했다. 그러나 그는 7년 동안 침묵을 지켰다. 부하들에 대한 예우를 회복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전 소장은 “정 제독은 교전규칙대로 전투를 지휘했지만 ‘격파 사격’을 중지하라는 명령이 윗선에서 내려왔다”며 “합참과 해군은 책임을 떠넘기며 ‘핑퐁 게임’을 벌였고, 그는 ‘내가 모든 것을 짊어지겠다’며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해군사관학교 28기였던 정 제독은 이후 합참 전략기획부장, 해군 군수사령관을 거쳤지만 중장 진급을 못하고 2007년 4월 예비역 소장으로 전역했다.

“당시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됐잖아요. 정부 입장과 유가족들 사이에서 겪은 괴로움을 속으로만 삭이셨던 거죠. 아버지가 암에 걸릴 정도인 줄은 전혀 몰랐어요….”

치현 씨는 인터뷰 내내 ‘해군2함대 사령관 소장 정병칠’이라고 적힌 명패와 액자에 담은 사진을 어루만졌다. “아버지는 자신보다 부하들을 더 아끼는 ‘의리 있는 군인’으로 살려고 하셨어요.” 정 제독이 남긴 유언은 “의리를 지키며 살아라”였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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