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訪中 이후]中 “주권 문제” 고강도 외교표현 사용… 작심한듯 불만 표출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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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을 둘러싼 한국 정부의 불만 표시에 대해 ‘주권’까지 거론하며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천안함 문제와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결부시키는 데 대해서는 ‘별개 문제’라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한중 관계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한국 정부의 해명에도 양국 사이에 뭔가 ‘냉기류’가 형성되고 있음이 드러난 셈이다.》

▼ point 1. 외국 지도자 방문은 중국 주권 범위의 일
“한국 항의 없었다” 밝혔지만 ‘간섭도 말라’ 선그어

장위(姜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6일 오후 정례 기자회견에서 중국 정부가 어떤 나라의 지도자를 초청하는 일은 중국의 주권 범위 내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천안함 침몰 사건 의 원인 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방중을 허용한 것에 대해 한국 정부가 주한 중국대사를 불러 항의했다는 보도에 대한 사실 확인과 입장 표명을 요구받고 답변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주권’이라는 용어는 중국 정부가 대만이나 티베트 문제 등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문제나 난사(南沙) 군도, 댜오위(釣魚) 섬 등 영토 문제가 제기됐을 때 사용하는 용어다. 중국 정부가 김 위원장을 초청한 것은 영토나 소수민족 또는 양안 통일과 관련된 문제 같은 주권의 문제이니 어느 누구도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장 대변인은 기자회견 과정에서 김 위원장의 초청 사실을 “중국 내부의 일”이라고도 언급했다. 하지만 이날 뒤늦게 외교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발언록에서는 이 내용이 빠져있었다.

장 대변인은 이날 한국 정부가 김 위원장 초청에 대해 중국 정부에 ‘항의’를 한 사실이 없음도 강조했다. 물론 청와대도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항의’를 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한 중국 학자는 “한국 정부가 ‘항의’라는 형태로 공식적으로 항의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장 대변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라며 “하지만 그가 ‘주권’이나 ‘내부의 일’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얘기한 것은 김 위원장의 이번 방문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외교부 대변인은 기자회견에 앞서 관계부처로부터 모두 답변을 문서로 받고 이를 기초로 외교부 내에서 회의를 거쳐 용어 하나하나까지 꼼꼼히 검토하며 현안에 대한 예상 질문과 답변서를 작성해 답변한다는 점에서 이는 장 대변인의 즉흥적인 답변이 아니라 중국 정부의 불편한 심기가 공식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중국 당국은 김 위원장의 방중과 관련한 질문에는 “양국 지도자는 상호 우호와 교류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해왔다. 실제로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김 위원장 방문을 확인해 달라는 외신기자의 요청에 그는 “주관 부서가 아니기 때문에 현재 정보가 없다”며 “과거의 관례에 따라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왔다면 적당한 시기에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중국 당국은 그동안 영토 문제나 위안화 절상 등 중국의 ‘핵심이익’에 대해 다른 나라가 개입하거나 개입하려 할 때 ‘주권’이라는 격렬한 표현을 사용해가며 불만을 표출해왔다”고 말했다. 원론적인 답변으로 대신할 수 있었는데도 이같이 답변한 것은 미리 준비한 뒤 작심하고 대답한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다.

또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의 자매지인 환추시보가 6일자 1면 머리기사에서 한국 정부가 김 위원장을 맞아들인 중국의 주한 중국대사를 초치해 항의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북한 최고지도자의 방중 문제로 중국을 비난하는 것은 경우에 어긋난다”고 보도한 것은 중국 정부의 불만을 은근히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point 2. 천안함 北소행설은 언론 추측
‘6자 재개에 걸림돌 될라’ 北-中교감 반영 가능성


이날 장 대변인은 “김 위원장의 방중과 천안함 사건은 별개의 문제”라고 못 박았다. 천안함 사건의 조사 결과에 따라 6자회담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한국과 미국 정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이는 천안함 문제를 들어 6자회담을 재개하는 데 장애물을 놓지 말라는 의미로 읽힌다.

장 대변인은 천안함 침몰 사건의 북한 배후설 보도는 “언론의 추측에 불과하다”며 일축했다. 그의 답변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확정적으로 결론을 내린 적이 없다. 또 중국 정부에 천안함 사건의 원인조사 결론을 통보한 적도 없다.

하지만 이는 한국 정부가 사고 원인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조사할 것을 기대하고 우회적으로 촉구해 온 중국 정부 기존의 중립적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특히 6일은 천안함 침몰 원인을 밝혀주는 어뢰의 파편과 화약성분을 찾아냈고 한국과 미국이 ‘북의 소행’으로 의견 일치를 봤다는 보도가 나온 시점이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자세는 김 위원장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가진 직후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북-중 양측이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어느 정도 교감이 형성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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