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을 둘러싼 한국 정부의 불만 표시에 대해 ‘주권’까지 거론하며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천안함 문제와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결부시키는 데 대해서는 ‘별개 문제’라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한중 관계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한국 정부의 해명에도 양국 사이에 뭔가 ‘냉기류’가 형성되고 있음이 드러난 셈이다.》
▼ point 1. 외국 지도자 방문은 중국 주권 범위의 일 ▼ “한국 항의 없었다” 밝혔지만 ‘간섭도 말라’ 선그어
장위(姜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6일 오후 정례 기자회견에서 중국 정부가 어떤 나라의 지도자를 초청하는 일은 중국의 주권 범위 내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천안함 침몰 사건 의 원인 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방중을 허용한 것에 대해 한국 정부가 주한 중국대사를 불러 항의했다는 보도에 대한 사실 확인과 입장 표명을 요구받고 답변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주권’이라는 용어는 중국 정부가 대만이나 티베트 문제 등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문제나 난사(南沙) 군도, 댜오위(釣魚) 섬 등 영토 문제가 제기됐을 때 사용하는 용어다. 중국 정부가 김 위원장을 초청한 것은 영토나 소수민족 또는 양안 통일과 관련된 문제 같은 주권의 문제이니 어느 누구도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장 대변인은 기자회견 과정에서 김 위원장의 초청 사실을 “중국 내부의 일”이라고도 언급했다. 하지만 이날 뒤늦게 외교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발언록에서는 이 내용이 빠져있었다.
장 대변인은 이날 한국 정부가 김 위원장 초청에 대해 중국 정부에 ‘항의’를 한 사실이 없음도 강조했다. 물론 청와대도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항의’를 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한 중국 학자는 “한국 정부가 ‘항의’라는 형태로 공식적으로 항의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장 대변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라며 “하지만 그가 ‘주권’이나 ‘내부의 일’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얘기한 것은 김 위원장의 이번 방문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외교부 대변인은 기자회견에 앞서 관계부처로부터 모두 답변을 문서로 받고 이를 기초로 외교부 내에서 회의를 거쳐 용어 하나하나까지 꼼꼼히 검토하며 현안에 대한 예상 질문과 답변서를 작성해 답변한다는 점에서 이는 장 대변인의 즉흥적인 답변이 아니라 중국 정부의 불편한 심기가 공식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중국 당국은 김 위원장의 방중과 관련한 질문에는 “양국 지도자는 상호 우호와 교류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해왔다. 실제로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김 위원장 방문을 확인해 달라는 외신기자의 요청에 그는 “주관 부서가 아니기 때문에 현재 정보가 없다”며 “과거의 관례에 따라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왔다면 적당한 시기에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중국 당국은 그동안 영토 문제나 위안화 절상 등 중국의 ‘핵심이익’에 대해 다른 나라가 개입하거나 개입하려 할 때 ‘주권’이라는 격렬한 표현을 사용해가며 불만을 표출해왔다”고 말했다. 원론적인 답변으로 대신할 수 있었는데도 이같이 답변한 것은 미리 준비한 뒤 작심하고 대답한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다.
또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의 자매지인 환추시보가 6일자 1면 머리기사에서 한국 정부가 김 위원장을 맞아들인 중국의 주한 중국대사를 초치해 항의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북한 최고지도자의 방중 문제로 중국을 비난하는 것은 경우에 어긋난다”고 보도한 것은 중국 정부의 불만을 은근히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 point 2. 천안함 北소행설은 언론 추측▼ ‘6자 재개에 걸림돌 될라’ 北-中교감 반영 가능성
이날 장 대변인은 “김 위원장의 방중과 천안함 사건은 별개의 문제”라고 못 박았다. 천안함 사건의 조사 결과에 따라 6자회담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한국과 미국 정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이는 천안함 문제를 들어 6자회담을 재개하는 데 장애물을 놓지 말라는 의미로 읽힌다.
장 대변인은 천안함 침몰 사건의 북한 배후설 보도는 “언론의 추측에 불과하다”며 일축했다. 그의 답변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확정적으로 결론을 내린 적이 없다. 또 중국 정부에 천안함 사건의 원인조사 결론을 통보한 적도 없다.
하지만 이는 한국 정부가 사고 원인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조사할 것을 기대하고 우회적으로 촉구해 온 중국 정부 기존의 중립적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특히 6일은 천안함 침몰 원인을 밝혀주는 어뢰의 파편과 화약성분을 찾아냈고 한국과 미국이 ‘북의 소행’으로 의견 일치를 봤다는 보도가 나온 시점이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자세는 김 위원장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가진 직후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북-중 양측이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어느 정도 교감이 형성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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