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꼭 환자복 입혀 회견장 내보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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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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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보통 운동할 때는 속옷 내의와 반바지를 입고 합니다. (실종된 동료들이 사고 순간) 운동을 하고 있었다면 복장이…”

7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기자회견장. 천안함 침몰사건 생존자인 한 병장은 함미 조타실에서 운동을 하다 사고 순간을 맞았을 동료들의 옷차림을 설명하다 목소리가 떨려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곤 잠시 눈물을 삼켰다. 반바지 차림으로 45m 아래 차가운 바다에 갇혔을 동료들의 모습이 떠올랐을 것이다.

이 병장을 비롯해 환자복을 입은 채 악몽의 순간을 복기해야 하는 승조원 57명의 얼굴은 내내 침통했다. 차분함과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슬픔과 괴로움이 겹친 듯 심신이 모두 피곤해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목발과 휠체어에 몸을 지탱한 일부 승조원은 회견 중간 중간 후들거리는 목발을 고쳐 잡았다.

2시간여에 걸친 이날 기자회견은 생존자들에게 어떤 자리였을까. 이들은 비슷한 수의 기자들과 불과 2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정면으로 마주 봐야 했다. 연방 플래시가 터지고 생중계 TV 카메라가 돌아가는 가운데 기자들과 생존자들은 서로 어색한 시선을 돌리곤 했다.

‘생존 장병과의 단체 생중계 인터뷰’는 갖가지 ‘은폐 의혹’을 해명하고자 부심했던 군 당국의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사건 발생 이후 군은 온갖 의혹과 논란에 시달려 왔다. 군사기밀을 다루는 군 입장에선 억울했을 것이다. 생존병사들이 직접 국민 앞에 나서서 증언하게 하는 게 중차대한 사건에 대한 오해와 루머의 확산을 막고, 국민의 알 권리도 충족시키겠다는 생각에서 나름대로 고심 끝에 기자회견을 마련했을 것 같다.

하지만 꼭 이런 방식밖에 없었을까. 생존자들의 상처받은 마음과 바닷속에 남겨둔 동료들에 대한 부채감, ‘강한 군대’라는 군의 상징성을 고려했다면 촬영을 제한한 상태에서 언론간담회 형식으로 진행하는 등 다른 방식도 얼마든지 있지 않았을까.

설령 투명성의 극대화를 위해 카메라 앞에 노출시키는 게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면 환자복 대신 정복차림을 하도록 배려했어야 했다는 생각이다. 국가를 지키다 극단의 고통과 슬픔을 겪은 그들은 자랑스러운 제복을 입고 당당히 국민 앞에 설 자격이 충분하다.

오해와 루머를 불식시키고자 하는 군 지도부의 노력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좀 더 따뜻이 어루만져 주지 못한 채 황량한 회견장으로 내몰아야 하는 우리 사회의 불신문화와 왜곡된 소통 시스템이 안타깝다.

최우열 정치부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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