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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폴 매카트니도 이 남자 앞에선 순한 양

거장 폴 매카트니도 이 남자 앞에선 순한 양

Posted July. 31, 2019 09:27,   

Updated July. 31, 201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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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미안하지만 날 고용한 건 당신이라고요. 맘에 안 들면 하지 마세요.”

 “흠…. 오케이. 자네 하자는 대로 하겠네.”

 2003년 어느 날, 영국 런던의 스튜디오에서 오간 대화. 거장 폴 매카트니(77)에게 감히 으름장을 놓은 이는 나이절 고드리치(48)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서 29일 만난 영국의 음악 프로듀서 고드리치는 이 일화를 전하며 “아무리 뛰어난 음악가라도 앨범의 방향을 못 잡는 일은 흔하다. 그때 용감하게 손을 이끄는 게 내 역할”이라고 했다. 그는 28일 열린 톰 요크의 내한공연에서 연주자 겸 음악감독을 맡아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프로듀서는 영화감독처럼 큰 그림을 봐야 합니다. 한 장의 음반은 프랑켄슈타인 같은 몬스터, 거대한 환상이에요. 저는 그걸 만들어내는 미친 과학자고요.”

 고드리치는 21세기 최고 음악 프로듀서로 꼽힌다. 매카트니, 로저 워터스(76·‘핑크 플로이드’ 전 멤버), U2 등과 일했다. 특히 1997년 ‘OK Computer’부터 라디오헤드의 모든 음반을 프로듀스했다. 별칭은 ‘제6의 라디오헤드 멤버’.

 그는 “워터스와 일할 때는 ‘당신의 옛 작품들만큼 좋은 곡을 다시 쓰라’며 채찍질했다”고 했다. 20년 넘게 동고동락한 라디오헤드 멤버들과도 낯을 붉히기가 일쑤란다. ‘OK Computer’ 시절을 회상하며 그는 카페 창으로 아련한 시선을 던졌다.

 “‘새로운 앨범을 만들어 보고 싶다’며 찾아온 톰 요크(보컬)와 라디오헤드 멤버들을 보며 가슴속에서 뜨끈한 게 올라왔죠. 우리 모두 20대였으니까. 어릴 때부터 제 특기가 장비 고장 내기였거든요. 디지털 노이즈를 활용한 실험을 제대로 해보자며 의기투합했죠.”

 그의 아버지는 BBC 음향 엔지니어였다. 고드리치는 집안에 넘쳐나는 악기, 음향 장비, 레코드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며 자랐다.

 “꼬마 때 그룹 ‘폴리스’의 앨범 뒷면에서 ‘Produced by Nigel Gray’란 문구를 봤어요. ‘이런 직업이 있구나. 대단하다. 이름도 나처럼 나이절이잖아?!’”

 대학에 가는 대신 견습 음향 엔지니어로 일을 시작했다. 그는 “무대에서 환호받기보다 방문을 잠그고 뭔가 만들어내는 게 늘 더 좋았다”고 했다.

 “음악가들은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못 보고 되레 감추려 할 때도 많죠. 매카트니와 작업할 때 하기 싫다는 드럼, 기타 연주를 제가 계속 주문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고드치리는 “우리 세대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요크마저도 자신의 목소리를 부끄러워할 때가 많다. 음악가들은 모래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과 같다”며 웃었다.

“프로듀서는 심리전에도 능해야 합니다. 음악장비에 대한 실무 지식은 기본이고요. 어쨌든 저는 여전히 라디오헤드의 광팬입니다. 친구여서 행복해요.”

 고드리치는 밴드 ‘울트라이스타(Ultra´ista)’의 멤버로도 활동 중이다.

 “프로듀서는 직업이고 밴드 활동은 취미인 셈이죠. 내년 초에 신작을 내요. 두 번째 내한은 제 밴드와 함께 하고 싶네요.”


임희윤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