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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정당’ 무너뜨린 유럽의 앞날이 기대된다

‘100년 정당’ 무너뜨린 유럽의 앞날이 기대된다

Posted June. 28, 2019 08:14,   

Updated June. 28, 2019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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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선 대선 때마다 김종필, 박찬종, 이인제, 안철수 등 제3지대 인물이 반짝 돌풍을 일으켰다. 연쇄적으로 당을 옮기는 철새 논란과 정계 개편도 흔했다. 기존 정당들은 새롭게 보이려 수시로 당명을 바꿨다. 그때마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100년째 유지되고 있는 안정적인 유럽의 좌우 양당 체제에 대해 부러움을 나타냈다.

 그런 유럽도 달라졌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빅5 국가의 선거에선 우리가 부러워했던 양당 체제가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실용주의 중도 정당과 포퓰리즘 정당에 기성 정당이 정권을 내줬고, 영국과 독일, 스페인은 가까스로 집권했지만 소수 정권으로 이빨 빠진 늙은 호랑이가 됐다.

 100년 정당에 대한 유럽 유권자들의 자부심은 자신의 삶과는 무관하게 엘리트 기득권층의 배만 불려주는 썩은 고인 물이 되었다는 자각 이후 분노로 바뀌었다. 유럽 시민들이 100년 정당 체제를 뒤엎는 데는 5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물론 유럽에 강력한 특정 주류 세력이 등장한 건 아니다. 선거 때마다 승자가 바뀌는 대혼돈의 시대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유럽의 극우 정당들을 편의상 하나로 묶긴 하지만 ‘내 나라에서 누려온 정치경제 기득권을 난민이나 이민자들에게 뺏기기 싫다’는 국가 정체성 강조라는 공통점 외에는 나라별 성격이 제각각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극우 정당 지지층은 과거 좌파 지지층이었던 낙후된 지방과 저소득층인 반면, 이탈리아는 부유한 북부 지역이다. 프랑스 극우 정당은 복지와 분배를 강조하는 반면, 이탈리아는 감세와 규제 완화 등 친기업적 성향이 강하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영국 브렉시트당도 극우 정당으로 분류되지만 빨리 유럽을 뛰쳐나가자는 외침만 내놓은 일회성 정당일 뿐이다. 그나마 지지율도 20∼30% 벽에 갇혀 확장성에 한계를 보인다.

 이 와중에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에서 처음 확인된 녹색 물결이 새로운 관심을 받고 있다. 정치에 무관심한 변방 세력이던 청년들이 흐름을 주도해 주목할 만하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프랑스, 영국, 독일의 30세 미만 연령층은 녹색당(30% 안팎 득표율)을 1위로 뽑았다. 청년들은 삶의 터전인 지구의 기후변화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부터 10대가 주도한 ‘미래를 위한 금요일’ 학교 파업 시위, 주말마다 정부에 적극적인 환경정책을 요구하는 청년들의 시위도 같은 흐름이다. 국가 정체성보다 지구적 협력을 강조하는 녹색당은 극우와 정반대 방향이지만 인기를 얻는 요인은 비슷해 보인다. 소셜미디어에서 활발히 소통해 국민과의 거리를 좁히고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는 점에서다.

 새로 등장하는 정당들에 대해 대안이 부족하고, 장기적인 안목보다 현재의 시류에 편승하는 포퓰리즘 성격이 강하다는 비판의 시각이 아직은 많다. 그러나 이들의 등장으로 기성 정당은 국민의 목소리에 더 민감해졌고, 새로운 인물의 등장이 정치판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유럽 100년 정당 이후에 나타난 이런 새로운 흐름은 새 정치를 열망하는 모든 이들이 흥미롭게 지켜볼 변화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