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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알란 쿠르디

Posted June. 27, 2019 08:59,   

Updated June. 27, 2019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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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오후 미국 남부 텍사스주 브라운스빌에서 불과 1km 떨어진 멕시코 마타모로스의 리오그란데 강변. 미국으로 월경하려는 중남미 이민자가 많은 이곳에 엘살바도르 출신 20대 젊은 아버지가 나타났다. 그는 입고 있던 티셔츠 안으로 23개월 난 딸을 넣었다. 아기도 티셔츠 목 부분으로 팔을 꺼내 아빠를 꼭 붙들었다. 강을 반쯤 건넜을 무렵 두 부녀는 거센 물살에 휩쓸렸다. 다음 날 발견된 부녀의 시신은 사라질 때 모습 그대로였다.

 멕시코 일간지 라호르나다가 24일 전한 한 장의 사진이 전 세계인의 눈물을 자아내고 있다. 사진 속 주인공은 오스카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25)와 그의 23개월 난 딸 발레리아. AP통신은 “숨진 부녀의 모습이 2015년 터키 남서부 보드룸 해변에서 천사처럼 잠든 듯한 모습으로 발견된 쿠르드족 난민 알란 쿠르디(당시 3세)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며 발레리아를 ‘미국판 쿠르디’로 묘사했다.

 엄마 타니아 바네사 아발로스 씨(21)에 따르면 이 가족은 4월 3일 엘살바도르를 떠나 멕시코 남부 타파출라 이민자 보호소에 도착했다. 2개월간 머물다 망명을 요청하려고 23일 마타모로스에 도착했다. 이미 미 텍사스주로 통하는 다리는 막혀 있었다. 할 수 없이 강을 건너는 방법을 택했고 참변을 당했다. 그는 라호르나다에 “남편이 원래 딸을 먼저 강 건너 미국 쪽 땅에 데려다놓았다. 나를 데려가려고 돌아왔는데 아이가 아빠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강 속에 뛰어들었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절규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사망한 이민자는 283명에 달한다. 특히 부녀가 익사한 리오그란데강은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는 핵심 ‘도미(渡美)’ 경로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다 체포된 불법 이민자의 40% 이상이 이 강을 건너다 붙잡혔다. 숨진 부녀가 도착했던 마타모로스 영사관에도 약 1700명의 대기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다른 불법적 방법으로 미국에 들어오려다 변을 당하는 이민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민자 수용 시설의 열악한 상태도 인권 침해 비판을 고조시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수용시설에 물도 부족해 부모와 격리된 아동들이 몇 주간 씻지도 못하는 상태라고 전했다. 2008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에 7개월간 납치됐던 데이비드 로드 전 뉴욕타임스(NYT) 기자는 트위터에 “탈레반은 적어도 내게 치약과 비누는 줬다”며 미국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보다 반인권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일갈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도 25일 “미국이 이민자 수용을 거부할수록 목숨을 잃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가세했다.

 미국 내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코리 부커 상원의원(민주·뉴저지)은 “트럼프 행정부의 비인도적이고 비도덕적인 이민 정책의 결과로 두 부녀가 숨졌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미국의 이름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참담함을 금치 못한다고 비판했다.


최지선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