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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男은 사냥, 女는 채집? 근거없는 이론”

“원시男은 사냥, 女는 채집? 근거없는 이론”

Posted July. 16, 2018 09:47,   

Updated July. 16, 201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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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은 사냥, 여성은 채집.’

 학계에서 정설(定說)로 여겨지는 원시시대 성별 분업에 관한 명제이지만 20세기 이후 진행된 연구 결과, 이는 ‘거짓’으로 판명 났다. 남성이 사냥, 여성이 채집을 해왔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어디에서도 발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냥은 당연히 남자가 했겠지’ 하며 남성 연구자들이 도출해낸 이론이었습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이 사실이 아님을 밝혀냈죠. 다양한 배경과 관점을 지닌 과학자들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12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만난 영국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51·사진)는 이를 ‘획일화된 과학의 폐해’라고 지적했다. 특히 남성 과학자가 수적으로 지배적인 현 상황에서 모든 과학적 지식은 남성 중심적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의 동생이자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과 사촌지간이다. 장 교수는 “모든 과학적 지식은 연구자와 분리될 수 없으므로 과학자의 성별, 배경, 인종의 영향을 받는다. 연구자의 배경이 한쪽에만 치우쳐 있으면 과학 자체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든 다른 예는 ‘정자와 난자의 성향’이다. 장 교수에 따르면 그간 생화학에서는 여성의 난자를 ‘받아들이는 위치’에 있는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해왔다. 정자는 활동적이고 능동적인 개체로 본 것이다. 하지만 최근 난자가 정자를 화학적으로 ‘선택’하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회적으로 형성된 성역할이 정자와 난자에 투영된 셈이다.

 장 교수는 “남성은 능동적이고 여성은 수동적이란 사회적 관념 그대로 과학에도 적용됐다. 남성 연구자가 지배적이었던 생물학, 의학 등을 뜯어보면 이런 식의 오류가 정말 많다”고 지적했다.

  ‘연구자’가 누구냐에 따라 ‘과학적 진리’는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게 장 교수의 철학이다. 이는 그가 ‘과학에서의 다원주의’를 강조하는 이유다. 장 교수는 “과학에서 여성과 흑인, 동양인, 중남미계 등이 소외돼 온 게 사실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이 여러 관점에서 파고들다 보면 사회 전체적으로 얻어지는 게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2일 이화여대가 개최한 ‘이화 루스 국제 세미나’에서 ‘인본주의 과학철학’을 강연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의 강연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본주의 과학철학’이다. 과학은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학문이므로, 과학 기술이 가져올 윤리적 문제나 사회적 여파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이상적으로는 과학자들이 직접 연구실에서 해야 하는 고민이지만 과학자들은 그런 생각을 해낼 훈련도 안 돼 있다”며 “하지만 일반인에게 과학은 전문 분야이기 때문에 두 영역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게 과학철학자들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이지훈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