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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수학’ 교육의 미래  

Posted May. 03, 2018 08:19,   

Updated May. 03, 2018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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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 ‘위험한 비너스’(2017년)에는 프랙털 도형을 기계처럼 정확하게 그려내는 서번트 증후군 환자가 등장한다. 작은 구조가 끝없이 반복돼 전체 구조를 만드는 프랙털 기하학은 학문적으로는 비교적 최근인 1970년대에 들어와 정립된 큰 범주의 기하학이다. 건축과 미술, 의학, 천문, 지리 등에서 응용 연구의 토대가 되고 있다. 소설 소재로 쓰일 만큼 어느 정도 대중에게도 알려졌다.

 ▷지형과 측량을 통해 도형의 원리를 연구한 기하학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학문 중 하나지만 여전히 연구가 진행 중이다. 기원전 3세기 유클리드가 집대성한 이후 고대 그리스에서는 기하학이 논리를 배우는 기초 학문으로 여겨졌다. 플라톤 아카데메이아 정문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 문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글귀가 있었다.

 ▷교육부가 2월 2021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이과 수학 출제 범위에서도 ‘기하와 벡터’를 빼기로 결정한 데 대해 학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심화 과정인 기하를 수능에서 빼 사교육비와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과학계가 3월 이 결정을 철회하라는 청와대 청원을 낸 데 이어 한국과학기술한림원도 어제 토론회를 열고 “공간적 개념과 입체적 사고를 통한 논리체계를 갖추게 하는 유일한 과목인 기하가 수능에서 빠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교육부의 ‘쉬운 수학’ 교육 정책이 궁극적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것이 학계의 주장이다. 실제로 평창 겨울올림픽의 오륜기 드론쇼는 기하학에 기반을 둔 기술이다. 이향숙 대한수학회장은 “기하학은 지식이 아니라 창의력 개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라며 “어렵다고 뺄 것이 아니라 쉽게 가르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와 반대로 미국과 영국, 일본, 호주 등은 대입 시험에 기하학 심화 과정이 포함돼 있다. 고교는 건너뛰고 대학부터 시작하라는 우리와는 출발선이 다르다.


주성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