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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은 공통의 가치관을 버리지 말라

Posted March. 19, 20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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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주 중국 베이징에 있었다.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에 맞춰 대책을 세운 때문인지 대기오염이 그다지 심하지 않았던 것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늘 사용하는 G메일을 사용할 수 없어 곤란했다. 중국 당국의 검열과 중국 국내발()로 여겨지는 해커의 공격에 고민하던 구글이 지난해 중국에서 철수했기 때문이다. 나는 한중일의 유대를 중시하지만 중국이 한국, 일본과 달리 통제사회임을 통감할 수밖에 없었다.

아베 신조() 총리는 그런 중국을 견제하듯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공통의 가치관에 따른 연대를 간판으로 내세워왔다. 처음 총리가 된 직후인 2006년 10월 한국을 방문해 한일 양국은 자유, 민주주의, 기본적 인권, 그리고 법의 지배, 시장경제라는 기본적 가치를 공유한다고 강조한 것은 그 일환이었다.

하지만 올해 2월 국회 연설 때는 달랐다. 같은 기본적 가치관을 공유하는 국가로 호주,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인도, 유럽 각국을 들었지만 한국은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 표현하는 데 그쳤다. 외무성 홈페이지에서도 마찬가지로 표현이 바뀌었다.

이런 것으로 한국을 화나게 하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에는 커다란 계기가 있었다.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명예훼손죄로 기소돼 아직 출국조차 인정되지 않고 있는 점이다. 산케이신문 보도에 비판적인 일본인조차 한국이 언제부터 강권()국가로 되돌아갔나 하고 한탄하고 있다.

일본에서 도둑맞은 불상에 대한 반환 요구를 인정하지 않은 판결처럼 한국 사법부가 여러 가지로 반일 여론에 영합하고 있다는 의혹은 원래부터 갖고 있었다. 게다가 대통령은 중국과 친밀감을 보이는 한편으로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계속 거절하고 있다. 비꼬는 말투겠지만 아베 총리는 중국 포위를 의식한 공통의 가치관을 가진 동료에 한국을 포함시키는 것이 이제는 실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공평하게 보면 아베 총리도 전후 70년을 맞아 과거 군국주의에 대한 엄중한 총괄(정리)이라는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공통의 가치관을 버려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마침 일본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과거의 총괄(정리)은 화해의 전제가 된다고 유럽의 경험을 아베 총리에게 말했다. 이를 한국이 칭찬하는 마음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행동은 훌륭할까. 유럽에서 화해는 독일의 사죄와 함께 프랑스 등의 관용이 세트가 돼 실현됐다. 일부러 미국 의회를 찾아가 5월에 방미하는 아베 총리에게 의회 연설을 시켜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는 한국 의원들의 모습은 미국인의 눈에도 이상하게 비쳤을 것이다.

이래저래 국교 정상화 50년을 3개월 후로 앞둔 한일 양국 정부는 마치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치킨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듯 보인다. 보다 못한 이홍구 전 총리와 김수한 전 국회의장 등이 도쿄를 방문해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 등과 원로 회담을 갖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대국적 견지에서 어른스러운 지혜를 발휘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최대 현안은 위안부 문제이지만 이와 관련해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다. 일본에서도 발행된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씨가 한국에서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해 당국의 조사를 받은 것이다. 이미 저자에게 불리한 출판금지 가처분 결정이 나온 데 놀랐지만 이에 더해 오해와 곡해로 인한 심각한 비방 중상이 난무하고 있어 유감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이 책은 한일 양국에 존재하는 극단적인 주장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해왔다고 지적하며 과감한 문제 타개를 요구한 의욕적인 작품이다. 일본에서 평가가 높은 것은 결코 우익이 기뻐해서가 아니라 해결을 바라는 양식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잡았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내용이어서 이론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는 언론의 장에서 논의하면 좋지 않은가. 만에 하나 공권력이 그녀를 기소하면 문제 해결에 결코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선진 제국은 마침내 한국이 언론을 억압하는 나라라고 낙인을 찍을 것이다. 그래서 기뻐할 사람은 누구일까. 한국도 스스로 공통의 가치관을 버리지 않도록 절실히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