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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상기하자

Posted September. 27, 2013 06:43,   

日本語

기적은 기적적으로 오는 게 아닙니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 국회에서 남긴 명언이다. 그는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 한국민의 피와 땀으로 실현한 기적입니다라고 덧붙였다. 회의장에서는 우레 같은 박수가 터졌다. 1998년 10월 8일의 일이었으니 곧 15주년이다.

김 대통령이 남긴 것은 연설만이 아니다. 같은 날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역사적인 대화를 한 뒤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라는 열매를 내놓았다. 다음은 공동선언의 한 대목.

오부치 총리대신은 금세기의 한일 양국 관계를 돌이켜보고,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하였다. 김 대통령은 이러한 오부치 총리의 역사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평가하는 동시에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의 요청이라는 뜻을 표명하였다.

오부치 총리의 사죄는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의 전후 50년 담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무라야마 담화가 한일 정상 간의 외교문서가 된 셈이다. 김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화해를 표명한 것도 획기적이었다. 선언문에는 한국의 일본 대중문화 수용까지 담겼다.

이 선언의 주역이 김대중 대통령이라는 점에 의미가 컸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맺고 국교를 연 주역이 정반대 존재인 박정희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한일조약은 식민지 지배를 청산하면서도 국민 간의 화해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일본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이 부족했고 한국에서는 조약 반대 시위가 격렬했다. 이를 억누르고 조약을 맺은 것이 강권적인 군사독재를 하던 박정희 정권이었다.

여기에는 긴박한 냉전하에서 한일 협력이 필요하다는 전략적 판단이 있었다. 일본의 경제 협력을 지렛대로 한국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으니 잘못된 판단이 아니었지만 협약을 맺은 한쪽은 군사정권이고 다른 쪽은 반성이 부족한 정권이었다는 점에 한계가 있었다.

그로부터 33년 후 민주화의 상징이라고 할 김 대통령이 일본 총리의 명확한 사죄를 받아들여 화해를 입에 올렸을 때, 과거의 정적이 만든 한일조약에 영혼이 찾아든 게 아닌가.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다시 15년. 확실히 문화와 국민 교류는 크게 진전됐지만 정작 정치지도자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베 신조()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은 아직까지 회담도 못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쌍방에 있다. 아베 정권은 과거에 대한 반성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사과해야 하나라는 기분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에게서는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 옛날에 박정희 정권을 그토록 지원했는데라는 냉전 시대의 감각이 엿보인다. 역사관도 당시 정권에 가깝다.

한국에서는 과거 조약을 뒤집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조약으로 체결한 협정에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종료됐다고 한 보상 청구를 개인에게 인정하는 판결이 법원에서 잇따르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른 것이겠지만 일본에 이제 와서라는 당혹감을 안기고 있다. 아베 정권의 태도도 보다 경직되게 만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친일이라고 비판받은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는 듯 대일 강경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야당과 국민을 의식해서 그렇다면 꼭 기억해 줬으면 하는 내용이 있다. 과거 한일 관계를 크게 전진시킨 것은 대통령의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그의 최대 라이벌도 역사적 역할을 다했다는 점이다.

8월 각계가 참가한 가운데 서울에서 열린 한일포럼에 나도 참가했는데 현재의 위기 상황이 논의됐다. 양측 의장인 유명환 씨와 모기 유자부로() 씨가 공동성명을 내고 15년 전 일한공동선언의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양 정상이 그 파트너정신에 입각하면서 시대의 변화에도 맞는 새로운 지혜를 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