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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사형수곰이랍니다

Posted July. 21, 2012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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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경기도 안성의 한 산기슭에 있는 곰 사육장에 들어서자 곰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발바닥으로 철창을 두드렸다. 가슴에 흰 줄이 선명한 반달가슴곰이었다. 날카로운 발가락이 철창에 부딪혀 딱딱 소리가 났다. 농장주인 윤모 씨는 사람이 반가워서 이런다고 했다. 3.3m(1평) 남짓한 곰 우리는 사방과 천장이 붉은 철창으로 돼있었다. 방 하나에 한두 마리씩 30여 개의 우리가 좌우로 늘어서있었다.

그 때 어딘가에서 곰들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성인 남성만한 곰 두 마리가 앞발을 들고 서로의 얼굴을 후려치고 있었다. 넓은 곳에서 혼자 사는 야생의 습성 때문에 곰은 좁은 곳에 오래 있으면 쉽게 예민해진다. 네 살 된 한 곰은 새끼 때 옆방 곰에게 물려 왼쪽 앞다리가 없었다. 그 곰은 자꾸 넘어지는데도 절뚝이며 우리 안을 빙빙 돌았다.

10년 넘게 키운 곰 버릴 수도 없고

동남아시아에서 팔려오던 1981년만 해도 이 곰들은 주인의 기대주였다. 당시 정부는 국정홍보영화 대한늬우스를 통해 곰의 웅담과 가죽 등은 국내 수요도 많고 수입 대체 효과도 있다며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곰을 키우라고 권장했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윤 씨의 곰 27마리는 오도 가도 못하는 애물단지가 됐다.

윤 씨가 돈을 벌려면 10년 이상 된 곰을 도축해 웅담을 팔아야 한다. 야생 곰 평균 수명이 25년임을 고려해 정부는 당초 24년이 넘은 곰만 도축을 허락했지만 농가의 반발로 2005년 도축연한을 10년으로 낮췄다.

10년 미만 곰에서 웅담을 빼거나 도축 곰의 쓸개가 아닌 다른 부위를 팔면 불법이다. 한 마리당 10g정도가 나오는 웅담을 얻기 위해 최소 10년을 기르다보니 한 마리의 웅담 값이 20003000만 원선이다. 비싼데다 동물복지 논란이 일면서 최근 웅담 수요가 급감했다. 우리 정부가 1993년 멸종위기종의 국제거래를 규제하는 CITES협약에 가입해 곰을 외국에 팔수도 없다.

판로가 막히면서 윤 씨는 10년 넘은 곰들을 최근 4년 간 한 마리도 못 잡았다. 전체 27마리 중 열 살을 넘긴 곰이 20마리다. 사료비로 하루 68만 원씩 매달 200여만 원이 필요해 벼농사로 번 돈을 쏟아 붓고 있다. 윤 씨는 당장 사육장을 없애고 싶지만 살아있는 곰을 버릴 수도 없고 10년 넘게 키운 정이 있어 굶어죽이지도 못 한다고 했다.

국내에서 사육되는 곰은 모두 1000마리. 전국 곰 사육장 50여 곳이 윤 씨와 비슷한 처지다. 수익이 적다보니 일부에선 산채로 쓸개즙을 빼내 파는 불법을 저질렀다. 시설투자에도 소홀할 수밖에 없다. 15일 곰 두 마리가 탈출한 경기 용인시의 농장은 철창에 녹이 슬어 문이 열릴 정도로 열악했다. 같은 종인 지리산 반달가슴곰은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돼 특급대우를 받지만 이들은 야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외돼 웅담채취용 마루타로 산다.

대책 안 나오면 곰 풀겠다

사육농가들은 정부가 곰 사육을 권한 책임이 있는 만큼 곰을 모두 사들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일부 농가와 동물단체는 정부가 곰을 수매한 뒤 10년 이상 된 곰은 안락사 시키면 300억 원 정도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환경부는 사육곰을 매입하려면 사후 관리비를 포함해 1000억 원가량이 필요해 예산 확보가 쉽지 않다며 국가가 곰을 매입해 죽이면 여론의 비난이 일수 있어 안락사는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곰은 국내 웅담 수요가 살아나면 예전처럼 도축되고, 정부가 농가 요구대로 수매 후 안락사를 결정해도 죽게 될 운명이다. 철창에 갇힌 사형수 신세와 다를 바 없다. 정부는 사육농가에 대한 실태조사 후 다시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농가들은 마땅한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경기 과천시 정부청사 앞에 곰 수백 마리를 풀어놓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곰과 사람의 상생을 위해 중국 쓰촨성 곰 보호센터처럼 정부가 사육곰을 관리하는 민간 재단을 만든 뒤 지원하고 기업의 기부를 유도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관규 강원대 조경학과 교수는 전국의 곰 테마파크에서 2030마리씩 맡아주면 정부가 비용 일부를 대주거나 수의대 학술림에 연구용으로 곰을 분양하는 방법도 있다고 조언했다.



신광영 박희창 neo@donga.com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