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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신거리는 상처 떠오르는 네 얼굴 내 미련한 사랑이여

욱신거리는 상처 떠오르는 네 얼굴 내 미련한 사랑이여

Posted March. 01, 2008 03:21,   

日本語

손톱깎이가 살점을 물어뜯은 자리/ 분홍 피가 스며들었다.// 처음엔 찔끔하고/ 조금 있으니 뜨끔거렸다.// 한참 동안,/ 욱신거렸다.// 누군가 뒤늦게 떠난 모양이었다./ ()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었다.(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중에서)

이윤학(43사진) 시인의 시작()이 부지런하다. 3년 만에 낸 새 시집에는 60여 편의 시가 담겼다. 작고 사소한 것에 눈길을 주는 시인의 시선은 여전히 빼어나다. 가령 표제시가 그렇다. 손가락의 작은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짧고 따끔한 아픔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오래도록 욱신거리는 사랑의 상처가 떠오르는 것.

오전 내내 마룻바닥에 굴러/ 볕을 잘 쬔 1.5리터들이/ 우그러진/ 환타 페트병을 집어든다// 피식 웃고 떠난 네 이름, 네 얼굴./ 네 뒷모습 떠오르지 않는다.(환타 페트병 중에서)

떠난 사랑에 대한 시가 적지 않다. 우그러진 페트병을 보고 옛 사랑을 생각하는 것은 그 페트병이 자신과 닮았기 때문이다. 장미 화분에 찬 물을 주는 동안 물이 담긴 페트병 전신이 울렁거리는 모습은, 그의 마음이 출렁이는 것과 닮았다. 시인은 이렇게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에서 마음의 무늬를 발견한다.

그의 몸에 붙어 문신이 되려 하는가/ 그의 감옥에 날개를 바치려 하는가// 흰나비가 움직이지 않는다// 바위 얼굴에 검버섯 이끼가 번졌다/ 갈라진 바위틈에 냉이꽃 피었다(봄 중에서)

이윤학 시인의 안내를 받아 우리 주변을 세심하게 둘러보면, 사랑의 모습은 곳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위에 앉은 흰나비에서, 바삭거리는 잠자리 날개에서(먼지는 왜 물에 끌리는가). 그는 사랑의 열렬함을, 떨림과 설렘을 포착한다. 그의 시들은 우리가 쓸쓸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일깨운다.



김지영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