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무더위에 메스를 대라

Posted July. 28, 2007 03:33,   

日本語

로빈 쿡은 의학소설과 동의어다. 안과의사 출신으로 30여년간 병원 소재 소설만 썼다. 뇌사와 장기이식 거래를 다뤘던 코마, 유전공학을 통해 탄생한 천재 인간 이야기 돌연변이 그리고 바이러스 복제인간 등의 베스트셀러로 입지를 다졌다.

위기의 중심인물도 의사다. 크레이그는 미국 보스턴에서 부유층을 상대하는 왕진 전문의. 건강염려증 환자의 호출에 시큰둥하게 방문했으나 실제 상황은 급박했다. 심장마비로 고통받던 환자는 손 써볼 틈도 없이 죽는다. 부적절한 대처를 이유로 법정에까지 선다. 뻔해 보이기만 하던 죽음 속에 감춰진 진실이 천천히 얼굴을 드러낸다.

위기에는 전담 진료(concierge medicine)라는 미국의 독특한 의료 행태가 등장한다. 전담 진료란 1년에 2만 달러 이상 든다는 고가 왕진. 저자는 평등해야 할 의료의 공공성은 무시된 채 귀족 진료가 성행하는 미국의 오늘에 메스를 댄다. 경쟁만 일삼는 의대교육부터 이윤 추구 대상으로 전락한 환자의 현실을 낱낱이 보여준다.

위기는 잘 차린 잔칫상이다. 의학과 법정이 양껏 버무려졌다. 그런데 왠지 어디선가 받아본 밥상이다. 과학수사대를 그린 미국드라마 CSI. 촘촘한 시나리오의 화려한 영상 이상으로 힘을 발휘할지.

과학과 스릴러를 결합한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은 테크놀로지 스릴러로 불린다. 크라이튼도 의사였으나 의학은 상상력이 결핍됐다며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쥬라기 공원 이외도 대열차강도 콩고 먹이 등 작품마다 화제가 됐다.

현실엔 없지만 그럴듯한 과학 세계를 숨 가쁘게 풀어놓는 크라이튼의 장기는 넥스트에서도 여전하다. 성숙 유전자 스프레이로 늙어버린 소년, 유전자 이식으로 인간의 지능을 가진 앵무새, 침팬지 유전자를 받아 21세기 프랑켄슈타인이 된 연구원. 유전공학의 보물창고(혹은 지옥문)가 환상(혹은 재앙)의 손을 내민다.

재미있다. 막힘도 없고 부담도 없다. 탁월한 이야기꾼(USA 투데이)란 칭찬도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인류에게 던지는 경고이자 재앙보고서란 자찬은 지나치다. 소재부터 끓인 차 또 끓인 듯한 유전공학이 아닌가? 유전자 특허를 중지하라는 작가의 말이 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심각하게 따져 볼 것도 아니다. 로빈 쿡이든 크라이튼이든, 이마에 주름잡고 볼 책은 아니다. 다시 대청마루로 돌아가자. 술술 넘기다 바람 살랑 불면 오수()의 나래를. 그래서 고맙다. 스릴러의 세계, 상상의 세계.



정양환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