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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백신의 황제

Posted January. 29, 2003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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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는 유엔 산하 전문기구 가운데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가장 큰 조직이다. 질병에서의 해방과 건강 증진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목표를 위해 일하는 만큼 유엔기구 중 WHO의 비중이 큰 것은 당연하다. 인간이 지구에 출현한 이래 가장 오랫동안 인류와 함께 해 온 것은 다름 아닌 질병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1948년 이 기구가 창설된 이후 WHO의 도움으로 생명을 구하고 질병에서 벗어난 사람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WHO의 노력이 없었다면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 온 전염병인 천연두의 완전한 박멸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전문 분야와 공중보건 분야의 뛰어난 경력, 국제보건 분야의 폭넓은 경험, 조직 운영 능력, 과거 활동을 통해 입증된 공중보건 분야에서의 리더십, WHO 활동에 대한 탁월한 기여, 건강 양호, 집행이사회와 총회 공식 언어(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 하나에 능통. WHO 집행이사회가 정한 사무총장 후보의 자격 조건이다. 까다롭기도 하거니와 어떤 사람을 필요로 하는지가 명료하게 드러난다. 역대 사무총장은 모두 5명. 초대 총장을 제외하면 4대까지가 모두 WHO에서 근무한 사람이다. 그리고 일본 출신의 4대 총장을 빼고는 모두 유럽이나 미주 국가 출신의 백인이었다.

그로 할렘 브룬틀란 현 총장은 WHO 사무총장의 위상을 한껏 올려놓은 인물이다. 그는 의사 출신으로 41세에 노르웨이 역사상 최연소이자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어 도합 10년 동안 총리를 지낸 거물이다. 유엔 환경개발위원회 초대 위원장직도 지냈다. 이 위원회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을 개발해 92년 리우지구환경회의를 이끌어내는 데 크게 기여한 기구. 그래서인지 올해 그의 뒤를 이어 WHO 사무총장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들도 모두 대단한 거물들이었다. 유엔 에이즈프로그램 사무국장, 모잠비크 총리, 멕시코 보건부 장관, 이집트 전 보건부 장관 등이 그들이다.

WHO 결핵관리국장인 이종욱 박사가 한국인으로서 이들과 경쟁해 사무총장에 선출된 것은 그래서 더욱 뜻깊다. 물론 무엇보다도 이 박사 개인의 헌신이 가져온 영예다. 그는 평생을 국제사회의 공중보건을 위해 노력해 오면서 백신의 황제라는 자랑스러운 호칭까지 얻은 사람이 아닌가. 물론 한국의 위상이 WHO 지원을 받던 3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WHO 사무총장 자리는 영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인으로나 국가적으로 국제사회에서 더 많은 봉사를 요구받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세계가 우리를 새로운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문 명 호 논설위원 munmh97@donga.com